여섯 번째 이야기
우리 집은 끼니때마다 엄마의 식사기도가 빠지지 않는다. 보통 식사기도라고 하면 '일용할 양식'에 대한 감사와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식사할 수 있음에 대한 감사 정도가 담긴 짤막한 두어 마디를 기대할 텐데, 이는 오산이다. 엄마의 식사기도는 음식에 대한 감사로 시작하긴 하지만 시험, 발표, 출장 등 가족들이 처한 대소사가 잘될 수 있도록 바라는 소원기도를 반환점 삼아 부모님, 나, 동생의 건강은 물론이고 할머니, 외할머니, 그리고 때로는 친가와 외가 친척들의 안위까지 거쳐야만 비로소 끝맺음이 난다. 보통 2~3분 정도 걸리는데 그렇게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바로 눈앞에 놓여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결코 짧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이번에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엄마가 대표로 식사기도를 드렸지만 대부분 내 건강에 대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나를 가엾게 여기셔서 콩팥의 기능과 크기와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평소 같으면 반찬을 구경하기도 하고 기도가 너무 길어지는 것 같으면 한숨을 쉬다가 딴짓을 하던 아빠와 눈이 마주쳐 소리 없는 웃음을 지었을 텐데, 이번에는 엄마가 드리는 기도에 온전히 집중했다. '정말 이 기도처럼 병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언제 그랬냐는 듯 걱정 없이 지내던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뭐든 하겠다'는 생각으로 엄마의 기도 한 마디마다 힘을 실었다.
사실 그날 식탁 위에 무슨 음식이 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나마 기억이 나는 음식 중 하나는 간이 안 된 두부부침이었는데, 굉장히 조심스럽게 한두 점만 먹는 데에 그쳤던 것 같다. 무염이라는 점은 마음이 놓였지만 두부에 들어있는 단백질이 신장에서 여과되어 그대로 단백뇨로 나올 것 같은 끔찍한 상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식사가 끝나고 화장실에 갔을 때 또다시 거품뇨가 변기를 뒤덮는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다. 이처럼 의학 지식도, 때로는 상식도 내가 가진 병에 대한 무지막지한 두려움은 막아내지 못한다.
기억나는 또 다른 반찬은 콩나물 무침이었는데, 엄마가 소금은 전혀 넣지 않고 오직 다진 마늘과 참기름으로 맛을 냈다고 했다. 그 설명을 들은 나는 안심이 되었다. '그래도 이렇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어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맨밥에 콩나물을 올려 먹기를 몇 번 반복하던 중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졌다.
'나는 평생 이렇게 먹고 살아야 하는구나.'
먹는 걸 삶의 낙으로 여겼던 내가 앞으로는 소금의 짠맛도, 두툼한 고기의 감칠맛도 마음껏 누리지 못한다는 생각에 서러움이 북받쳐 올랐다. 그 서러움에 입안의 음식을 삼키지도 못한 채 소리 내 울었다. 이에 엄마, 아빠 모두 젓가락질을 멈추고 나를 측은하게 바라봤다. 평소 눈물과 친하지 않은 아빠도 충혈된 눈으로 눈물을 훔쳤다. 내 어깨를 두들기며 "괜찮을 거야," "좋아질 거야"라며 위로를 건넸지만 그 떨리는 목소리는 확신보다 걱정과 두려움에 가까웠다. 몇 분간 말없이 울기만 하다가 '이제 괜찮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렇게 눈물 젖은 식사가 끝났다.
방에 들어와서는 계속 잠만 잤다. 잠이 오지 않아도 몇 시간 동안 침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저 눈을 질끈 감았다가 한숨을 크게 내쉬기를 반복하던 중, 아빠가 방 안에 들어오더니 비닐봉지를 건넸다.
"간식으로 이거라도 먹어볼래?"
봉지 안에는 카스테라 하나가 담겨 있었다. 우느라 식사를 제대로 못 한 내가 걱정돼서 빵집에 갔는데, 뭘 사야 할지 몰라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가게에 있던 빵들의 영양성분을 보고 나트륨이 얼마나 들어있는지 일일이 확인했다는 것이었다. 그 중 카스테라가 그나마 나트륨이 80mg 가량으로 제일 안전할 것 같아서 사왔다는 말과 함께 내 어깨를 감쌌다.
아빠가 방을 나간 뒤, 나는 포장을 뜯고 카스테라를 맛봤다. 겉모습은 평범하기 짝이 없는 카스테라였지만 세상에서 제일 달고 부드럽게 느껴졌다. 그 안에는 어떤 영양성분표도 감히 수치로 정리할 수 없는 것들이 담겨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