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라틴어로 가득하다 - 라티나 사마
드넓은 지식으로 가는 발견의 매력
자주 듣는 ‘그것’의 이름에서 소름 돋는 ‘역사적’ 문장까지
세계사 · 과학 · 정치 · 종교… 시공을 초월한
라틴어의 매력과 새로운 발견이 가득한 책
멀리 살고 있는 친구들과 일 년에 두세 번씩 만나게 되면서 우리는 서로 추천할 만한 책을 교환해서 돌려보기로 했다. 이번 차례에 내가 받아온 책은 라틴어와 관련된 책이었다. 라틴어. 참 생소하지만, 어쩌다 보니 공룡 덕후인 아이에게 공룡 이름의 학명이 라틴어… 어쩌고저쩌고하는 이야기를 하고 많이 들어서 사실, 호기심도 생겼다.
라틴어라고 하면 왠지 고대 로마의 딱딱한 주문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세상은 라틴어로 가득하다』라는 그런 편견을 깨주는 흥미로운 인문학 가이드 북이다. 저자는 우리가 매일 접하는 브랜드 이름부터 과학, 법률 용어 뒤에 숨겨진 라틴어의 흔적을 알려주었다. 단순히 단어의 뜻을 풀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속에 담긴 세계사와 정치, 종교의 흐름도 알 수 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같은 역사적 문장부터 일상 단어의 기원까지, 책장을 넘기며 ‘아, 이게 여기서 왔구나!’ 하는 지적 쾌감도 느낄 수 있다. 죽은 언어로만 알았던 라틴어가 현대 문명의 코드를 읽는 열쇠인지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한층 넓히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p.7
라틴어가 도대체 뭐야?
‘라틴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것이 떠오르나요?
궁금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봤더니 ‘고대 로마 사람들이 쓰던 언어’, ‘영어의 어원이 된 언어’, ‘학명으로 쓰는 언어’와 같은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p.9
우리는 흔히 오전과 오후를 AM과 PM으로 표기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지만, 사실 오전을 나타내는 AM은 ‘정오 전에’를 뜻하는 라틴어 ante meridiem, PM은 ‘정오 후에’를 뜻하는 post meridiem의 약어입니다.
p.59
여기까지 읽고 이미 신경이 쓰이는 독자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제 ‘라틴어’의 ‘라틴’ 자체의 어원에 관해서도 설명하겠습니다. ‘라틴’의 유래는 고대의 지명 라티움(Latium)으로, 지금의 이탈리아 중서부에 해당합니다. 고대 로마는 바로 이 라티움 지방의 수많은 공동체 중 하나로 시작되었습니다.
공룡 이름표에서 찾은 현대 문명의 암호
라틴어라는 말을 듣기만 했지 딱히 궁금해하진 않았다. 하지만 아이가 공룡을 좋아하게 되면서 복잡하고 어려운 그 이름들에 다 뜻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뿌리의 끝에는 늘 라틴어가 존재함을 깨달았다. 『세상은 라틴어로 가득하다』는 라틴어를 박물관에 박제된 죽은 언어로 보았던 나의 고정관념을 기분 좋게 깨뜨려주었다.
‘라틴어가 도대체 뭐야?’라는 단순한 질문은 우리가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잘 몰랐던 대상에 대해 다시 호기심을 갖게 한다. 책에 따르면 우리는 이미 매일 라틴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오전(AM)은 '정오 전에'를 뜻하는 ante meridiem, 오후(PM)는 '정오 후에'를 뜻하는 post meridiem의 약어다. 당연하게 쓰던 약자들이 고대 로마와 연결되는 순간을 우리는 매일 마주하고 있었다.
라틴. 라틴음악? 라틴아메리카? 뭐 이런 단어들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라틴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사실 이탈리아의 작은 지명 '라티움(Latium)'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사실 애초에 궁금해한 적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세계를 제패한 로마 제국의 언어도 결국 어느 마을에서 사람들이 북적이며 쓰던 진짜 ‘사람의 말’이었다. 그렇다면 남미에는 왜 즈로 ‘라틴’을 붙이는가? 라틴어는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프랑스어 같은 계보로 이어져 왔는데 이러한 언어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뿌리내린 지역이 즉, 라틴아메리카였다.
공룡 덕후인 아이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19세기 리처드 오언이 ‘무서운 도마뱀’이라는 뜻의 ‘디노사우리아’를 명명한 이후 공룡의 학명은 라틴어와 그리스어 어원을 활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가장 유명한 티라노사우루스 렉스의 ‘렉스(Rex)’는 라틴어로 ‘왕’을 뜻하고, 날쌘 사냥꾼 벨로키랍토르는 ‘Velox(빠른)’와 ‘Raptor(도둑)’가 합쳐진 이름이다. 사랑해 마지않는 아이의 최애 공룡, 스피노사우루스 역시 ‘Spina(가시/등뼈)’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해 그 특징을 그대로 담고 있다는 말도 아이가 여러 번 해주었다. 이처럼 라틴어는 공룡의 생김새와 습성을 설명해 주는 생생한 ‘이름표’와도 같았다.
p.154
관성의 법칙과 지동설도 라틴어로 발표되었다.
라틴어로 쓰인 과학 학술서를 소개하겠습니다. 먼저 아이작 뉴턴의 《프린키피아(principia)》가 있습니다. 책의 제목은 원래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입니다. principia는 ‘원리’라는 뜻의 라틴어입니다.
p.161
태양계의 라틴어
다음으로 우리가 사는 지구를 가리키는 Terra입니다. terra라는 라틴어에는 ‘대지’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영어 terrestrial(지구의) 어원이기도 합니다. 여기도 extraterrestrial(지구 밖의 생명체)라는 말이 만들어졌고, 이 단어가 E.T로 줄어들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SF 영화 제목이 되기도 했습니다.
p.169
라틴어를 통해 원소를 보다.
불소의 원소기호 F가 유래된 라틴어명 fluorum도 흥미롭습니다. fluorum은 fluo (흐르다)에서 왔는데, 여기에는 불소의 화합물인 형석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물질에 형석을 첨가하면 녹는점이 낮아져 액화하기 쉬워지기 때문입니다.
fluo에서 유래된 단어로는 영어 fluent (유창한) 등이 있습니다. 유창하고 거침없이 말하는 모습이 물 흐르듯 말하는 것처럼 보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fluid (유체)와 influence (영향) 등도 거슬러 올라가면 fluo가 나옵니다. influence의 원래 뜻은 ‘유입’이지만, 먼 옛날에는 별빛이 체내에 흘러들어 심신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영향’이라는 의미도 생겼습니다.
p.182
라틴어가 어원인 대표적인 영양소는 뭐니 뭐니 해도 비타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타민의 어원은 vita(생명)와 amine(아민)입니다. 비타민은 아민으로 되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민이란 암모니아의 수소 원자를 탄화수소기로 치환한 화합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입니다.
이 이름을 지은 캐시미어 풍크는 논문에서 vitamine이라고 명명한 이유는 밝히지 않았지만, 라틴어 vita와 amine을 합쳐 ‘생명 유지에 꼭 필요한 아민’이라는 뜻으로 vitamine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추축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언어에 상상력을 불어넣은 기록, 과학
이과를 선택해 물리를 전공하고 오랜 시간 아이들에게 과학을 가르쳐왔지만 정작 나는 과학의 가장 본질적인 자세인 ‘왜’라는 의문에 참 소홀한 사람이다. 어쩌면 과학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마인드를 지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만큼, 나는 익숙한 용어들을 그저 당연한 결과물로 받아들이며 암기하고 가르쳐왔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알고 있던 많은 과학 용어가 사실은 라틴어를 바탕으로 한 정교하고 논리적인 결합의 결과물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리학의 고유명사라 할 수 있는 아이작 뉴턴. 그의 저서 『프린키피아(Principia)』부터가 그랬다. 단순하게 외웠던 이 단어는 라틴어로 ‘원리’를 뜻했다. 과학의 기초를 세우고자 했던 거장의 의지가 제목에서부터 라틴어로 새겨져 있었던 것일까? 우리가 사는 대지 ‘테라(Terra)’가 영화 ‘E.T(Extra-Terrestrial)’의 뿌리가 되고, 생명(Vita)과 아민(Amine)이 만나 ‘비타민’이 되었다는 설명은 마치 흩어져 있던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듯한 쾌감을 주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대목은 불소(F)의 유래인 ‘플루오룸(fluorum)’이었다. ‘흐르다(fluo)’라는 뜻에서 유래해 유창함(fluent)과 유체(fluid)로 뻗어 나가는 어원의 줄기를 알게 된다는 사실이 즐거웠다. 이렇게 보면, 과학은 무미건조한 공식의 나열이 아니라 우리 인류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언어에 불어넣은 상상력의 기록이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처음 낯선 과학 용어를 접할 때 이런 방식으로 그 기원을 하나씩 알아 나갔다면 어땠을까 싶다. 무조건적인 암기가 아니라 단어 속에 숨겨진 논리와 역사를 탐구했다면, 나도 아이들도 훨씬 즐거운 과학 탐험을 할 수 있었을까? 늦었지만 이제야 용어라는 딱딱한 껍질 속에 숨겨진 생생한 과학이 조금씩 느껴진다. 배움에는 늦음이 없다지만, 조금 더 일찍 이 언어의 지도를 가졌더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 섞인 즐거움이 남는 시간이었다.
p.207
해리포터 마법의 주문
《해리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주문의 대부분에 라틴어 요소가 포함된 것도 영어권의 일반적인 인식에 따른 것입니다. 저자인 J.K.롤링이 대학에서 라틴어를 배웠기 때문에 라틴어를 조합해 주문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주문을 살펴보면 먼저 상대를 괴롭히는 주문 ‘크루시오(Crucio)’가 있습니다. 이 주문은 라틴어 ‘내가 괴롭힌다(crucio)’에서 유래했습니다. crucio의 어원은 crux(십자가)이고, crux는 영어 cross(십자)의 어원입니다. crucio는 영어 excruciate(고통을 주다)의 어원입니다.
p.208
수호령을 불러내는 주문 ‘엑스펙토 패트로눔’은 라틴어 Expecto patronum(나는 수호자를 기다린다)에서 왔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patronum은 영어 patro(보호자, 후원자)의 어원입니다. patronum은 pater(아버지)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즉 고대 로마인들은 수호자를 아버지와 같은 존재라고 인식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호그와트 마법 학교의 필수 과목, 라틴어
이번 겨울방학, 아이와 함께 해리포터 시리즈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주행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친구들과 영화관에 가서 해리포터를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그 엄청난 상상력의 세상을 아이와 다시 공유하는 경험은 참 묘한 기분을 남겼다. 남자아이라 그런지 아이는 주문에 심취해 한동안 지팡이를 휘두르는 제스처를 따라 하곤 했는데, 사실 그 마법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주문들을 분해해 보면 그곳에도 어김없이 라틴어가 숨어 있었다. 이 책 덕분에 그냥 스쳐 지나쳤던 마법의 언어들이 의미를 입고 다가왔다.
대학에서 라틴어를 전공한 저자 J.K. 롤링. 해리포터의 주문들은 그냥 우연히 만들어진 소리가 아니었다. 상대를 고통스럽게 괴롭히는 주문 ‘크루시오(Crucio)’는 라틴어로 ‘내가 괴롭힌다’라는 뜻이다. 그 어원이 십자가(Crux)에서 왔고, 영어의 ‘excruciate(몹시 고통을 주다)’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수호령을 불러내는 주문인 ‘엑스펙토 패트로눔(Expecto patronum)’ 이 주문은 ‘나는 수호자를 기다린다’라는 뜻인데, 여기서 수호자를 뜻하는 ‘패트로눔’이 아버지(Pater)에서 파생되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고대 로마인들이 수호자를 아버지와 같은 존재로 인식했다는 역사적 맥락을 알고 보면, 극 중 해리가 돌아가신 부모님의 사랑과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며 이 주문을 완성하던 장면이 생각났다.
책을 다 읽고 몇가지 주문이 더 긍금해 아이와 함께 찾아보았다. 깃털을 띄우는 ‘윙가르디움 레비오사’는 영어 Wing(날개)에 라틴어 Arduus(높은)와 Levis(가벼운)를 더해 ‘저 높은 곳까지 가볍게 비상하라’는 뜻을 완성했다고 한다. 물리학적으로 보면 중력을 상쇄시키는 언어의 힘인 셈이다. 반면 가장 강력한 저주인 ‘아바다 케다브라’는 ‘이 말과 함께 사라져라(죽어라)’라는 뜻의 고대 언어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라틴어권에서 치유의 주문으로 알려진 ‘아브라카다브라(말한 대로 이루어져라)’와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중력을 이기는 비상과 생명을 앗아가는 파괴가 모두 한 끝 차이의 언어적 뿌리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이 마법보다 더 마법 같았다. 아이와 함께 즐겼던 영화 속 판타지가 라틴어라는 인문학적 토대를 만나 더욱 단단하고 깊은 의미로 남게 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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