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중앙의 시테 섬에 위치한 노트르담 성당을 지나 북쪽으로 이어진 아르콜 다리(pont d’Arcole)를 건너면 우측에 파리 시청사가 나타난다. 파리 시청은 ‘오텔 드 빌(Hotel de ville)’이라 부르고 있어 시청이 아닌 호텔로 착각하기 쉽다. 오래전 혼자 배낭 여행을 갔을 때 노트르담 성당을 보고난 뒤 퐁피두 센터를 보기 위해 길을 걷던 중 너무 멋진 건물이 있어 발길을 멈추게 되었다. 간판을 보니 Hotel이라 씌여 있어 파리의 고급 호텔답게 역사적 건물의 냄새가 물씬 풍겨나는구나 하며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그런데 나중에 돌아와서 검색해 보니 이 건물이 호텔이 아닌 시청이었다는 사실에 머쓱했던 기억이 있다. 프랑스어로 시청사를 Hotel이라고 부르나? 해서 알아보니 프랑스어에서 Hotel은 ‘주요 건물이나 대저택’을 의미한단다. 빠리인들에게 시청사는 크기도 하거니와 중요한 건물이니 Hotel이라 부를만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오텔 드 빌은 1553년에 짓기 시작하여 1628년에 완공하였다. 르네상스 양식과 바로크 양식을 절충한 건축물로 나폴레옹과 마리 루이즈 결혼식이 거행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1871년 파리 코뮌 때 화재로 전소되었다가 1873년 설계 공모에서 원래 모습의 안이 채택되어 9년 만에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건물 정면에는 파리를 빛낸 위인들의 조각상 108개와 프랑스의 다른 도시들을 대표하는 조각상 30개로 건물을 장식하고 있다. 중앙탑에 위치한 시계는 세느 강, 파리, 노동과 교육을 상징하는 여자 조각상들로 둘러싸여 있고 그 밑에는 프랑스 혁명의 3대 정신인 ‘자유, 평등, 박애’ 세 단어가 새겨 있다.
건물앞 광장은 원래 세느 강변의 작은 백사장에 불과했다. 1802년까지는 그레브 광장(백사장의 의미)으로 불리웠으며 중세 시대에는 실업자들이 일자리를 찾아 배회하던 노동자들의 집합장소였다. 나폴레옹 3세 때 총리였던 오스만(Eugene Haussmann)이 중세시대부터 좁은 골목들로 복잡하게 얽혀 있던 파리 시가지를 대대적으로 개조하였다. 파리 대 개조계획으로 복잡했던 파리 시가지는 사통팔달의 교통망 체계로 변모하였고 이때 파리 시청은 물론 시청앞 광장이 맨 처음보다 4배나 확장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조성된 시청앞 광장은 귀족과 시민들의 처형 장소로 악명이 높았다. 1310년 이교도 두 명이 이 광장에서 최초로 처형된 후 이 광장은 시대에 따라 갖가지 처형 방법이 시험되는 시험장이 되었다. 프랑스 혁명 때 기요틴이 만든 단두대가 처음 설치된 곳도 바로 이 광장이다. 시청앞 광장은 단두대를 설치한 이후 단두대 처형의 주요 형장으로 사용되어 오다가 1830년 마지막 단두대 처형 이후 광장은 ‘오뗄 드 빌 광장’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한때 시위와 혁명의 장소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현재는 다양한 도시 행사를 위해 사용되고 있다. 여름이면 야자나무와 비치 발리볼 코트, 탈의실을 설치하여 도심 한복판에서 해변에 온 듯한 분위기(파리 플라주)를 연출하고 겨울이면 조명을 곁들인 아이스링크를 만들어 시민들의 레저와 휴식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