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석같은 아이의 마음
모든 유치원 속 각 반들이 그렇듯 우리 반에도 등원루틴이 있다
가방을 풀고,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모두 제쳐두고 가장 먼저 해야하는 것은
"OOO 선생님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와 함께 선생님을 안아주는 것이다
인사만 하고 가도 안되고 꼭 포옹의 과정이 있어야한다
그럼 나는 "어서와!! 우리 귀염둥이!" 하며 두 팔을 크게 벌려 아이들을 맞이해준다
'밥 먹고 왔어? 뭐 먹었어?'
'오늘 머리부터 발끝까지 핑크네? 핑크 공주님인데?'
'오늘 축구복 입고왔네? 축구하러 가? 오오~~ 손흥민 선수 같은데~'
'뭐야 오늘 좀 힘이 없는데? 아침 안 먹고 왔어? 오늘 점심 많이 먹자!'
이렇게 인사와 함께 나누는 짧은 1:1 수다는 아이들과의 관계를 더 깊게 해주며
아침을 즐겁게 시작할 수 있게 한다
나도 아이들도
서로를 환영하며 '오늘도 우리 재밌게 지내보자? 화이팅?' 하는 우리 반 만의 약속이랄까?
아이들은 매일 이 인사를 위해 선생님!! 하고 뛰어오기도 하고
선생님과 껴안기 전부터 미리 웃으면서 포옹의 자세로 다가온다
그런데 어느날 우리 반 석이가 교실문 입구에서부터 터덜터덜 걸어왔다
걸어와서는 인사도 왠지 힘 없는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라며 안아주긴 안아주는데
그냥 통나무처럼 다가와 기대기만 하는 게 아닌가
"엥? 석이 오늘 왜그래? 무슨 일 있어?"
"..........."
"왜애 선생님한테 말해봐"
"..........."
"선생님이 도와줄 수 있을 수도 있는데?"
"..........음.."
"왜, 아침을 안 먹고 왔어? (절레) 그럼 집에서 속상한 일이 있었어?"
"아니..... 에휴..."
한숨 끝에 천천히 시작한 이야기는
"아니~ 엄마가 유치원 끝나고 스티커도 사주고 도넛도 사준다는데. 너무 많이 사준다고 하니까..
엄마 돈 없을까봐, 내가 걱정이 되서..."
"뭐라고?!"
정말 생각지도 못한 너무너무너무 귀엽고 마음 예쁜 답변에 그 아침에 석이를 껴안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내가 한참을 웃자
석이도 처음엔 어리둥절하더니 "아 왜 웃어요~~" 하고 부끄러워하며 같이 웃고 다른 친구들도 기웃거리면서 다가왔다
석이에게는
"석아! 엄마가 석이랑 누나 맛있는 거 많이 먹으라고 열심히 일하시는 걸꺼야!
그러니까 석이는 돈 걱정 너무 많이 안해도 괜찮을걸?
그런데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이 너무 예뻐서 선생님 감동받았어
엄마가 석이가 이런 생각을 하고 계시는 걸 알면 정말 기뻐하시겠다. 선생님이 전해줘도 돼?"
라며 걱정을 뒤로할 수 있게 잘 달래주었고
그날 바로 어머님께 전화해서 이 에피소드를 알렸다
어머님도 석이의 마음에 감동하고 귀여움에 같이 웃으시더니 전말을 들려주셨다.
'아침에 도넛츠가게 메뉴판을 같이 봤는데 석이가 "헤엑- 하나에 1300원?? 너무 비싼 거 아니야?! 1600원????! 이건 더 비싸네! 나 하나만 먹어야겠다 엄마" 라고 하더라구요. 그러더니 유치원에까지 가서 걱정할 줄은 몰랐네요'
다음날 석이가 등원했을 때 꼭 안아주며 물어봤다
"그래서 석아 너 어제 도넛츠 먹었어? 몇 개 먹었어?"
(손가락 세개를 펴곤 씨익 웃으며) "3개.."
"ㅋㅋㅋㅋㅋ맛있었지?!"
"네!"
정말 너무너무 귀엽고 예쁜 마음 아닌가
이 마음들을 내가 30넘어서 누릴 수 있다는 게 유치원 선생님으로서의 특권이자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원석같은 귀한 마음이 담긴 이야기를 이렇게 모아 모아서
귀한 줄 아는 교사가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