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제목 - 이렇게 갈라지는가?
검사 결과를 들으러 언니가 올라온다는 날, 아이와 나는 병원으로 향했다.
하지만 일이 꼬여 약속 시간보다 늦었고, 결국 진료는 끝나 있었다.
중간 지점인 역에서 만나 차에 올랐다.
앞 좌석에는 형부와 언니, 뒷좌석에는 조카와 나, 그리고 아이가 앉았다.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그래서 결과가 어떻게 나왔어? 2기래?”
그러나 차 안 공기는 묘하게 무거웠다.
형부는 아무 말 없고, 언니는 태연한 표정.
조카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엄마, 대장암 4기래.”
“뭐? 뭐라고?”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참았던 울분이 터져 나왔다.
“너는 어쩌다가 그렇게 될 때까지 몰랐어? 도대체 왜 그래!”
평소 무뚝뚝했던 내가 막힌 배수구가 뚫린 듯 소리를 질렀다.
“아악… 흑흑흑…”
그때 아이가 다급히 말을 꺼냈다.
“엄마, 엄마 왜 울어? 이모, 엄마 울어.”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오히려 차분해지며 아이를 안심시켰다.
“괜찮아. 수술하면 나아질 수도 있잖아, 그렇지?”
조카가 나직이 말했다.
“일단 수술하고 경과를 지켜보자고 하셨어.”
후— 긴 한숨이 터졌다.
우리는 근처 장어집으로 들어가 늦은 점심을 먹었다.
형부, 나, 조카는 과하다 싶을 만큼 술잔을 기울였다.
마치 아무 일도 없는 듯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식사였다.
아이만이 공깃밥을 더 달라며 투정을 부렸다.
평소라면 낯선 음식에 거부했을 텐데, 장어를 의외로 잘 먹었다.
“더 먹고 싶으면 직접 말해야 해. 아무도 대신해주지 않아. 스스로 해야 해.”
괜히 아이에게 화풀이했지만, 아이는 용기를 내어
“저… 밥 하나 더 주세요.” 하고 낮은 목소리로 외쳤다.
순간 모두가 웃었다.
잠시지만 웃음이 번졌다.
호텔로 향하는 길, 머리핀 가게에 들렀다.
내일 수술을 앞두고 샤워가 힘들 테니 머리를 묶을 수 있도록 고르자는 조카의 제안.
이것저것 고르며 웃고 떠드는 그 시간이 왠지 따뜻했다.
《아, 이게 바로 ‘정’이구나.》
호텔에 도착하자 형부가 말했다.
“오늘은 여기서 자. 내일 수술 끝나고 지방에서 형제들이 올라오면 함께 가자.”
그 목소리에는 두려움이 스며 있었다.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렸다.
언니가 대장암 4기 판정을 받았고, 내일 수술이라 오늘은 언니 곁에 있겠다고.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참담했다.
“너는 너밖에 몰라? 네 언니만 가족이야? 너는 내 상황은 안 보여? 나 감옥 갈 수도 있다고 했잖아. 넌 전혀 걱정도 안 되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말기 암 진단을 받은 친언니와 내일 수술 앞에 둔 상황에서,
그의 입에서 나온 건 또다시 자기 이야기였다.
《사람 목숨보다 본인의 추잡한 일로 받은 경찰서 호출이 더 중요한가.》
울분이 치밀어 올랐다.
“아니, 내가 도촬 하라고 했어? 내가 시켰어? 경찰서에 간 너를 내가 비난이라도 했어? 나는 티도 안 내고 참고 있잖아. 그런데 왜 나와 아이까지 방패막이 삼아야 해?”
머릿속이 새까매졌다.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애는 무슨 죄야. 만약 학교 엄마가 네가 경찰차 타는 걸 봤다면 우리 아이는 어떻게 됐을까.》
말도 안 되는 책임을 떠넘기는 그의 태도에 더는 할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는 자기변명만 늘어놓다가 전화를 끊어버렸다.
허공에 남은 건 멍한 나의 숨소리뿐.
예전 같았으면 부랴부랴 집으로 달려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생각이 달랐다.
《내가 지금 겪는 이 상황은 도대체 무엇일까.
핏줄이 아니어도, 아는 사람이 죽음의 문턱에 서 있다면 누구나 함께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깨달았다.
아이와 나는 그저 그 사람의 《방패막이, 쓰임의 도구》였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