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의 추억
책을 좋아하는 작가들은 동네서점과 헌책방에서 책을 많이 구매한 추억을 이야기한다. 그들은 어릴 적에도 또래 아이들과 달리 어려운 책을 척척 읽고 감명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어릴 때 중대형 서점에 방문해서 만화책을 살펴보곤 했다. 100쪽이 넘어가는 긴 글을 읽기 힘들어서 그림과 글이 같이 있는 만화책을 더 좋아했다.
지금이야 그림보다 글이 훨씬 익숙하고 큰 서점, 작은 서점 가리지 않고 여러 군데 방문하지만, 학창 시절에 내가 아는 서점은 학교 근처 서점과 (가) 서점, 서울 한복판에 있는 (나) 서점 밖에 없었다.
당연히 학교 근처 서점에는 참고서, 문제집이 많았다. 시험기간이나 고3 때는 나름 성적 챙긴답시고 문제집을 구매했지만, 대부분 첫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는 깨끗한 상태로 둔 만큼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 요즘은 문제집이 없는 동네서점들이 많지만 2000년대에 동네서점은 문제집과 베스트셀러 책을 주로 판매하는 말 그대로 동네에 위치한 서점이 대다수였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나는 A상가에 있는 (가) 서점을 학창 시절에 가장 많이 방문했다. (가) 서점은 동네서점이라 하기에는 규모가 꽤 컸지만 대형 프랜차이즈 (나) 서점보다 작은 서점이었다. 당시 초등학교 5~6학년인 내 또래 친구들은 (가) 서점에 자주 방문하곤 했는데, 그 이유는 컬러 만화책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거기서 나는 책을 본격적으로 접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하면 안 되는 행동이지만, 도덕 시간에 서점 방문 시 갖춰야 할 예의를 가르치지 않아서 그런지, 만화책의 비닐랩을 뜯어버리는 애들도 있었다. 특히 컬러 만화책의 경우 일반 흑백 만화 단행본보다 비싼데, 부모님은 학습 만화가 아니면 만화책을 구매하지 않았다.
그래서 Why 시리즈*, 『무서운 게 딱! 좋아!』**, 홍은영 작가의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같은 컬러 만화책은 비닐랩이 뜯긴 채 너덜너덜한 상태로 널브러져 있었다.
*Why 시리즈는 예림당 출판사에서 나온 학습만화 시리즈이다. 2000년대 초중반에는 과학을 주제로 쓴 책이 출판되었는데, 최근에는 인물/인문/사회/역사 등 다양한 분야의 학습만화가 많이 나왔다.
**『무서운 게 딱! 좋아!』는 아이엘비(ILB) 출판사에서 나온 딱이야 시리즈인데, 온라인 서점에 검색해보니 아이엘비 출판사의 책은 죄다 품절/절판이 되어있다. 최근 네이버 웹툰으로 다시 「무서운 게 딱! 좋아!」를 볼 수 있다.
***토마스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홍은영 작가가 학습만화로 그린 만화책이다. 가나출판사에서 출판되었고 현재는 절판된 상태이다. 최근에는 아울북 출판사에서 나온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박시연 글, 최우빈 그림) 시리즈가 있다.
나는 비닐 포장을 멋대로 뜯어버리는 짓은 하지 않았지만, (가) 서점에서 비닐이 뜯겨 사람들의 손 때를 많이 탄 만화책을 읽었다. 한창 인기 있었던 공포 만화를 무서워하면서도 읽고, 예쁜 그림체로 옮긴 세계 고전/명작 만화를 아무 생각 없이 훑어보곤 하였다. 본격적으로 일본 만화를 접하기 전이다 보니, 유일하게 읽을 수 있는 만화가 어린이 코너에 보이는 책에 나온 것들이었다.
지금 보면 엉성한 스토리에 단순한 그림 체인 만화가 많았던 것 같다. 그림이 엄청 예쁘다고 생각한 만화책도 머리 스타일과 패션만 다르지 비슷비슷한 외모라 인물 구분이 힘든 책도 많았다.
시간이 지나 라이트노벨을 접하면서 점점 글만 있는 소설책을 읽기 시작했다. 대여점과 도서관에서 책을 자주 빌려보기도 했지만, 반납기간을 맞추기 힘들어 차라리 구매해서 천천히 읽는 것이 나았다. 거기다 해외 메탈 장르의 음악에 맛들이기 시작하면서 CD도 모으기 시작했다. 마니아가 아닌 이상 인싸들은 알지 못하는 밴드의 앨범과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책을 (가) 서점에서 구할 수 없었다.
지금은 유튜브에서 음악을 쉽게 듣고 책 구매도 카카오나 네이버 페이로 쉽게 결제 가능하지만, 그때는 온라인보다 오프라인 결제가 더 편했다. 그래서 나는 지하철을 타고 (나) 서점으로 자주 방문해서 (가) 서점에서도 볼 수 없었던 책과 음반을 마음껏 구경하고 구매했다.
성인이 돼서 (가), (나) 서점 말고도 다른 서점도 방문했지만, 학창 시절에 자주 갔던 곳을 생각하자면 (가) 서점을 우선 떠올릴 것 같다. 지금은 만화책을 스마트폰으로 훑어보고 무서운 이야기는 괴담 유튜브로 듣는 편이다. 요즘은 쉽고 재미있게 설명한 요약 영상을 유튜브로 쉽게 찾을 수 있어, 아이들이 학습만화를 굳이 찾아서 읽지 않을 것 같다.
현재 동네서점에 있는 그림책과 만화책은 예쁘고 개성 있는 그림체로 예전보다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 (가) 서점에 봤던 책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렇지만 서점에서 학습만화 코너를 보면 왠지 모를 반가움이 느껴진다. 내가 예전에 알았던 만화책은 좀 더 세련되고 예쁜 그림체로 개정판으로 출간되지만, 그 책들을 보면 (가) 서점에서 봤던 엉성한 만화책이 떠오르는 이유가 뭘까.
여러분도 서점에 대한 추억이 있나요? 댓글로 남겨주세요~
*이미지 출처: unsplash(Miika Laakson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