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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희철 Sep 06. 2017

산정호수

경향신문 <윤희철의 건축스케치> 2017.9.7일자

포천의 북단에 위치한 산정호수는 일제 강점기인 1925년에 농업용수로 이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저수지였다. 이 저수지는 명성산을 비롯한 여러 봉우리에 에워싸여 ‘산속의 우물과 같은 맑은 호수’라는 뜻의 산정호수(山井湖水)라고 이름이 지어졌다. 이 호수를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는 명성산은 후 고구려를 건립한 궁예가 왕건에게 쫒겨 이 산에 은거지를 만들어 생활하다가 피살되었던 산으로 유명하다. 한 때의 영화를 누리던 왕에서 반란군에게 쫒겨 숨어 지내는 처지가 된 궁예는 이 산에서 한 동안 크게 소리내어 울었다 한다. 그래서 이 산을 울음산이라 부르게 되었고 명성산(鳴聲山, 923m)은 ‘울음산’의 한자 표기이다. 호수 옆에 위치한 망무봉(446m)과 망봉산(384m)은 궁예가 왕건 군사의 동태를 망보았던 곳이라 해서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다. 호수 근처에 있는 ‘파주골’은 본래 이름은 ‘패주골’인데 이는 궁예가 왕건에게 쫒겨 도망쳤던 골짜기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처럼 산정호수 주변에는 궁예와 관련된 지명이 많다. 

김일성 별장터에서 바라본 산정호수와 명성산

산정호수는 김일성과도 관련이 깊은 곳이다. 6.25 이전에는 이 일대가 모두 북한 땅이었다. 김일성은 구 유고의 티토 대통령의 초청으로 슬로베니아의 블레드 호수에 위치한 티토의 별장에 머무른 적이 있다. 티토의 별장은 알프스에 둘러싸인 호숫가에 위치해 있었다. 김일성은 이 티토의 별장에 감동하여 블레드 호수와 비슷한 풍광을 지닌 산정호수에 자신의 별장을 건립하였다. 별장터만 남아있는 위치에서 호수를 바라보면 뒤쪽의 명성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멋진 풍광을 만들어낸다. 그림은 그 위치에서 바라본 산정호수의 모습이다. 그는 산정호수가 아름다웠던 이유도 있었지만 이 호수를 한반도를 적화통일하려는 자신의 야망을 구체화할 수 있는 좋은 장소로 여겼다 한다. 산정호수의 모양이 우리나라 지도를 좌우로 뒤집어 놓은 모양이었기 때문이다. 의도적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의 별장터가 한반도의 최남단 부산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자신의 별장건설이 부산까지 점령하려던 그의 야망을 실현하는 상징으로 삼았는지도 모른다. 

산정호수는 수려한 풍광과 함께 곳곳마다 역사의 주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0월에 펼쳐지는 <명성산 억새꽃 축제> 때에는 호수 둘레길을 걸으며 가을을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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