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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희철 Mar 02. 2016

국보 1호 숭례문의 수난사

경향신문 2016년 3월 2일자 <윤희철의 건축스케치>


남대문이라 불리우는 숭례문(崇禮門)은 한양도성을 둘러쌌던 성곽의 정문으로 태조 7년(1398년)에 건립되었다. 조선시대 한양의 4대문과 보신각의 이름은 오행사상을 따라 지어졌다. 각각의 문들은 인(仁: 동), 의(義: 서), 례(禮: 남), 지(智: 북), 신(信: 중앙)의 5덕(五德)을 상징하였다. 그리하여 동쪽의 흥인지문(동대문:仁)과 서쪽의 돈의문(서대문:義), 남쪽의 숭례문(禮), 북쪽의 숙정문(智) 그리고 중앙의 보신각(信)이 그러한 의미로 명명되었다.


다른 문들의 편액은 모두 가로로 쓰여 있으나 유독 숭례문의 편액만은 세로로 씌여져 있다. 그 이유는 경복궁을 마주보는 관악산이 화(火)의 기운이 강하여 관악산의 불기운을 누르고자 불이 타오르는 형상이 되도록 숭례(崇禮)의 두 글자를 세로로 세웠다 한다.


숭례문은 기둥과 기둥사이에도 포(包)를 얹은 다포(多包)형식의 우진각 지붕을 한 중층 건물로 서울에 남아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었다. 그러나 지난 2008년 2월 10일에 발생한 화재는 국민의 공분과 허탈감에 젖어들게 하였다. 일제 때 지정되었고 화재로 소실되는 한편 나아가 복원과정에서 조차 부실로 오명을 안고 있는 숭례문은 작금 국보1호로서의 자격에 대한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숭례문은 여전히 대한민국 국보1호라는 상징이며 그 상징이 눈앞에서 스러져갈 때 대한민국 국민은 모두가 충격속에서 헤어나질 못하였다. 이후 긴 기간을 거쳐 복원이 이루어지긴 하였지만 여전히 우리들에게 남아있는 의문점은 어쩌면 그렇게 중요한 문화재 소실에 대해 무기력할 수 밖에 없었던가 하는 점이다. 이 사건 역시 우리들에게 시스템의 부재라는 해묶은 명제에 또 다시 천착하고 말았다.


지난 2011년부터 매년 숭례문이 소실되었던 2월 10일을 문화재 방재의 날로 지정한 것은 이제부터라도 우리 문화재에 대한 체계적인 방재시스템을 갖추어 보자는 노력의 일환이다. 숭례문 화재 8주년을 맞은 지난 2월 12일 경복궁 민속박물관에서는 문화재 방재를 다지는 문화재 방재학회의 전문가 포럼이 있었다. 문화재 방재에 있어서 민, 관, 학이 머리를 맞대어 다시는 숭례문 화재와 같은 국가적인 비극이 재현되지 않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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