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

올가 토카르추크

by 묭롶

늦은 나이에 귀한 딸이 태어났을 때 나는 그저 이 아이가 건강하기만을 바랐다. 그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제 중학교 3학년이 되자 나는 고민이 생겼다. 이 아이가 이 험한 세상에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부모가 언제까지 보호할 수 없는 이 세상에서 제 몫을 하는 삶이란 무엇일까?

그건 어떻게 해야 얻을 수 있을까?





{ 하지만 왜 우리는 꼭 유용한 존재여야만 하는가.

대체 누군가에게 , 또 무엇에 유용해야 하는가?

세상을 쓸모 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으로 나누는 것은 과연 누구의 생각이며,

대체 무슨 권리로 그렇게 하는가? }






폴란드와 체코의 국경지대, 우편배달을 하는 우체부마저 불평을 내뱉을 정도로 인적이 드문 산속 오래된

주택에서 타인들의 별장을 관리해 주며 살아가는 육십 대의 여성 두세이코. 심한 자외선 알레르기 때문에 조금만 햇볕에 노출되어도 벌겋게 달아오른 피부에 수포가 잡히는 그녀는 이웃이라고는 왕발이라 불리는 밀렵꾼과 괴짜라고 부르는 남성 두 명뿐이었다. 생계를 위해 학교에서 파트타임으로 저학년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그녀는 불필요한 살생을 자행하는 사냥꾼들과 밀렵꾼들에게 제재를 가해 달라는 청원을 제기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그녀를 귀찮고 쓸모없는 존재로 취급해 버린다.


아이들에게 지루하지 않고 즐거운 수업을 경험하게 하고 싶어 하는 그녀의 시도는 교실을 어지럽힌다는 핀잔을 받고 수업도 빠진 채 성당행사에 동원되는 아이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교장에 의해 묵살당했다. 자식처럼 길렀던 두 마리의 개를 잃고 그들을 찾아온 사방을 헤매다 결국 사체조차 찾지 못한 채

세운 그들의 무덤 앞에서 신부는 개를 사람취급해서는 안된다며 그녀를 꾸짖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이웃이었던 밀렵꾼 왕발이 죽었다. 왕발의 시체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개 짖는 소리에 그의 집으로 찾아간 두세이코와 괴짜였다. 경찰은 그의 집에서 식재료로 사용되었던 사슴의 일부를 발견했고 그의 목에 걸려있던 사슴뼈를 이유로 그의 사인을 사슴뼈로 인한 질식사로 결론지었다.

왕발의 다음으로 경찰서장이 우물에 처박힌 채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의 사인은 매끄럽고 단단한 물체의 타격에 의한 두부손상이었는데 이번에도 그 시체의 최초 목격자는 두세이코와 그의 제자인 다지오였다. 두세이코는 경찰서장의 시체 인근에 무수히 많이 찍혀있던 사슴 발자국을 이유로 들어 왕발과 경찰서장이 사슴들에게 살해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녀의 말을 들은 버섯채집 모임의 회장 부인은 자신의 남편이 그 죽음의 다음 순번이 될 거라는 막연한 불안감에 빠져 그녀에게 모임이 끝난 후 자신의 남편을 집으로 데려다줄 것을 부탁했지만 행사의 밤 이후 실종되었던 회장은 두 달 후 숲 속에서 곰팡이와 무수히 많은 머리대장에 잠식당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이번에도 시체를 최초로 발견한 듀세이코를 의심한 경찰이 그녀를 경찰서에 구금한 뒤 그녀의 집을 압수수색했지만 그들은 어떠한 증거물도 찾지 못한 채 그녀는 풀려나게 되었다.

이후 여우농장을 운영하던 브냉트샥마저 덫에 걸려 주검이 된 시체로 발견되고 그들과 사냥모임을 즐겼던

바스락 신부가 새로 축성된 성당 안에서 화재로 사망하게 되자 경찰을 두세이코를 체포하기 위해 출동했다.






{ 먹먹한 슬픔과 비탄, 매번 동물이 죽을 때마다 느껴지는

이러한 회환과 애도의 감정은 아마 절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하나의 애도가 끝나면, 또 다른 애도가 이어지므로 나는 끊임없이 상중(喪中)이다.

이것이 나의 상태다.

나는 피투성이가 된 눈밭에 무릎을 꿇고 앉아 차갑고 뻣뻣한 어린 멧돼지의 털을 계속 쓰다듬었다. }






두세이코는 육십이 넘었고 질병에 시달리는 사회적 기준으로 봤을 때 약자지만 자신보다 약한 존재들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관공서와 경찰에서 읽지도 않고 방치되는 자신의 청원서에 법률에서 정해놓은 기한에 맞춰 답신을 해줄 것을 요구하고 그에 대해 재청원을 제기했다. 점성학을 믿고 그것을 연구하는

그녀는 모든 존재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다면서 약한 존재를 향한 배려와 다정함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로맹가리의 소설 [하늘의 뿌리]의 주인공 모렐을 닮아 있다. 모렐은 코끼리가 보호받지 못하는 세상은 인간도 보호받지 못한다고 말한다.






{ 우리가 문명이라고 부르는 것은 인간들이 스스로를 속이는 긴 노력 가운데

이룩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영국에서는 그랬다고 할 수 있지요.

우리는 모든 인간에게 일종의 기본적인 예의가 있다고 깊이 믿습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어쩌면 흘러간 시대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이며,

비천한 현실의 무게가 머지않아 우리를 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할 거라는 사실도 기꺼이 인정합니다.

그렇죠. 약간은 코끼리와 같은 처지라고나 할까요. } [하늘의 뿌리] p111






로맹가리의 작중인물 모렐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라는 존재가 기본적으로 예의를 갖고 있다는 희망을 갖고 코끼리 보호를 위한 성문법 제정을 위해 행동했던 것에 반해서 올가 토카르추크의 작중인물 두세이코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희미한 희망을 거는 대신 스스로의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인물이다. 그 인물의 행동에 대해 읽는 독자의 의견은 찬반으로 갈릴 수밖에 없겠지만 지금의 세상 속에서 작중인물을 그렇게 치열한 끝으로 내몬 작가의 의중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기도 해서 나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 작품에서 죽음을 맞는 왕발을 제외한 경찰서장, 회장, 그냉트샥, 신부는 사회적 기준으로 봤을 때 인정받는 사람들이지만 자연에 대입해 보았을 때 그들은 불필요한 살생을 자행하는 '악'에 가깝다. 자연이 자신의 존재에 유해한 인간이라는 종족이라는 없애기 이해 무수히 많은 질병들을 만들어 냈다는 항간의 얘기처럼 두세이코는 학살당한 동물들이 자신이 손을 빌어 그들을 응징했다고 생각했다.


인터넷이 안 되는 비행시간 동안 읽기 위해 구입한 전자책이었지만 이 책은 영화 '도그빌'을 볼 때처럼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연극을 보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연극을 보는 관객보다는 사건에 공모한 공범과 같은 기분이 들어서 이 책을 읽는 내내 난 피해자였고 또 가해자였다.

내가 무의식 중에 인간으로서 자연에 저지른 것들에 대해 나는 가해자였고 또 사회적인 강자들로부터

나는 피해자였기에 나는 작중인물 듀세이코에 공감했고 다른 한 편을 그녀의 반대편에 서 있었다.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끌어라'라는 제목과 로맹가리의 '인간들이 스스로를 속이는 긴 노력 가운데 이룬 문명'처럼 우리는 인간이라는 인류의 원죄를 끌어안고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점을 또다시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