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뿌리> 인간이 지켜야 할 바를 외치다.
"돈의 노예' ,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우리는 '돈의 노예'다. 더 많이 가진 자는 덜 가진 자를 돈의 힘으로 부리고, 없는 자들은 한 달 한 달을 돈을 벌기 위해 사는 시한부의
삶을 살아간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는 말 그대로 종이호랑이일 뿐, 법보다 주먹이 가깝고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사회 통념이 된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하늘의 뿌리』에서 주인공 모렐은 아프리카에서 학살당하는 코끼리들을 보호하는
성문법을 만들고 이를 위한 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반군과 결탁했다. 반군과 언론,
정치계는 각자의 입맛에 맞게 모렐을 자신들의 목적을 위한 정당성의 표식으로 삼으려고 하지만 모렐은 코끼리를 보호하겠다는 순수한 의도 외에는 다른 어떠한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런 모렐의 순수함을 두고 대다수 사람들은 미쳤다고 말하지만, 모렐과 함께 지냈던 사람들은 모렐이 지닌 신념에 동조하게 된다.
[우리가 문명이라고 부르는 것은 인간들이 스스로를 속이는 긴 노력 가운데
이룩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영국에서는 그랬다고 할 수 있지요.
우리는 모든 인간에게 일종의 기본적인 예의가 있다고 깊이 믿습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어쩌면 흘러간 시대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이며,
비천한 현실의 무게가 머지않아 우리를 이 지구 상에서 사라지게 할 거라는
사실도 기꺼이 인정합니다.
그렇죠, 약간은 코끼리와 같은 처지라고나 할까요."] p 111
실상 로맹 가리가 모렐을 빌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코끼리로 표상되는 자연보호가
아니다. 프랑스혁명의 근간이 되었던 인권선언의 가장 핵심인 인간의 존엄성 복원을 부르짖는 것이다. 인간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 존엄성을 인정받고 그 개개인이 모두
개별성을 보호받아야 하는데, 작중에서처럼 인권선언은 모렐이 나눠주는 코끼리 보호 청원서만큼이나 사람들에게 외면받고 조롱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책을 생태소설로 분류하는 견해에 반대한다. 이 책은 극한의 인본주의를 보여주는 휴머니즘 소설이다.
「"절망해선 안되지. 오히려 미쳐야 돼.
폐도 없이 땅 위에서 살아보려고 물 밖으로 배를 내놓고,
어떡해서라도 숨을 쉬어보려고 애썼던 최초의 파충류도 미쳤던 거지.
어쨌건 그래서 인간이 생겨나게 되었지.
항상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거야."」 p628
우리는 분명히 지금도 살고 있지만 우리가 존중받아 마땅한 인간이라는 사실은 잊고
산다. 나는 로맹 가리의 문장을 읽을 때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책의
마지막에 이르러 모렐은 말한다. 분명히 최초에 진흙을 벗어나 숨을 쉬려고 시도했던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에 인간이 생겨난 거라고...........
「더러는 결코 사람이 되지 못한 채, 개구리에 그치고 말며,
도마뱀에, 개미에 그치고 만다.
그리고 더러는 위는 사람이고 아래는 물고기인 채로 남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모두가 인간이 되라고 기원하며
자연이 던진 돌인 것이다. 」『데미안』p9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속 문장처럼 우린 자연이 사람이 되기를 기원하며 던져놓은
돌멩이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렐처럼 매 순간 인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진 않는다. 우리는 숨을 쉬는 폐는 가지고 있지만 실상 인간의 존엄을 느끼는 기관은 살아가며 퇴화해버렸는지도 모른다.
로맹 가리는 자신의 소설 속에서 타인이 혐오하는 삶일지라도 그 인물도 그 안에서
미래를 꿈꾸고 누군가를 사랑하며 또 사랑받길 원하고 존중받아 마땅한 존재라는 지극히 당연한 하지만 모두가 잊고 지내는 사실을 끊임없이 일깨우고 있다.
그의 초기작인 『하늘의 뿌리』를 읽고서야 그의 문학의 출발이 모든 인간을 향한
로맹 가리의 뜨거운 가슴에서 시작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만약 내가 아는 사람이 로맹 가리와 같은 생각을 한다면 난 '바보'라고 말해줬을 것 같다. 너무나 당연한 말을 하는 로맹 가리의 작품이 돈의 노예로 사는 나 자신의 잃어버린 '존엄'을 되돌이켜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