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씨름 대장 튼튼이의 친구를 향한 예쁜 마음
유치원은 바쁘다. 항상 바쁘다. 1년 내내 거의 바쁘다.
1년을 살아가며 경험할 수 있는 계절과 명절, 크고 작은 기념이 되는 날들을 정성들여 준비하고 경험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9월에는 추석이 있으니 2학기 시작 전부터 민속의 날 행사를 준비한다.
우리 유치원에서는 민속의 날을 맞이해 연령별 '팔씨름 대장'을 뽑는데,
각 반에서 팔씨름 대회를 치른 후 각 반의 대장끼리 겨루는 시스템이다.
우리 반에는 굳이 겨뤄보지 않아도
아이들도, 나도, 지나가는 선생님도 1등일거라 예상하는 친구가 있었다.
키가 제일 작은 친구보다 머리 하나가 더 있는 아이.
이제부턴 튼튼이라고 하겠다.
튼튼이는 평소 장난이 심하고 행동 조절이 조금 어려운 친구다.
지나가다가 친구들 머리를 툭툭 치고 지나가다 장난감이 보이면 발로 차고,
수업 시간에 새된 소리를 꽥 지르고, 재밌거나 흥분하면 선생님의 이야기를 잘 듣지 못하는.
하지만 선생님에게 한결같은 애정을 보여주고 또 애정을 갈구하는 아이.
친구들에게 도움 주는 것을 좋아하는, 열심히 자라나고 있는 6살 남자아이다.
팔씨름대회가 예정되어있다고 아이들에게 공지를 했을 때
반 아이들은 '으악! 튼튼이를 어떻게 이기지? 튼튼이랑 하면 질 것 같아!'
'선생님! 전 튼튼이랑 안할래요!' 하며 당연히 튼튼이가 1등이 될거라고 이야기했다.
'글쎄,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거 아니야? 너희도 집에 가서 연습 많이 해봐! 그리고 이기고 지는 것보다 더 좋은 건 즐기는거야!'라고 대답해주긴 했지만 나도 역시 당연히 튼튼이가 이길 것이라 생각했다.
우리 반 팔씨름 대회 당일.
우리 반에서의 최강자를 가려야 했다.
자 여기서 한 친구가 또 등장하는데 이 친구는 우리 반에서 몹시 작은 편에 속하는
하얗고 통통 튀는 매력을 가진 여자친구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이 친구를 냥이라고 하겠다
냥이는 팔씨름 대회 공지를 받고 집에서 열심히 연습을 해왔다.
누가 봐도 너무나 가녀린 냥이인지라 한 판 승으로 질 것을 부모님도 선생님인 나도 알고 있지만
열정만은 뒤지지 않았다
냥이는 진심으로 이길 것이라는 기대감을 안고 경기에 임했다.
하지만 피지컬 싸움인 아이들 팔씨름대회에서 냥이는 튼튼이에게 한판승으로 져버렸다.(대진운도 없지 첫 판에 튼튼이가 걸렸다)
'으악! 졌잖아! 너 너무 쎄!!!' 하고 자리에 돌아가 앉은 냥이는 다른 친구들의 경기를 보더니
점점 표정이 어두워졌다
생각해보니 억울하고 속상했는지 갑자기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잠시 경기를 멈추고 냥이의 마음을 읽어주고 친구들과 선생님이 위로해주자
냥이는 천천히 진정되었다
팔씨름 대접전이 끝나고 승자가 결정되었다.
당연 튼튼이였다.
그렇게 경기가 끝나고 놀이 시간이 시작되었는데
갑자기 튼튼이가 냥이를 찾아갔다.
그러더니 "냥이야 나랑 팔씨름할래?" 라고 묻는 것이었다.
간신히 울음을 그친 냥이라서
'아니 무슨 속이지?! 한 번 더 지면 또 울 것 같은데????' 라는 생각에 나는 조금 긴장했다
냥이는 좋다며 팔을 걷어부치고 벌써 자세를 잡았다
어쩌려고 그러나.. 싶어 조금 떨어져 지켜보는데
튼튼이가 시작!소리와 함께 연기를 하는 게 아닌가
아이고~ 하며 팔씨름에서 져준거다
냥이가 이기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그걸 다 받아주고, 냥이는 이겼다고 깡총거리고는 모습을 보며 슥- 웃는거다
그리곤 너가 이겼네! 너도 잘하네! 하는 축하와 격려까지.
너무 스윗한 모습에 깜짝 놀랐고 감동스러웠다
팔씨름 1등이 되어 기쁨에 취해 자랑하는 게 아니라, 활동이 끝나자마자 속상했던 친구를 찾아 위로 게임을 벌이다니..
너 내가 아는 튼튼이 맞아?! 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오늘 오전에도 분명 친구를 불편하게 해 민원이 몇 건 접수되었던 튼튼이인데
이게 무슨 세상 스윗한 패배란 말인가..
이렇게 네가 친구의 마음을 배우는구나
이렇게 너만의 위로를 배우는구나!
아마 냥이도 알았을 거다
튼튼이가 져준거라는 걸
그래도 그 마음이 고마운 거라는 걸, 6살 아이도 안다
당일 튼튼이는 우리반 mvp로 뽑혔다
냥이가 추천했고 목격자였던 나도 오바싸바 하며
튼튼이의 예쁜 마음을 칭찬하고 공론화시켰다
"세상에 튼튼이가 냥이 속상해하는 모습을 기억하고
팔씨름 끝나고 한 판 더 하자고 하더라고!!
냥이가 이겼어. 근데 얘들아 튼튼이가 냥이를 축하해주고 그랬다니까? 속상했던 친구 마음도 읽어주고 한 판 더 해서 친구가 이길 수 있는 기회도 또 준거지! 정말 멋진 마음이지???"
아이들은 '에이~ 져준 거 아니에요???' 했지만
튼튼이는 또 '아니야! 그때는 냥이가 더 쎘어!'했다
너 진짜 끝까지...
눈빛으로 튼튼이에게 끄덕-(너 최고..!)를 외쳤고
mvp 포상인 가마를 학생선생님과 함께 번쩍 들어 태워줬다
일과가 끝나자마자 튼튼이 어머님께 이 일화를 알렸다
다른 아이들과의 갈등이 잦은 걸 알고계시고 그것이 큰 고민이셨던 어머님은 이야기를 듣고 너무 기뻐하셨고
나는 더 기뻤다 신나서 아주 상세히 수다스럽게 전했다
이렇게 아이들이 큰다!
몸뿐 아니라 마음도 큰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이렇게 기억하고 기록할 수 있는 건
교사가 누릴 수 있는 크나큰 복지다
튼튼이도 냥이도 꽤 잊지못할 하루를 보냈을거다
다른 아이들도 그 마음을 배웠을거다
우리 반에서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배워가기를
나도 같이 배워야지 그리고 또 더 많이 돌려줘야지!
/ 작년 9월에 쓰던 글을 이제야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