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아고타 크리스토프

by 묭롶

내 나이 스무 살 초반 때 할머니는 대장암으로 병원에 입원을

했고 엄마는 눈길 오토바이 사고로 사무실 근처 동아병원에

입원을 했다.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하고 혼자 사무실에 있는데 내 상황이 너무 기막히고 앞날이 보이지 않아서 눈물이 났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차라리 이 모든 게 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 앞에서 그 모든 것이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최면술에서 하나 둘 셋을 외치면 꿈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그 모든 고민과 아픔 그리고 슬픔이 사라진 새로운 현실이 내게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한다.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소설은 전쟁을 경험한 작가의 자전적 내용을 담은 소설이다. 자신의 전부와 같았던 오빠와 헤어진 아픔을 자신의 작품 속 쌍둥이 형제 루카스와 클라우스로 형상화시킨 이 작품은 3부작으로 쓰였다.



「우리 몸은 점점 더 더러워졌고, 옷도 마찬가지였다.


~될 수 있는 대로 우리는 맨발로 다니고,


옷은 팬티나 바지만 입는다.


발바닥은 딱딱하게 굳어서 가시에 찔리거나 돌을 밟아도


아프지 않다.


~손톱은 한 번도 깎은 적이 없지만 다 바스러져나갔고,


햇볕에 바래서 허예진 머리칼은 어깨까지 내려온다. 」


<비밀노트> p21



제1부 <비밀노트>는 전쟁으로 인해 부모와 떨어져 시골 할머니 댁으로 보내진 쌍둥이 형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갑자기 바뀐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쌍둥이의 현실은 너무나 참혹하다. 학대와 폭력, 마조히즘과 사디즘, 수간과 협박

그리고 끝내 살인에 이르는 그 모든 내용은 차라리 꿈이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잔인하다.


범죄의 사건기록처럼 한 건, 한 건 벌어지는 이야기 속 사건들은 감정이 배제되어 있다. 따뜻한 저녁식사를 먹기 위해 둘러앉은 가족들의 머리 위로 쏟아부어지는 폭탄에 인격이 없는 것처럼 1부가 담고 있는 이야기들은 소설이라기보다는 사건기록에 가까운 사실감을 갖는다.

그 사실감이 너무 잔인해서 차라리 눈을 감고 싶지만 이야기의 가독성은 그 어떤 소설보다 뛰어나다.


그럼에도 눈을 감을 수 없는건 그 이야기가 내가 아닌 타인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감정이 결여된 객관적인 시선의 문체가 담아낸 1부 속 어머니의 죽음과 아버지의 죽음처럼 이 모든 사건은 사실을 바탕으로 쓰였지만 남에게 일어난 일이다.



「나는 실제로 일어난 일을 쓰려고 하지만,


어떤 때는 사실만 가지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바꿀 수밖에 없다고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모든 것을 미화시키고, 있었던 일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있었더라면 좋았겠다고 생각하는 그런 얘기를 쓴다고


했다. 」 <50년간의 고독> p394



오히려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허구(소설) 내지는 꿈이라고 믿고 싶었던 1부의 <비밀노트>에 이어진 2부의

<타인의 증거>와 3부의 <50년간의 고독>은 이야기의 내용은 현실에 발을 딛고 있지만 상상의 산물 즉 꿈의 기록처럼 여겨진다.


이 소설은 1부만 나오고 나머지 2부와 3부는 나오지 말았어야 할 사족이라는 의견이 있을 정도로 2부와 3부의 내용은 사실과 거짓(작중인물인 쌍둥이 형제가 쓰는 소설)의 경계가 모호하다. 어디까지가 쌍둥이 형제의 실제 기록이고 또는 쌍둥이 중 한 명이 적은 소설인지 알 수가 없다.



1부를 읽고 2부(1부에서 국경을 넘은 클라우스와 떨어져 할머니의 집에서 살아가는 루카스의 이야기)와 3부(어머니를 모시고 살아가는 클라우스를 찾아온 어릴 적 헤어진 동생 루카스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문득 <백설공주>가 떠올랐다.


1. 어떤 여자가 거울을 보고 있다.(사실)


2. 거울을 보면서(사실) 새로운 인격(백설공주)을 상상한다.


3. 본인을 '백설공주'를 없애고 싶어 하는 새엄마라고 상상한다.(소설)


만약에 <백설공주>가 이러한 가정을 통해 쓰였다면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의 2부 <타인의 증거>와 3부 <50년간의 고독>은 1부(사실)를 바탕으로 상상해 낸 소설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 책을 읽고 어떤 사람은 1부 이후의 내용이 연결관계가 모호하다고 말하지만 2부와 3부가 소설이라는 추정에

의하면 이 책의 3부작은 모두 '상실'을 주제로 한다는 공통점으로 연결된다.


1부에서 쌍둥이 형제는 동심을 잃고 엄마를 잃고 아빠를 잃고 그리고 또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쌍둥이 한 명을 잃는다.


2부에서 루카스는 클라라를 잃고 자신이 아들처럼

여겼던 마티아스를 잃는다. 3부에서 클라우스는 건강을 잃고 루카스를 잃고 자살을 결심한다.



「루카스, 모든 인간은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걸,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걸,


독창적인 책이건, 보잘것없는 책이건,


그야 무슨 상관이 있겠어. 하지만 아무것도 쓰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잊힐 걸세.


그런 사람은 이 세상을 흔적도 없이 스쳐 지나갈 뿐이네.」


<타인의 증거> p302



어찌 보면 인간의 삶 자체가 거짓말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계속 자신이 가진 패를 잃어버리지만 아직도

손안에 들고 있는 패가 많은 척하고 죽음이 끝인 걸 알지만 그 끝에 이를 때까지도 죽지 않을 것처럼 살고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죽을 때까지 알 수 없지만 '나'로 살아간다. 그 모든 '거짓말'이 바로 우리의 '삶'이라는 것을 담아낸

증거가 바로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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