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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희철 May 27. 2016

덕수궁에서 바라본 서울 풍경

경향신문 2016.5.25일자 <윤희철의 건축스케치>

신록이 무르익어가는 5월 초 러시아 문학을 공부하고 있는 대학생 딸아이와 함께 덕수궁 현대미술관에서 변월룡(1916~1990)의 세계를 감상하였다. 수많은 인물화와 폭풍우 몰아치는 풍경, 소나무를 비롯한 다양한 북한 묘사에 한동안 우리 부녀의 시선이 움직일 줄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익숙지 않은 그 이름. 고려인 2세로 옛 소련에서 가장 유명한 레핀 예술학교 교수가 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았어도 끝까지 변월룡이란 한국 이름을 고수하였던 인물.


그는 1953년 소련 문화성의 명령에 따라 북한에 파견된다. 북한에 머물렀던 1년 3개월 동안 수많은 북한의 인물, 풍경을 화폭에 담으며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모범을 전수했다. 하지만 북한의 영구귀화를 거부하여 북한에서도 잊혀진 인물이 되고 말았다. 백남준, 이응노와 동등하게 다루어져야 할 대가라고 극찬을 한 유홍준 교수의 평가처럼 위대한 화가의 존재를 적성국 소련의 화가라는 이유로 지금껏 존재를 알 수 없었던 천재 화가.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었던 고국의 현실이 평생의 한으로 맺혀 있었을 그를 생각하니 분단이라는 트라우마가 또 다시 우리를 괴롭힌다.


많은 여운을 뒤로한 채 미술관 밖을 나서니 문득  예상치 않았던 진풍경이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대한민국의 한 복판인 서울시청 옆으로 고궁의 열린공간을 둘러싸고 있는 서울의 또 다른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왼쪽에 자리한 서양의 신고전주의 양식인 석조전을 비롯하여 중앙에 전통양식의 중화전, 그 너머로 곡선미를 자랑하는 서울시청사, 그리고 양 옆으로 넓게 드리워진 모더니즘의 빌딩 숲. 덕수궁 현대미술관 앞에 펼쳐져 있는 풍광은 서울시내 한 복판에서 다양한 건축양식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건축전시장 그 자체이다. 넓은 영국식 정원 중앙에 시원하게 물줄기를 내뿜고 있는 분수와 좌측으로 수양버들마냥 늘어진 벚나무 가지가 만들어 내는 자연스런 곡선은 주변의 건축물들과 한데 어울려 멋진 풍광을 자아내고 있다. 수없이 주변을 오갔으련만 덕수궁 내에서 이렇게 멋진 풍광을 처음 느껴보다니 내 자신이 쑥스러울 따름이다. 


여름을 기다리는 봄날의 정취도 이리 아름다울진데 벚꽃이 만발했을 때 와 봤더라면 더욱 멋진 그림이 나올 수 있었을 것 같은 서울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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