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

[J.M 쿳시]

by 묭롶

2003년도 노벨상을 수상한 쿳시의 '추락'을 번역한 왕은철은 이 책에 대한 느낌을 '아이스 피켈로 얻어맞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책을 읽음과 동시에 책 속에 몰입되었고, 주인공 옆에서 같은

호흡을 내쉬었다.

그 체험은 굉장히 고통스러웠다. 심장은 터질 듯이 뛰는데 혈류는 서서히 너무나 서서히 흐르는 것과 같은 압박통과 머리는 뜨겁게 가열됐는데 이상하게 가슴은 서늘한 이 낯선 감정을 나는 주체할 수가 없었다. 책을 읽고 뭔가를 분석한다는 건 내 능력 밖의 일이라 판단되지만 독서의 과정 중 나름대로의 생각을 주섬주섬

정리해 본다.


먼저 '추락'의 줄거리를 살펴보자. 데이비드 루리 교수는 두 번의 이혼경력이 있는 52세의 남자다.

그는 자신의 욕망을 조율할 수 있다고 믿으며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는 흥미를 못 느끼지만 언젠가는

바이런의 마지막에 관한 저서를 집필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제자에게 통제할 수 없는 에로스의 욕정을 느껴 학생과 관계를 갖게 되고,

이로 인해 학교에서 교수직을 잃게 된다. 학교를 떠난 후 딸이 살고 있는 농장에 찾아간

그는 잠시동안 머물겠다는 생각과는 달리, 농장의 사람들과 교류하게 된다.

그러던 중 딸의 농장에 침입한 세 명의 남자흑인들에 의해 딸은 윤간을 당해 아이를 갖게 되고 루리는 딸에게 위험한 농장을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을 권하지만 딸은 자신조차 납득할 수 없는 상태로 그의 요구를

거부한다. 그는 이제 딸과 폭력을 암묵적으로 묵인했던 이웃 그리고 농장생활에 분노하여 도시로 돌아오지만

이미 그곳에 자신의 자리가 없음을 깨닫고 다시 농장으로 돌아와 바이런의 마지막에 대한 오페라를 쓰기 시작한다.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DISGRACE'라는 책의 제목이다. 단순히 보면 GRACE의 반대말이지만 책을 읽고 보니 '추락'보다는 '수치'와 '끝을 알 수 없는 자괴감' 내지는 '모멸감'이 더 맞지 않을까 생각된다.

루리교수도 책의 서두에서 자신 있게 말한다. 난 나의 욕망을 잘 처리하고 있다고 그리고 그는 자신의 욕망의 정체에 대해서도 '뱀'과 같다고 단언한다. '뱀'과 같다는 것은 욕망을 품고 있으나 머리는 서늘한 상태(지극히 이성적인)에서 욕구를 해소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워즈워드 시를 수강하는 멜라니에 대한 욕정을 품는 순간 그는 앞서 나가는 감성에 경고음을 울리는 이성을 느끼면서도 욕망을 자제하지 않았고 그 결과 학교에서 해임되었다.

그는 학교 측과 합의를 하고 일련의 갱생의 과정을 수용하라는 동료 교수들의 설득을 거절했다. 이때까지도 그는 그 자신에게 자신감이 있었다.


'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관심이 없었다. 난 학자의 삶이 어울린다. 그리고 바이런의 마지막을 조사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었다'라고 되뇌며 그를 향해 쏟아지는 온갖 비난에 태연하려 한다.

하지만 그의 이성적인 판단으로 행동할 수 없는 농장의 삶 속에서 그는 옳음에도 옳다고 말할 수 없고, 스스로 바꿀 수 없는 그 삶으로 인해 무기력한 비참함을 경험하게 된다.


그의 상처받은 자존감은 '추락하셨군요?'라는 멜라니의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추락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요. 부서지지만 않는다면...'에서 이미 그가 어쩔 수 없는 삶의 불합리함을 수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세상의 비난에도 후회하지 않았던 그의 정신적인 면과 현실에서 그가 겪어내고 수용해야 하는 육체적인 면의 간극의 차이는 크다. 여기에서 추락이 의미하는 것은 제자와의 부적절한 관계 이전의 그와 그 이후 그의 삶에서 오는 현실적인 차이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다.


일견 '추락'의 서평에서 추락의 의미를 마지막 그의 대사(그가 유일하게 애정을 가졌고, 그의 벤조에 흥겨워

하며 그에게 맹목적인 애정을 보이던 불구의 개를 안락사시키기 직전 베브 쇼와의 대화:'그렇소, 단념하는

거요.")에서 찾는 사람들 (한가닥의 희망마저도 포기하는 모습에 주목)도 있으나 나는 이 부분에 대한 해석을 달리한다.


그의 현실은 추락했으나 그의 정신은 단 한순간도 자신만의 세계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는 낭만주의 작가

바이런에 대한 집필을 포기하지 않는 그의 의지가 이를 증거 한다.



{~그는 한숨을 쉰다. 독특한 실내오페라 작가가 돼 개선하는 것도 괜찮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그의 희망은 더 온건한 것이어야 한다.


그는 혼란스러운 소리 중 어딘가에서,


불멸의 염원을 담고 있는 진정한 음조가 한 마리 새처럼 날아올랐으면 하고 바란다.} P323



작가가 글을 쓰면서 가졌던 의도와 생각을 감히 짐작할 수 없지만 나는 이 부분에 주목하여

[바이런과 낭만주의자 루리]에 대해 별도로 적어보려 한다.




[바이런과 낭만주의자 루리]


독일에서 일어난 낭만주의 운동은 독일의 경계를 넘어 어떤 사회적 불평과 불만이 팽배해 있는 모든 나라들로 퍼졌고, 특히 소수의 무자비하고 강압적이며 비효율적인 집단이 지배했던 나라들에 널리 퍼졌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소수 백인들이 다수의 흑인을 오래도록 지배해 왔고, 현재는

인종차별이 표면적으로는 사라졌지만 그 이면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과 같은 응어리들이 미봉책으로

남아있는 곳이다. 바로 그 남아공에 민족적, 정치적 문제에 전혀 관심도 없고 그저 학생들에게 낭만주의

시를 강의하는 데이비드 루리 교수가 있다.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에 소명을 갖지도 열의를 갖고 있지도 않지만, 자신이 언젠가는 바이런의 마지막 일대기에 관련된 책을 쓰리라는 열의는 잊은 적이 없다.

그렇다면 '추락'에서 그가 마지막까지도 놓지 못했던 바이런이 갖는 상징성은 무엇일까?

아마도 19세기초 유럽의 낭만주의 운동을 이끌었던 바이런의 대표적인 구절을 살펴보면

대략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 홀로 떨어져 그는 기쁨 없는 몽상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쾌락에 무감각해진 그는 차라리 비탄을 갈망하니,

새로운 인생을 맞게 된다 해도 그는 그 아래 드리워진

그림자(죽음)를 희구할 것이다.

그의 마음에는 모든 것에 대한 경멸이 고동치고 있으니...

그는 이 살아 숨 쉬는 세계의 이방인으로 서 있다....

그는 힘차게 천상으로 솟구치거나 까마득히 나락으로 떨어진다.

하늘 아래 같은 공기를 마시고 살아가도록 저주받은 인간들과 함께...}





나는 바이런의 이 글이 놀랍도록 '추락'에서의 루리의 추락의 과정과 일치한다는 점에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이글에서 볼 수 있듯이 루리는 자신의 육체는 현실에 굴복할지언정 낭만주의의 높은 이상을 마지막까지도 포기하지 않는 낭만주의자임을 알게 된다.



루리의 낭만주의적인 특질을 본문을 통해 더 자세히 살펴보자. 제자와의 부적절한 관계로 인해 동료교수들은 해임을 비켜가기 위해 학교 측과 일정 부분의 합의를 할 것을 설득하는데 이에 대해 그는


["나를 교정 하려고?

나를 치료하려고? 나한테서 적절치 못한 욕망을 치료하려고?"] P67라고


되묻는다. 여기에서 낭만주의의 가장 큰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낭만주의는 기존의 제도나 보편성을

부정하며 개인의 행동을 통한 창조적인 결과물들을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본다. 그렇기 때문에 루리는

자신은 연애를 했을 뿐인데 이를 통속적인 사회적인 잣대 아래 놓고 자신을 조정하려는 일련의 모든 것들을 거부한다.



['나는 대변인이 필요 없습니다. 난 나 자신을 완벽하게 대변할 수 있습니다.

제가 유죄를 인정했는데도, 심문을 계속할 필요가 있습니까?"] P75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기 전에, 실제로 진술서 내용을 읽어보는 게 신중하지

않을까요?", "아닙니다. 삶에는 신중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P76




그에게는 타인이 자신에게 갖은 종류의 규제를 가하는 것을 견디느니, 차리리 자신 스스로 욕망을 거세하거나 죽어버리는 게 나은 선택인 것이다.

학생들을 가르칠 때의 그는 어찌 보면 몸은 현실에 있으되 꿈을 꾸는 몽상가와 같다. 현실은 그의 정신세계에 혼란을 끼칠 정도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하지만 제자와의 스캔들로 인해 갑작스럽게 현실은 그의 전 영역에 영향력을 미치게 되고, 그 결과 갑작스럽게 현실을 감당해내야 하는 육체와 정신의 혼란의 괴리감은 그를 도시에서 떠나게 만든다.

하지만 농장생활은 그에게 더 큰 혼란을 가져온다. 자신의 이상과는 상관없이 주어진 현실을 그대로

수용하며 사는 사람들, 그리고 수동적인 죽음을 받아들이는 개들, 특히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수용하려 애쓰는 자신의 딸로 인해 그는 육신의 모든 것을 포기(현실을 살아가기 위해 견디는 법)하기에 이른다.



[~그들이 지치자, 그는 그녀 곁에 누워 이렇게 생각한다.

이 날을 잊지 말자. 이것이 멜라니 아이삭스의 달콤하고 젊은 살 다음에, 다다른 지점이다.

이것이 내가 익숙해져야 하는 것이다. 이것, 아니 이보다 못한 것조차.] P225





이렇듯 현실의 밑바닥에 다다른 그이지만 마지막까지도 그를 구원하는 것은 바로 낭만적 이상이다.




[~그는 생각한다. 그래, 이것이 예술이다. 이것이 예술의 방식이다!

~그는 며칠 동안 블랙커피와 시리얼로 버티며, 바이런과 테레사에게 매달린다.

냉장고는 비어 있다. 침대는 엉망이다. ~그는 생각한다. 상관없다. 죽은 자로 하여금

죽은 자를 장사 지내게 하라.] P278




낭만주의의 또 다른 특징 중의 하나는 낭만주의의 이상에는 완성이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계속된 행동의 여정일 뿐 바이런의 오페라를 향한 여정을 시작한 루리에게

이제 현실에서의 추락은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는 음악을 만들고 있다. (혹은 음악이 그를 만들고 있다.)

하지만 그는 역사를 만들고 있지는 않다.] P279




이렇게 볼 때 범인의 관점에서는 루리의 추락은 패배이나 루리에게 있어 그 추락은

결코 끝이 아닌 새로운 여정의 시작이며 현재진행형이다. 그의 이성이 통제하지

못했던 육신은 이미 그를 대신한 '개'의 죽음으로 끝났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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