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의 독서는 우연의 결과물들이다. 내가 일상을 떠돌다 만나는 책들이 나의 독서의 기록이듯이, 나의 독서는 정해진 길이 없다. 정확한 좌표가 없는 보물섬의 지도처럼 그저 호감 있는 작가의 작품을 읽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섬』을
읽게 되었다. 평소 읽는 장르도 아닌 에세이를 예기치 않게 읽고 난 후 내 마음속에 일렁이는 파고(波高)가 무엇인지 나는 깨닫지 못했다.
나는 『섬』을 읽고 일상을 벗어난 어느 하루 멀리 떠난 낯선 해안에서 마주친 파도처럼 내 일상에 부딪쳐온
잔잔한 파문을 잊을 수가 없었다. 『섬』은 그렇게 나에게 다가왔다.
장 그르니에의 제자 알베르 카뮈가 서문에서 밝힌 바 있는 인간 삶의 근원적 고통에 대한 공감대가 스스로
괜찮다며 덮어버렸던 나의 고통의 실체를 깨닫게 했다.
『카뮈-그르니에 서한집』은 내게 큰 울림과 감동을 주었던『섬』의 저자인 장 그르니에와 그 책에 서문을 쓴 그의 제자 알베르 카뮈가 28년에 걸쳐 주고받은 편지 서신을 모은 책자이다. 장 그르니에는 1930년에
폐병에 걸려 휴학 중이던 알베르 카뮈를 만나기 위해 그가 살았던 가난한 동네 벨쿠르를 방문했다.
그 첫 방문 이후 카뮈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1960년까지 그들은 서신을 주고받았다.
「~과연 이 책은 우리가 우리의 왕국으로 여기고 있던
감각적인 현실은 부정하지는 않으면서도 그와 병행하여
우리들의 젊은 불안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를
설명해 주는 또 다른 현실을 보여주었다.」 『섬』서문 6~7p
「~이 작가는, 어떤 고독에 대해서 말해야 할 경우
그 고독을 무대에 올려놓고 눈앞에 보여주는 것을 꺼립니다.
그분은 큰 인기를 끌 수 있는 연극이나 소설이 아니라
사람을 설득하는 장르인 에세이를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가장 순수하고 가장 수가 많고
가장 진심 어린 언어들 중의 하나인,
고독이라는 바로 그 언어를 말했습니다.」 P429-카뮈
인간은 과연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운명이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필연이라고
말하는 실타래 속에 인간은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알베르 카뮈와 그의 스승 장 그르니에를 비춰봤을 때
그러하다.
사람은 절대로 자신이 하고 싶은 그대로 하고 살 수도 없지만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태어날 수도 없다.
자신이 가진 능력과 전혀 연관성이 없는 삶에 속할 때 인간은 그걸 운명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카뮈는 자신이 지닌 능력을 인식할 즈음 그에게 운명처럼 찾아온 폐병과 동시에 그의 평생의 스승이자 친구인 장 그르니에를 만나게 되었다.
「<<이방인>>에 대하여 선생님이 써주신 글,
어떻게 감사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 글을 읽는 것이 제게 더할 수 없는 기쁨이 될 것입니다.
부디 발라르에게 부탁하여 제게 잡지 한 부를 보내도록 해주십시오.
여기서는 아무것도 구할 수가 없습니다.」 p123-카뮈
「어제 식품 소포를 하나 보냈습니다.
~그리고 갈색 가루가 든 통이 하나 있을 것입니다.
그건 버섯 가루입니다.
그건 제가 직접 따서 준비한 것입니다.
~그 가루는 소스를 만드는 데 사용하면 최고입니다.
~그 모든 것이 양호한 상태로 배달되었으면 합니다.」 p147-카뮈
나는 이 책을 통해 알베르 카뮈와 그의 스승 장그르니에와의 문학을 넘어선 개인적인 친분의 관계까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각자의 문학적 영역에서 서로 서평을 써주고 서로의 영역을 옹호하는 범위를 넘어서서 서로의 집필에 필요한 서적을 추천하고 서로의 독서영역을 공유하는 관계, 더 나아가 주방의 조미료인 버섯가루까지 공유하는 나이 열다섯 살 차이 나는 이 사제관계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나이차이 열다섯 살은 참 애매한 나이차다. 스승으로서도 그렇고 보호자로도 친구로서도 그렇다. 그런데도 그들은 스스럼없이 서로 친구라고 말한다.
열다섯 살이라는 애매한 나이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부탁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심지어 돈 문제까지도 편지로 의논할 상황이라면 그것 참.... 가족보다 나은 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저런 군소리를 늘어놓지 않고도 개인이 가진 최상의 것이 다른 사람과 서로 합쳐지고,
또 그러면서 자기주장을 포기하지 않고도 그 개인 안에서 다른 사람을 발견할 수 있는
그런 경지에 당신이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나는 매우 기뻐요.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저항할 상대가 되는 어떤 사람이나 사물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p265-그르니에
사람은 누구나 거울을 본다. 그건 자신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이다. 내 잇몸에 고춧가루가 끼었는지 다른
사람들 눈에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보기 위해 거울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거울이 언제나 제대로의 모습을
비추지는 않는다. 주관성이 개입한 거울을 보는 경우 나의 모습은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작가의 운명을 타고난 이에게 그 자신을(카뮈) 비출 올바른 거울(장 그르니에)-' 개인이 가진 최상의 것이
~저항할 상대'-을 만난 건 행운일지도 모른다.
「하기야 선생님께서 이미 다 알고 계셔서
제가 구태여 말씀드릴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친구에게 자신의 생각을 설명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에게 설명하는 것이겠지요.」 p307-카뮈
그러나 거울(장 그르니에)에 자신을 비춰봄으로써 그 자신이 문학을 통해 길어내고자 했던 질문의 답을
스스로 구하게 된다면 어떠할까? 물론 자신의 삶의 정답은 그 스스로 찾을 수밖에 없지만 거울(장 그르니에)을 통해 그 스스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확인하게 되었다면 이 경우엔 그러한 거울을 택한 그 스스로를 칭찬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알베르 카뮈가 『이방인』을 썼을 때 그의 의식 속에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에 처한 인간이 느끼는 부조리에 대한 모호한 의식이 존재했다. 그는 그 모호함을 포착하여 작품으로 구체화시켰고 이를 또 그의 『시지프
신화』에 담아냈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어느 하나의 모호한 포즈에 불과했을 뿐, 이를 포착하고 구체화시키고자 하는 불안한
시점에 카뮈는 그의 스승에게 조언을 구함으로써 그 스스로 찾고자 했던 답을 스승과의 서신 교환을 통해
찾을 수 있었다.
이들은 작품에 대한 의견교환을 직접적 대면(말)이 아닌 서신(글)을 통해 함으로써 자신의 사유의 정당성을 구체적으로 도식화시키고 그 오류를 바로잡아 진전시켜 나갔다.
『이런 것이 바로 제가 며칠 전부터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는 생각입니다.
이렇게든 저렇게든 저는 선생님께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생님께서 어떤 대답을 주실지 상상해 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제 마음을 잘 알고 계십니다.』p186
물론 여기에서 중요한 건 선생님의 마음이 아니고 '제 마음'이다. 사실 장 그르니에와 알베르 카뮈가 사상면에서 같은 길을 걸었다고 볼 수는 없다. 장 그르니에는 항상 어떤 방향을 제시했을 뿐 구체적으로 무언가를 지시하고 그걸 카뮈가 따랐다고 볼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신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뿐 전혀
동 떨어진 삶을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분명 당신의 글을 읽은 사람들이 다 그렇겠지만,
어쨌든 나는 당신 자신의 생각을 충실하게 따르겠다는
그 확고한 태도와 그런 태도를 실천에 옮기며 살겠다는
그런 의지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나는 때로 그 생각 자체 속에,
그 생각의 가장 깊은 근저에 당신의 삶을 정당화하고자 하는 욕망이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곤 합니다.
~어떤 이상을 위하여 사는 것은 부조리한 것이
아닙니다. 그 까닭은 바로 세계가 부조리하기 때문이고,
그리고 그 세계를 위하여, 그 세계
때문에 사는 것이 부조리하기 때문입니다. 」 p143~144-그르니에
->「~부조리의 신화는 존재하지만 부조리의 사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어디에 와 있는가,
어디로 가는가 하고 선생님은 물으시겠지요?
제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바로 그것입니다.」 p150-카뮈
※부조리의 사상에 대한 스승 장그르니에의 질문에 대한 알베르 카뮈 스스로의
답이 부조리에서 진전된 주제인 '반항'-『반항하는 인간』, 『페스트』에 담겨있다.
「<<페스트>>에 대하여 편지에서 해주신 말씀 또한 감사합니다.
~인간은 결백하지 않고 '또한' 유죄인 것도 아닙니다.
이 모순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을까요?
~그래서 리유는 "나는 모른다"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 무지의 고백에 이르기 위하여 아주 먼 곳을 돌아온 겁니다.」 p219-카뮈
->「저는 점점 더 우리가 그 어떤 거대한 집단 기만에 둘러싸여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그러니 그 기만을 폭로하기 위해서는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바를
가장 의연하게 말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 P295-카뮈
※ '반항'을 주제로 한 『페스트』와 『반항하는 인간』에 대한 스승과의 주제토론에 대한 카뮈식 대답이 『전락』에 담겨있다.
이 책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 두 사람의 개인적인 친분이 아니다. 이 서신들을 통해 우리는 이들이
상대방에게 자신을 비춰봄으로써 서로가 상승하는 관계가 이 둘 사이에 형성됐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장 그르니에는 도가적인 성향의 사람으로 자신의 공백 안에 이야기를 담음으로써 큰 울림을 두는 에세이를
썼다면 알베르 카뮈는 자신의 삶을 통한 성찰을 통해 자신의 작품 속에서 인간의 진솔한 모습을 담아낸 작가였다. 이 두 사람은 같은 공간에 있지 않았지만 서로의 작품을 공유함으로써 각자 갖지 못했던 공백을 상대편의 작품에서 길어옴으로써 자신의 작품의 상승을 이끌었던 것으로 보인다.
처음부터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큰 그림의 모습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 어쩌면 알베르 카뮈는 그 자신이
그 스스로 가지고 있던 본원적 질문의 답을 문학을 통해 이끌어낼 생각을 그의 스승을 통해서 결심을 굳혔는지도 모른다. 그는 그 과정에서 계속해서 자신의 질문을 스승을 통해 되물음으로써 어쩌면 찾을 수 없는
좌표를 조금씩 찾아 나갔을 수도 있다. 알베르 카뮈의 부조리->반항->인간으로 나아가는 사고의 진전과정의 모두에 그의 스승인 장그르니에의 모습이 비치는 것을 보면 이 책의 총평을 맡은 파트릭 코르노의 「"장 그르니에가 없으면 알베르 카뮈도 없었을 것이다.
" 쥘 루아가 한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것이 못된다. 하지만 완전히 틀린 말이라고는 할 수 없다. 카뮈 자신은 그르니에게 입은 은혜를 공공연하게 인정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한편 그르니에 쪽에서도 자신이 인도자로서 담당했던 역할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제자였던 카뮈에게 자신 또한 크게 빚지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카뮈의 말에 따르면 장 그르니에와 그의 관계는 예속도 복종도 아닌 대화요 교환이요 상호대조였으며,
영적인 의미에서의 '모방'이었다. 」는
해설집의 문맥은 알베르 카뮈와 장 그르니에의 관계를 단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역사상 이렇게 아름다운 관계가 있었을까?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도 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정도다.
상황이 이러하니 1960년 1월 알베르 카뮈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 열다섯 살 많았던 그의 스승인 장 그르니에의 마음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장 그르니에는 카뮈와의 서신에 마음의 빚을 갚겠다는 글을 자주 적었었다. 그 마음의 빚을 그는 카뮈 사후 칠 년이 지나 『카뮈를 추억하며』에 담았다.
자신보다 열다섯 살이나 어린 제자를 불의의 사고로 보내고 그와 보냈던 평생을 칠 년의 숙고에 담아 스승이 기록을 했으니 이들의 관계는 마지막까지도 훈훈하다.
ps: 개인적으로 알베르 카뮈의 공산당 탈당에 따른 사건의 전말이 궁금했는데, 다음과 같았다. 역시 카뮈
다웠다.
「이 문제에 관련하여 제가 어떻게 하여 공산당을 떠나게 되었는지
말씀드릴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당에서 벽보를 붙이고 신문을 판매하는 일 정도는 대수로운 게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당에서는 저에게 아랍인 당원들을 모집하여
그들을 민족주의 조직-나중에 P.A.A. 가 된
'북아프리카의 별'었습니다.-에 가입시키는 임무를 맡기더군요.
저는 그 임무를 수행했고, 그 당원들은 저의 동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36년의 전환기가 왔지요. 공산당이 인정하고 격려해 마지않는
정책의 이름으로 바로 그 당원들은 쫓기는 신세가 되었고 체포당했고,
그들의 조직은 해체된 것입니다.
간신히 추적을 피한 그중 몇몇은 제게 찾아와서
이런 비열한 짓을 아무 말도 않고 가만히 보고만
있을 거냐고 따지더군요.
~아직도 그들이 제게 와서 하는 말을 들으며 치를 떨었던
그때의 전율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부끄러웠습니다.
그 후 즉시 저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 P2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