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위의 서사

생각의 틀을 깨는 40개의 지도 이야기 - 앨러스테어 보네트

by 레토

40 Maps that will change how you see the sorld


지도 위에 펼쳐지는 인류와 자연, 우주의 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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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러스테어 보네트의 『생각의 틀을 깨는 40개의 지도 이야기』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해 온 세계의 모습을 다른 각도에서 조명하는 지리서다. 책에는 40개의 독창적인 지도들이 들어있지만 이들 모두가 단순한 지표면의 기록만은 아니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흐름부터 국가별 행복지수, 전 세계를 잇는 해저 케이블망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욕망과 환경의 위기 그리고 사회적 불평등의 단면을 시각적으로 보여주었다. 지도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도구를 넘어 시대를 해석하고 권력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이 책은 데이터 시각화를 통해 익숙한 지구를 낯설게 바라볼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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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p 7. 일본인이 바라본 세계 사람들

일본의 세계 지도, ‘만국전도’, 1671년

p.58

전통 복장 차림의 여러 민족이 짝을 이뤄 뽐낼 듯 도열해 있다. 총 40가지 유형이 나열되어 있는데, 일부에는 간략한 설명도 딸려 있다. 일례로 브라질 남녀에 대해서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이들은 집에서 살지 않고, 동굴에 사는 걸 좋아한다. 그들은 인육을 먹는다.’ 그리고 이런 설명도 덧붙여 놓았다. ‘여성이 출산 시점에 임박하면 남성은 복통을 일으킨다. 여성은 출산의 고통을 겪지 않는다.’

p.59

당시 일본 지배층은 외부 세계의 영향력에 의혹을 품고 있었다. 외국인과의 교류를 제한하는 여러 정책도 시행되었다. 외세에 물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원양 선박의 건조가 금지되었다. 외국 서적의 수입도 거의 중단된 상태였다. 우리 눈에는 이 지도가 귀한 골동품으로 보이지만, 이런 사회적 맥락을 감안하면 이 세계 지도는 단순한 흥밋거리를 넘어 위험한 물건으로 여겨지기도 했을 것이다.

이제 지도 모서리에 있는 네 척의 배를 살펴보자. 오른쪽 위에는 일본 배, 왼쪽 위에는 중국 배, 오른쪽 아래에는 포르투갈 무역선, 왼쪽 아래에는 네덜란드 배가 있다. 그림 옆에 딸린 설명을 통해 배의 국적을 식별할 수 있을 뿐, 각국 선박의 특징을 담아내려는 시도는 보이지 않는다.


단단한 중심, 새로운 변화를 흡수하기 위한 필요 조건

1671년 제작된 일본의 세계 지도 ‘만국전도’는 당시 일본 지배층이 품었던 외부 세계에 관한 호기심과 경계심을 동시에 보여주는 흥미로운 유물이다. 브라질 원주민을 식인종으로 묘사하거나 남성이 산고를 대신 치른다는 식의 황당한 설명은 단절된 정보가 낳은 왜곡된 상상의 산물이었다. 당시 일본은 서구의 영향을 차단하기 위해 원양 선박 건조를 금지하고 외국 서적 수입을 막는 등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철저한 고립을 선택했다.

흔히 일본은 근대화를 선제적으로 받아들인 나라, 우리나라는 쇄국 정책에 갇혀 성장이 지체된 나라로 기억되곤 한다. 나 역시 그런 이분법적 틀 안에서 역사를 이해해 왔다. 하지만 이 지도는 일본 또한 낯선 문명 앞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뒷걸음질 쳤던 시절이 있었음을 증명한다. 겪어보지 못한 변화를 거부하고 익숙한 틀을 지키려 하는 것은 시대를 막론한 인간의 본능이자 방어 기제일지도 모르겠다. 이득과 손해를 예측할 수 없는 세상 앞에서 무턱대고 오픈 마인드의 자세를 하기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습은 지금의 AI 세상과도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결국 새로운 기술에 적응해야 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중심이 아닐까 싶다. 과거의 역사가 보여주듯 무조건적인 거부나 맹목적인 수용 대신 우리만의 가치관과 기준을 명확히 세운 뒤 변화를 흡수해야 한다. 나만의 단단한 기준이 서 있어야 새로운 변화가 나의 세계를 무너뜨리는 위협이 아니라 나의 세상을 넓혀주는 강력한 도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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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p 10. 아프리카가 식민지가 되지 않았다면

알케불란. 니콜라이 예스퍼 쉬온 제작, 2011년

p.78

아프리카 대륙의 국경선과 국가들은 대부분 유럽 식민지 개척자들의 야심과 상상력에서 비롯되었다. “식민지주의가 없었다면 아프리카는 어떤 모습일까?” 정답을 알 수는 없지만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문제다.

쉬온은 식민지배가 없었다면 아프리카 국가들의 발생 과정도 유럽 국가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유럽 대륙의 국경은 직선이 아니다. 계곡 안팎을 넘나들고 이리저리 휘어지면서 구불구불한 형태를 취한다. 이 국경선들에는 이탈리아인이나 독일인 등 특정 민족이 모여 살던 곳의 복잡한 패턴이 반영되어 있다.

반면 현재 아프리카 대륙의 지도에는 직선들이 많다.

이것은 영국의 식민지 통치자들이 머릿속으로 구상하고 그린 것이다. 이런 통치자들의 영향력을 완전히 걷어낸 아프리카는 어떤 모습이 될까? 수백 년에 걸친 돌발적 변동 상황이 고스란히 반영된 불규칙한 국경선, 즉 여기에 실린 지도와 훨씬 더 가까운 모습이었을 것이다.

이 지도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지도가 거꾸로 뒤집혀 있다는 점이다. 이는 이슬람의 지도 제작 전통에서 영감을 얻은 결과로, 아프리카를 다시 들여다보고 재차 생각하게끔 만든다. 위아래를 뒤집는 방식을 통해 지도 제작자는 그동안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추정들에 이목을 집중시킨다.


직선에 갇힌 대륙, ‘알케불란’이 꿈꾸는 잃어버린 아프리카

도서관 신착 도서 코너에서 이 책을 집어 든 결정적 이유는 ‘식민지가 되지 않은 아프리카’라는 가정 때문이었다. 인류 문명의 시작인 아프리카가 왜 성장이 더뎠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평소에도 지니고 있던 의문이었다. 물론 그 부분은 『총, 균, 쇠』를 통해 지리적 환경이 문명의 전파와 성장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해석에 깊이 공감하며 어느 정도 갈증을 해소했다.


하지만 만약 제국주의라는 인위적인 개입이 없었다면 그 대륙의 모습이 어떠했을지는 여전히 상상의 영역이었다. 그들의 더딘 성장은 결코 선천적 능력이 아닌 환경의 결과였기에 외부의 개입이 없었다면 그들이 그려냈을 지도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니콜라이 예스퍼 쉬온의 지도 ‘알케불란’은 이 궁금증에 대한 시각적 대답이 되어주었다. 유럽 열강의 야심이 자로 그어 만든 폭력적인 직선 국경을 지워내자 지형과 민족의 역사를 따라 구불구불 흐르는 생명력 넘치는 경계선이 나타났다. 이슬람 전통을 따라 남쪽을 위로 뒤집어 놓은 배치는 우리가 북반구 중심의 사고방식에 얼마나 길들어 있었는지를 일깨워주었다.


제국주의라는 거대한 중단 없이 아프리카가 자신들만의 속도와 기준으로 문명을 연결해 왔다면 우리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인류사의 지평을 마주했을지도 모른다. 이 지도는 단순히 땅의 모양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강요된 틀에 갇히기 전 아프리카 대륙이 가졌던 본연의 자긍심을 복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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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p 35. 뜨겁게 달궈지는 이베리아반도: 극심한 더위의 지도

지표의 온도, 2023년

p.262

요리책을 보면 ‘스테이크는 60도 이하에서 조리해야 최상의 식감과 풍미, 육즙을 살릴 수 있다’고 적혀 있다. 이 지도의 스페인과 포르투갈 땅은 스테이크를 굽기에 충분히 달궈진 상태가. 남부 지역에 퍼져 있는 검은색은 해당 온도 혹은 그 부근에 도달했다는 의미다. 북쪽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띠 모양의 구간을 제외하고는 모든 토양의 온도가 굉장히 높다.

이 지도는 기온이 아니라 ‘지표의 온도’를 보여준다. 즉 흙을 만졌을 때 느껴지는 온도가 이 상황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앗 뜨거워!’다. 일반적으로 토양은 대기보다 온도가 높은 경향이 있지만, 당시 기온 자체도 나날이 기록을 경신해 검은색 구역의 기온은 40도에 이르러 있었다.

p.264

스페인과 포르투갈 사람들은 극심한 여름 더위에 시달리고 있지만, 이 지도는 사람과 관련된 것은 아니다. 이것은 땅에 관한 지도다. 우리 토양 속 생명체에 대해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가져보자. 무려 섭씨 60도가 우리는 그것을 뭉뚱그려 ‘흙’이라고 부르지만, 이 상황을 묵과한다면 우리도 위험해질 수 있다.


지표면의 절규, 스테이크처럼 달궈진 대지가 던지는 경고

책 속 극심한 더위의 지도는 보는 것만으로도 발바닥이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게 했다. 2023년 이베리아반도를 뒤덮은 검은색은 지표 온도가 60도에 달했음을 보여준다. 요리책에서 스테이크를 최적으로 굽는 온도가 60도 이하라는 점을 떠올리면 당시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땅은 사실상 거대한 불판이나 다름없었다.


이것은 단순히 숨 막히는 기온의 문제를 넘어 우리가 무심코 ‘흙’이라 부르며 짓밟는 토양 속 수많은 미생물과 생명체가 익어가고 있는 비극을 시각화한 것이다. 대지는 더 이상 생명을 품는 포근한 터전이 아니라 생존을 위협하는 뜨거운 열기의 근원지로 변하고 있다.


지금까지 나는 지구 온난화를 그저 에어컨 없이는 견디기 힘든 여름 날씨나 먼 나라의 녹아내리는 빙하 정도로만 인식해 왔다. 하지만 이 지도를 보며 기후 위기가 머리 위가 아닌 발바닥 아래, 즉 생명의 근간인 토양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지표 온도의 상승은 토양의 생명력을 앗아가고 결국 생태계 전체의 연결고리를 끊어버리게 된다. 땅이 죽으면 인간도 살 수 없다는 진리를 직관적인 감각으로 마주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정말 막연한 걱정을 넘어 구체적 실천이 절실한 때가 왔다. 사실 분리배출을 철저히 하고 탄소 배출을 줄이려는 작은 노력이 과연 이 거대한 온난화의 변화를 바꿀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땅 자체가 생명이 살 수 없는 공간으로 변하는 미래가 오고 있다고 생각해 보면 뜨거워진 지구를 식히는 일은 이제 선택이 아닌 우리의 생존을 위해 다시 그려야 할 가장 절박한 지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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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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