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임 54화. 이동통신을 옮길까?

소제목 - 이렇게 갈라지는가?

by 나은

핸드폰 약정이 3년째다.

업무 때문에 듀얼 화면이 필요해 폴드 4를 쓰고 있는데, 액정이 깨져 언제라도 먹통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핸드폰 안에 있는 업무 자료와 연락처들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셈이다.

게다가 업무폰으로 투넘버를 쓰고 있다 보니 더 불안하다.


카드 할인은 24개월 약정이라 이미 1년째는 생돈이 나가고 있다.

가족결합의 ‘베이스’가 되다 보니 나 혼자 옮기기도 애매하다.

통신사를 바꾸면 기계값을 절약할 수 있지만, 아이와 둘만 옮기자니 미적지근하다.

그렇다고 핸드폰 가입 문제로 또 불필요하게 대화를 이어가는 것도 우습다.

나는 왜 이런 사소한 문제까지 늘 걱정하고 배려하며 살아야 할까.


그러다 문득, 몇 년 전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작은 언니가 대장암 2기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을 조카로부터 전해 들었을 때였다.

우리 집안에서 처음 나온 암 환자였기에 몹시 놀라고 당황스러웠다.

더구나 코로나 한창 시기라 불안은 최고조였다.


남편에게 이 소식을 전했더니, 그는 여전히 자기 일 아니면 무심했다.

“요즘 대장암이 암이냐? 그건 수술하면 낫는 거야.”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었겠지만, 결국 내 일이 아니면 아무런 마음도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언니가 정밀검사를 받으러 서울에 올라온 날, 집에 들르기로 했던 때였다.

그때 걸려온 낯선 번호.

벨소리에서조차 뭔가 불길한 감정이 묻어났다.


전화를 건 사람은 뜻밖에도 남편이었다.

“나야…” 하고는 말을 잇지 못했다.


“나 오늘 좀 늦어. 어디 좀 다녀와야 해.”

“어디?”


머뭇거리던 그가 내뱉은 말은 뜻밖이었다.

“경찰서에 가고 있어.”


처음엔 교통사고인가 싶었다.

하지만 걸어서 헬스장에 다녀온 사람이 교통사고일 리는 없었다.

동네 헬스장, 경찰서… 내 머리에 가장 먼저 스친 단어는 ‘도촬’이었다.


결혼 후 크고 작은 충격을 수도 없이 겪었지만, 놀랍도록 규율과 규칙이란 게 없는 인간임을 새삼 실감했다.

내가 도촬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현실, 그 자체가 더 비참했다.


잠시 침묵하다 그가 입을 열었다.

“운동하다가 자세를 찍으려고 했는데, 몰카로 몰려서 경찰서 가는 중이야.”


서둘러 내뱉는 말투, 억지로 둘러대는 속도가 오히려 확신을 줬다.

아, 이건 정말 도촬이 맞는구나.


전화기를 들고 있는 내 모습이 거울에 비쳤다.

인식하지 못한 채 비친 내 표정은, 기가 막혀 허탈하게 웃고 있는 얼굴이었다.

‘너라는 인간은 도대체 어디까지 밑바닥일 수 있니…’


“그래서?”

내 입에서 나온 차가운 한 마디.

나도 놀랄 만큼 서늘했다.


“조사받고 집에 갈 거야. 핸드폰 뺏겨서 통화 안 될 수도 있어.”


그가 굳이 전화를 건 이유는 뻔했다.

늘 그래왔듯 본인이 저지른 일을 내가 수습해 주길 바라는 것.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정말, 이런 일까지 내가 겪어야 하나.

내가 바라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제발 일 좀 저지르지 말아 줄 순 없는 건가.

왜 이렇게까지 나를 끌어들이는 걸까.’


이동통신을 옮길까라는 단순한 고민에서 시작한 하루.


그러나 결국, 내 삶을 갉아먹는 질문은 이것이었다.


“나는 어디까지 견뎌야 하는가?”

작가의 이전글불임 53화. 집의 어두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