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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희철 Nov 08. 2016

이야기의 시작&창덕궁 이야기

<스토리펀딩> 1화

펜 드로잉의 시작
대학시절 나는 미대와 음대를 오가면서 많은 과목을 수강하였다. 그 중 미대의 데생 수업을 수강하면서 매일 한 장씩 크로키를 그려오는 과제가 있었다. 처음에는 주위의 소품을 그려서 과제 체크를 받았는데 어느 날 교수님은 “자네는 건축학도이니 건물을 그리는 것이 낫지 않겠나?”라고 말씀하셨다. 그 후로 나는 매일 한 점씩 주변의 건물들을 그려갔다. 그러면서 소실점이며 투시도에 필요한 지식을 많이 익히게 되었다. 한 학기의 수업이었는데 이 수업이 나에게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던 것 같다. 그때 이후로 나는 도면을 보면 실내건 실외건 free hand로 투시도를 그릴 수 있게 되었다. 방학 때는 화실을 다니면서 형태며 입체표현, 수채 등을 익혔다. free hand로 도면을 그리고 투시도를 그리던 습관으로 틈틈이 펜을 이용한 일반 풍경도 습작으로 그려왔다. 
그러기를 수 십 년. 3년 전 내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이 있는 지역의 신문에서 나에게 컬럼을 써 달라는 부탁이 들어 왔다. 원고료도 없었지만 나는 모아서 책을 내려는 생각에 유럽의 건축들을 소개하는 컬럼을 쓰기 시작하였다. 펜으로 기본 드로잉을 하고 그 위에 색연필로 컬러링을 한 그림을 바탕으로 그 건축물의 이야기를 연재하기 시작하였다. 10일에 한 편씩 글을 싣는 형식이었는데 횟수가 더해갈수록 나의 드로잉 실력은 점점 늘게 되었다. 1년 정도의 그림이 모아지자 개인전 겸 독창회를 가졌다. 음악에도 많은 시간을 투자해 왔던 터라(음악석사만 2개) 성악전공으로 개인전 때마다 독창회나 몇 사람으로 구성된 음악회를 함께 열고 있다. 이후로 또 다시 1년이란 시간동안 더 연재했던 원고들을 가지고 다시 두 번째 개인전을 작년 4월에 가졌다. 그간의 원고들을 모아 <유럽을 스케치하다>라는 단행본을 함께 출간한 출판회를 겸하는 개인전이었다. 
  

개인전 프로그램 앞면 
 

개인전 프로그램 뒷면


서울의 한옥을 그리다
일단의 해외 원고 작업을 마친 후로 나는 국내로 눈길을 돌렸다. 마침 서울디자인재단에서 주최하는 2015년 <서울상징관광기념품 공모전>이 있어서 이곳에 지원을 해 보기로 하였다. 창덕궁과 북촌의 한옥풍경을 주제로. 컬러링북들에 대한 관심들이 높아 나는 흑백으로 그려진 나의 그림을 컬러링용으로 사용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가졌다. 그래서 창덕궁 4컷, 북촌 4컷 모두 8컷의 흑백의 그림들을 제출하였는데 <동상>이란 소식을 전해 왔다. 컬러링을 할 수 있는 그림이라서 동상을 줬는지 아니면 흑백 그 자체로 작품성을 인정해서 줬는지 잘 모르겠다. 헌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흑백과 컬러링 한 것을 동시에 보여 주면 으레 컬러링 한 것을 더 선호하고 있어서 그냥 컬러링 한 그림을 제출했더라면 더 좋은 결과를 얻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펜 드로잉은 참 묘하다.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리는데 그려놓으면 사진의 느낌과는 아주 다른 멋이 묻어난다. 디테일이 잘 표현되기에 유화나 수채화의 느낌과는 사뭇 다른 독특한 맛을 낼 수 있다. 이러한 느낌으로 창덕궁과 북촌을 그렸는데 우리 전통 한옥 풍경이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렇게 펜 드로잉으로 남기면 일반 독자들에 있어서 새로운 시각으로 우리의 소중한 공간들을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아가 한국을 찾는 많은 외국인들에게도 아름다운 우리 공간의 모습을 간직할 수 있는 좋은 매체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스토리펀딩을 시작하며
나의 원고를 스토리펀딩에 싣기로 하였다. 온라인 상으로나 오프라인 상에서 나의 드로잉으로 교감을 갖고 싶어서다. 이렇게 온라인 상으로 독자들에게 관심을 유도하는 한편 앞으로 있을 개인전에서 직접 독자들과 만나고 싶다. 일정한 상황이 되면 오프라인 상에서 펜 드로잉을 독자와 함께 그리는 시간도 갖고 싶다. 내가 습득한 펜 드로잉의 노하우도 전해드리면서 말이다. 국내편 드로잉의 시작을 서울에서부터 시작하여 전국으로 투어를 할 예정이다. 금번의 스토리펀딩의 글과 그림은 약 2개월(약 8회) 정도의 기간의 분량이 될 것이다. 하여 서울의 주요 공간들의 그림과 이야기로 스토리를 마련해 보고자 한다. 서울의 내용이라 교통비는 그다지 들지 않으나 나의 드로잉을 스캔하는데 비용이 만만찮게 든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이 포천이라 종이 규격이 50cm✕30cm 되는 크기를 정밀 스캔하려면 매번 충무로에 가야 한다. 오가는 시간도 여간이 아니거니와 스캔비용이 너무 비싸다. 더욱이 전시회를 하려면 적잖은 비용이 소요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나는 독자 여러분의 도움을 청하고 싶다. 도움을 주시는 분들께는 나의 작품으로 제작된 그림카드며 최근에 출간된 캘린더나 펜드로잉 서적을 선물로 드리고자 한다. 자세한 내용은 리워드 부분을 참고해 주시기 바란다.


드로잉 도구들 


나의 드로잉을 가능하게 해 주는 친구들이 있다. 종이, 연필, 펜, 색연필, 종이. 그들이다. 종이는 면이 거칠지 않은 판화용지를 주로 사용한다. 종이위에 0.7mm의 샤프 펜슬로 밑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0.3mm의 펜으로 본 그림을 그린다. 펜은 잉크가 시간이 흘러도 변색되지 않는 수성펜을 사용하는데 얼마 전까지는 독일산 STAEDLER 사에서 나온 pigment liner를 사용해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가장 내구성이 있다는 ‘인디안 잉크’가 주입된 FABER CASTEL 사에서 나온 ecco pigment 펜을 사용하고 있다. 펜으로 대부분의 그림이 완성된 이후에는 색연필로 컬러링을 한다. 색연필은 FABER CASTEL 사의 120색을 사용하고 있다. 비교적 많은 색을 가지고 있음에도 항상 색의 부족함을 느낀다. 최근에 150색이 나왔다는데 어떨지 한 번 살펴봐야겠다.  

















FABER CASTEL 색연필 120색





창덕궁 이야기


스토리펀딩의 글을 시작하면서 먼저 작년 <서울상징관광상품공모전>에서 동상으로 선정되었던 작품 중 창덕궁 그림으로 이야기의 문을 열어본다.

 

창덕궁을 위쪽에서 내려다 본 흑백의 펜 드로잉

창덕궁을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으로 0.3mm 펜으로 그린 것이다. 이 자체로도 완성된 그림이긴 하지만 이 위에 색연필로 컬러를 입힐 수 있도록 하였다. 구매자들이 컬러를 입힐 수 있는 샘플이 될 수 있도록 짙은 가을 분위기로 컬러를 입혔다. 앞서 언급한 120색의 색연필로.

짙은 가을 분위기로 컬러를 입힌 창덕궁

창덕궁은 경복궁의 동쪽에 있어서 창경궁과 함께 동궐(東闕)이라 불려 왔다. 태종 5년(1405년) 경복궁에 이어 조선시대 두 번째로 세워진 이 궁궐은 조선 초기부터 여러 임금이 법궁인 경복궁을 기피하여 이 창덕궁을 찾았다. 경복궁이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868년 재건될 때까지 창덕궁은 조선의 임금들이 거처하는 실질적인 정궁의 역할을 해 왔던 궁이다.


부용지 전경 흑백 펜 드로잉


창덕궁의 궁궐이 있는 북쪽, 비원(秘苑)으로 알려진 후원에 있는 부용지의 모습이다. 정말 아름다운 장소이다. 몇 장의 사진을 연결하여 와이드 앵글로 흑백의 드로잉을 완성하였고 이 흑백의 드로잉 위에 가을정취를 컬러로 담아 봤다.


 

흑백 펜 드로잉 위에 컬러를 입힌 부용지 전경

 
창덕궁의 후원(後苑)은 왕의 동산이라는 뜻에서 금원이라 불렀으며 비원(秘苑)이라는 명칭은 일제가 불렀던 용어이다. 자연의 지세를 그대로 살리면서 인위적인 면을 최소화하였던 우리나라 정원의 특징이 가장 잘 반영된 유일한 궁궐 후원으로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후원 중 가장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고 있는 곳이 부용지 주변이다. 부용지는 사각형의 연못으로 가운데에는 원형의 인공 섬이 놓여있다. 이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다’ 라는 원리가 투영된 것이다. 그림에서 좌측에 보이는 정자는 두 개의 기둥을 연못속에 담그고 있는 십자형 평면에 팔작지붕을 한 부용정이다. 중앙에 큰 4개의 기단 위에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는 주합루는 1층은 왕실 도서관 격인 규장각, 2층은 열람실 겸 누마루로 이루어져 있다.  우측에 있는 건물은 영화당으로 이 건물의 우측 마당은 과거 시험장으로 사용되었던 공간이다. 
 
 


창덕궁의 주요 전각들을 뒤로하고 동쪽으로 진행하면 낙선재에 이르게 된다. 낙선재에 들어서기 직전에 넓은 열린 공간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좌측을 바라보면 여러 단의 화계(花階)에 멋들어지게 소나무들이 드리워진 뒤쪽으로 펼쳐지는 한옥의 풍광이 다가온다. 그림에서 우측이 낙선재이고 화계 위쪽에 놓인 건물 중 왼쪽이 승화루이다. 이 승화루는 세자의 서적을 보관하고 학문을 논했던 용도로 사용하던 건물이다. 흑백으로 드로잉을 완성한 뒤 역시 짙은 가을풍경으로 채색을 하였다.


승화루와 낙선재 흑백 펜 드로잉
흑백 펜 드로잉 위에 컬러링을 한 승화루와 낙선재



창덕궁 동쪽 끝자락에는 궁궐과는 사뭇 다른 민가의 건축물이 나타난다. 낙선재로 불리우는 이 건물은 헌종(조선 제 24대)이 후궁이었던 경빈 김씨를 위해 지은 것으로 ‘선한 일을 즐겨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낙선재 우측에 있는 석복헌과 다시 그 우측에 위치한 수강재를 합하여 이들 영역 전체를 낙선재라 부르고 있다. 3개의 건물 가운데 맨 왼쪽에 있는 낙선재는 헌종의 서재로 사용되었다. 헌종은 사랑하는 경빈 김씨를 위해 낙선재 우측으로 그녀의 처소인 석복헌을 지어 선물을 하였다. 그러나 헌종이 너무 짧은 생애를 마쳤기 때문에 실재로 석복헌에서 경빈 김씨와 함께 했던 시간은 2년여 밖에 되지 않았기에 안타까움이 함께하는 건물이기도 하다. 석복헌 우측에 있는 수강재는 만수무강을 빈다는 뜻으로 헌종의 할머니 순원왕후의 육순을 기념하여 지어 올린 건물이다.

낙선재 후정 흑백 펜 드로잉

이 낙선재는 연경당과 더불어 창덕궁 안에 건립된 사대부 주택으로 조선왕조 마지막 왕 영친왕 이은과 이방자 여사가 기거하였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석복헌에는 영친왕 이은의 아들 이구 씨와 그의 아내 줄리아가 미국에서 돌아와 생활하다 세상을 떠났던 곳이다. 수강재는 최근 영화로 개봉되어 우리에게 잘 알려진 덕혜옹주가 일본에서 귀국하여 마지막까지 지냈던 곳이다. 낙선재 뒤뜰에는 산책하기를 좋아했던 순종의 비 윤씨를 위해 지은 별당인 한정당이 자리 잡고 있다. 아래의 그림은 이 풍경을 흑백으로 드로잉 한 후에 4월의 봄 분위기를 컬러링 한 모습이다.

흑백 펜 드로잉 위에 컬러링을 한 낙선재 후정

창덕궁은 법궁인 경복궁과 달리 자연의 지형을 최대한 살려서 건축을 함으로써 자연스러움이 잘 드러나는 궁궐이다. 특히 후원에서 보여지는 조경과 건축물의 조화는 자연을 대하는 우리 선조들의 자연관을 가장 잘 보여준다. 건축물과 각 공간들이 위계가 분명하면서도 자연이라는 요소가 건물의 배치와 건축조형 곳곳에 배어 있는 창덕궁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아름답고 편안함을 느끼게 해 주는 가장 대표적인 우리 건축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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