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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렌페에서의 기억

단점을 극복하는 나만의 방법

by 조이영
문자.PNG 2010. 스페인


나는 조심성이 없는 편이다.

이런 나의 단점을 생각하면 몇 가지 떠오르는 사건이 있다.


친구와 함께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있었던 일이다.

국내선 비행기를 타기 위해 지하철을 타러 갔다.

캐리어를 들고 플랫폼에서 한참을 기다렸다.

잠시 후 차가 도착했고,

오래 기다렸던 나는 반가운 마음에 캐리어를 번쩍 들고 얼른 차에 올라탔다.

캐리어를 구석에 끌어다 놓고 나서야 함께 온 친구를 찾았다.

그런데 친구는 밖에 서 있었고 차는 출발하고 있었다.

친구는 밖에서 다급하게 손짓을 하고 있었다.

순간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잘못 탔나 보네... 다음 정류장에서 내려야겠다.'

이렇게 생각하며 노선도를 찾으려고 이 차의 여기저기를 살펴보고 있었다.

그런데, 상황이 조금씩 파악이 되면서 온몸이 쭈뼛 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차는 지하철이 아니라, 기차였다.

나는 지하철로 몇 정거장 가서 국내선을 타러 갈 예정이었는데, 저 멀리 스페인 지방으로 가는 기차, 렌페를 탄 것이었다. 스페인의 지도나 지명은 생각나지 않았고, 우리나라의 지도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지하철을 타고 김포공항으로 가려고 했는데, 이 차는 저 멀리 부산행. 그럼 나는 대전쯤 가서 내릴 수 있는 건가? 왜 이곳은 지하철과 기차를 같은 플랫폼에서 타는 거야? 우리나라의 용산역이나 서울역도 지하철과 기차가 함께 다니지만 플랫폼은 달랐던 것 같은데... 대전에서 내리면 예약한 비행기는 이미 떠났을 테고.... 망했다.'

나는 바로 역무원을 찾아가서 최대한 불쌍하게 보이며 어떻게 해야 하냐고 하소연했다.

다행스럽게도 이 역무원이 방법을 찾아주었다.

'여기서 내려줄 테니까, 10분 기다리면 OO행 렌페가 올 거야. 그걸 타고 공항까지 가면 돼.'

지하철 한 정거장 정도 되는 거리를 이동한 후 이 역무원은 어떤 작은 역에서 나를 내려주었다. 내리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고, 이 역이 이 렌페가 정차하는 곳이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무사히 렌페를 갈아타고 공항에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러 가지 감정이 동시에 올라왔다.

조심성 없는 내 성향을 탓하는 마음, 친절하게 내 문제를 해결해 준 역무원에 대한 감사한 마음, 큰일이 생길뻔했지만 잘 해결되었다는 안도감, 무사히 또 하나의 문제를 해결했다는 뿌듯한 마음 등등.

대체로 이런 일들은 누군가의 도움으로 잘 해결이 되어 해피앤딩으로 끝난다.


이 사건 이후 친구는 내게 '꽃보다할배'의 '이순재'처럼 '직진본능'이 있다고 놀린다.

또 누군가는 엄청 꼼꼼해 보이는 사람이 은근 '허당'이라고 놀린다.

이 사진은 그때 친구와 주고받았던 문자를 찍어놓은 사진이다.

스페인에서 많은 것을 하고, 많은 것을 봤는데, 이 작은 에피소드가 먼저 기억난다는 것이 참 재밌는 일이다.


내 조심성 없는 성향으로 인해 발생한 일들은 수없이 많다.

산 정상에 올라가서야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일.

제주행 비행기를 놓치고 다음 비행기를 타야 했던 일.

비 오는 날 우산을 택시에 두고 성급하게 내렸던 일.

그런 일이 생기면, '나는 왜 이럴까?' 스스로를 자책하게 된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조심성이 없는 편이다.

사실, 성향이 잘 바뀌지는 않는다.

그래도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큰 문제는 없다.

나는 이런 나의 단점을 가지고 살기 위해서 나만의 방법들을 찾아 적응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내 단점을 인정하는 일이다.

나는 그렇게 타고났다. 그냥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단점이 안 좋은 면도 있지만, 깊이 살펴보면 또 다른 장점으로 연결된다.

모든 문제에는 양면이 있다.

조심성이 없는 단점이 있지만, 그로 인해 새로운 것이 닥쳤을 때 잘 적응하는 편이다.


그다음은 나만의 룰을 만드는 것이다.

내가 가진 단점으로 인해 불편한 것들을 극복하기 위해서 나만의 룰을 만든다.

예를 들어 여행할 때는 어딘가 이동할 때 항상 '여권', '지갑', '핸드폰' 3가지 위치를 손으로 확인한다.

신기하게도 이런 습관을 들이니, 그다음부터 뭔가를 잃어버리는 일이 없었다.

시간 약속을 맞출 때는 '긍정적으로 계산하지 마.'라고 먼저 주문을 외운다.

그러면, 대체로 약속시간을 잘 지킬 수 있게 된다.


꼼꼼한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세상은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곳이라고 했던가.

돌아보면, 내 옆에는 그 순간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조력자가 있었다.

기꺼이 그들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단점과 동행하며 살다 보니,

삶에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늘어간다.

그리고, 이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들을 찾아가다 보면, 그럭저럭 살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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