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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식사빵

평범한 취향의 발견

by 조이영
포루투갈_빵.PNG 포르투갈, 2017
포루투갈_빵3.PNG 포르투갈, 2017
포루투갈_빵4.PNG 포르투갈, 2017


특정한 지역이 특정한 음식으로 기억될 때가 있다.

스페인 세고비아의 '코치니오 아사도 (새끼돼지통구이)'처럼.

이 요리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새끼돼지를 통으로 구워 만든 음식이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입에서 녹을 만큼 식감이 부드럽다.

처음 세고비아에서 코치니오를 먹었을 때 느껴졌던 새끼돼지의 얇은 갈비뼈 느낌이 꽤나 충격적이었다. 갈비뼈가 너무 작아서, '새끼돼지'를 먹었구나라는 강렬한 느낌을 주었고, 덕분에 그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포르투갈을 여행했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이 무엇이었는지 묻는다면,

나는 고민 없이 '빵'이라고 답할 것이다.

포르투갈에 가면 누구나 먹게 되는 나타(에그타르트)도 많이 먹었고, 바깔라우라는 대구요리도 꽤나 맛있었다. 그리고 덜 익은 포도로 만들었다는 그린와인도 매 끼니마다 챙겨 먹을 만큼 입맛에 맞았다. 하지만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새로울 것 없는, 평범한 식사빵이었다.

포르투갈을 여행하던 어느 날 너무 늦게까지 돌아다닌 덕분에 끼니를 놓치고 어쩔 수 없이 동네 마트에 들르게 되었다. 포르투갈에는 어디든지 '핑구도스'라는 마트가 있었다.

이름도 정겨운 '핑구도스'에 가면 빵을 직접 구워서 잔뜩 쌓아놓고 판다. 우리나라처럼 예쁘게 진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종류별로 아무렇게나 쌓아놓는다.

가격은 더 놀랍다. 2017년 당시 우리나라 돈으로 1000원이 안 되는 가격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에게는 마트나 편의점 빵은 맛이 없을 것이라는 편견이 있었다.

그런데 포르투갈 마트 빵은 그 어떤 고급 빵보다 내 입맛에 맞았다.

멋 부리지 않은 투박한 모양새.

겉은 약간 질깃하면서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식감.

맛은 구수하면서 담백하다. 속에는 아무것도 들어간 것이 없고 토핑이라곤 가끔 견과류 정도뿐이다.

'아, 나는 이런 빵을 좋아하는구나.'

그 이후 나는 핑구도스를 수시로 들락날락했다.

동그란 빵도 사보고, 길쭉한 빵도 사보고, 견과류가 박힌 것도 사보고, 나름 구름인지 꽃인지 모를 모양낸 빵도 사봤다. 모두가 비슷비슷한 같은 카테고리였지만 약간씩 다른 느낌이었다.

매일 새로운 빵을 구입해서 아침을 준비했다.

그때의 취향의 발견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늘 바게트, 깜빠뉴, 통밀빵 같은 담백한 빵들을 찾는다.

집 근처에 내 취향의 빵이 가득한 프랑스빵집이 생겼을 때는 뛸 듯이 기뻤다.

빵이 포르투갈어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그래, 그럴만하지.'라고 혼자 뿌듯해했다.


낯선 곳을 여행하면서 나의 취향을 하나 더 발견했다.

살면서 취향을 발견하고 그 취향을 누릴 때 느끼는 소소한 즐거움이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취향이 하나둘씩 늘어가고 뚜렷해진다.

내가 좋아하는 취향의 빵을 잘 만드는 동네 빵집을 발견했을 때.

카페에 모든 사람들이 보이는 한적한 구석자리가 남아있을 때.

안 어울릴 것 같은 레트로한 느낌의 카펫을 서재에 깔아놓았을 때.

그때 느낄 수 있는 그 소소한 기쁨.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나의 취향을 발견해 가고, 그것을 누리는 즐거움.

이런 것들이 삶을 더 풍성하게 채워주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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