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준호 Jul 28. 2021

<곤지암>은 왜 재밌을까

<곤지암>이 보여준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미래

<곤지암>과 <블레어위치>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아시나요

필자가 생각하기에 최근 많은 이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공포영화는 <랑종>이다. 태국 북동부 '이산'에서 펼쳐지는 기괴하고 끔찍한 신내림이 대물림되는 무당 가문의 이야기를 담은 <랑종>은, (감독은 아니었지만) <곡성>에서 대중들을 현혹시켜 영화계를 뜨겁게 달궜던 나홍진의 작품이었기에 많은 관심과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했다. 마이너한 장르임에도 좋은 의미로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던 <곡성>과 달리 <랑종>은 그 기괴함이 도를 넘을 정도로 극에 . 이에 관람객들은 심각한 피로와 혐오를 표출했고, 평론가들의 사전 비평과 상반된 반응을 선보였다.


열렬했던 개봉 전 마케팅이 무색할 정도로 <랑종>이 보여준 파워는 미미했다. 이 밖에도 아쉬웠던 점들을 나열하고 싶지만 그게 이 글의 중심이 아니므로 이만 본론으로 넘어가 보자.


정말 꺼내고 싶었던 이야기는 <랑종>이 페이크 다큐멘터리 장르였다는 것이다.


페이크 다큐멘터리? 공포영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들어 봤을 말일 테다.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들자면 <파라노말 액티비티>하고 <그레이브 인카운터>스러운 것이다. 그래도 모르겠는데요. 그렇다면 이제 이 영화를 꺼낼 시간이 왔다.

바로 <블레어위치>이다.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조상님

회춘하신 우리 조상님 <블레어위치(2016ver.)>
포스터는 2016년도작을 가져왔으나 향후 서술할 작품은 <블레어위치(1999Ver.)>이다. 맨 위 <곤지암>과 함께 등장한 작품!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친절하게 설명하자면,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통해 허구의 상황을 실제 상황처럼 전달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장르의 조상님이 <블레어위치>이다. 엄밀히 말하면, <블레어위치> 이전에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선보인 영화가 존재하지만 (Lady In The Lake를 검색해보자) 장르 최초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뒀고, 파운드 푸티지의 여러 관습을 정립해 본 장르를 수면 위로 이끌어 내는 데 큰 기여를 했으므로 실질적인 기원에 해당한다.

파..뭐요?
파운드 푸티지란 페이크 다큐멘터리 장르의 영화 중에서 '실제 기록이 담긴, 출처가 불분명한 영상'을 누군가 관객에게 전달한다는 설정을 가진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랑종>에서 이산 무당가문의 이야기를 촬영팀이 전달해줬다는 걸 떠올려보자. 앞서 말한 모든 영화가 이 장르라고 할 수 있으며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의 공포영화는 99% 파운드 푸티지라고 할 수 있지만, 두 개념을 혼용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페이크 다큐멘터리가 우리에게 더 익숙하므로, 페이크 다큐멘터리=파운드 푸티지로 이해하자.

<블레어위치>는 '블레어 위치 전설'에 얽힌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조쉬, 헤더 등의 대학생들이 직접 블레어 숲에서 야영하고, 그 속에서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면서 진행되는 영화이다. 앞서 밝혔던 것처럼 <블레어위치>는 저예산 투자 대비 막대한 수익을 올렸는데, 이러한 성공에는 효과적인 사전 마케팅의 힘이 강력했다.


<블레어위치>는 개봉 전 관련 전설을 정교하게 스토리텔링 하여 마치 사실인 양 웹사이트 여기저기 공유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 점차 인기를 끌게 되었다. 지금으로 치면 '시사회에서 본 사람들 다 지렸다', '분위기 ㄷㄷ' 등의 문구 올리는 적극적인 SNS 마케팅인 셈이다. (예시 영화가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겠종)


더불어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지닌 '사실성'에 기대어 관객들의 몰입을 효과적으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정확한 연도와 지역 명이 등장한 나레이션부터 사전에 철저히 준비했던 전설을 역설하는 초반부가 헤더 일행의 사건을 현실이라고 믿게 만들으며, 여기에 삼각대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카메라를 드는 '핸드헬드 촬영 기법'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흔들리는 불안한 화면을 보여주어 관객이 알게 모르게 심리적인 압박감을 느낄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했다.

따라서 후반부 폐가 장면은 찢어지는 헤더의 비명과 기괴하고 끔찍한 집 내부를 빠르게 인서트하는 미장센만으로도 강력한 공포를 보여준다.


<블레어위치>는 위와 같은 작용으로 파운드 푸티지 장르의 관습을 여럿 정립했다. 핸드헬드 촬영 기법의 적극적인 활용, 다큐멘터리의 사실성에 기댄 서사의 흐름, 편집의 최소화, 초자연적인 미지의 존재의 등장 등이 그 관습에 해당한다. 특히 사운드보다 공간과 화면의 조절로 공포를 선사하는 것이 당시 신선한 충격을 보여주며 공포 영화의 구도적인 측면에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이후 페이크 다큐멘터리 장르의 공포영화는 <REC>, <클로버 필드>, <파라노말 액티비티>, <그레이브 인카운터>를 걸치면서 타 장르의 요소들이 추가되기도 하고 기존의 법칙들이 변경되기도 하면서 발전하게 된다.


파운드 푸티지의 흐름

<REC>에서는 공포의 대상에게 초자연적인 설정보다 비교적 현실적인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고 (좀비)

사회적인 부조리를 비판하는 서사가 추가됐으며,

<클로버필드>는 마수 영화로서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요소를 재난영화 특유의 생존권 위협에 따른 긴박함에 잘 녹여낸다.

<파라노말 액티비티>에선 핸드헬드 촬영기법을 최소화하여 정적인 화면 속에서 심리적인 공포를 자아냈고

<그레이브 인카운터>는 반복되는 공간의 위협을 계승하여 공간을 통한 공포 자극에 힘을 실었다.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공간 활용에 대한 법칙들은 기타 장르의 요소들과 융합하고 결합하여 계승돼, 마침내 <곤지암>에서 현대적으로 재해석된다.


<곤지암> 표절작품이다?

다시 등장한 오늘의 주인공!

<곤지암>은 공포 체험의 성지인 곤지암 정신병원의 오래된 괴담, 열리지 않는 402호와 인체실험이 감행되었다는 역사를 파헤치기 위해 7명의 체험단이 직접 병원으로 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서사적인 측면에서는 <블레어 위치>를, 공간적인 측면에서는 <그레이브 인카운터>와 유사점을 보인다.


따라서 본 영화는 <그레이브 인카운터>를 아예 따라 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정신병원이라는 공간적인 설정과 그 공간이 반복된다는 점, 현대적인 도구가 등장한다는 것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미드소마>가 <위커맨>의 서사구조를 닮은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조금 애매하지만, 여기저기서 레퍼런스를 가져오고 카피킬러에서 말을 바꾸며 표절률을 낮추는 오늘날 우리의 과제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또한 <곤지암>은 오히려 <블레어 위치>와 서사적인 구조가 비슷하다. 유명한 공포 장소를 체험하는 의기양양한 대학생 집단이 초자연적인 존재들에게 점차 무력화되는 모습이나, 반복되는 공간이 숲 속이라는 점이 그러하다. <조커>가 <택시 드라이버>의 등장인물 감정선이나 분위기에서 영감을 얻어온 것과 같이, <그레이브 인카운터>의 공간적인 특색과 <블레어 위치>의 서사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정리하면 위 논란에 대한 심심찮은 위로가 될 것 같다.


굳이 <곤지암>이 위 작품들과 비슷한 향기를 보여준 이유가 뭘까? 필자는 파운드 푸티지의 몇 가지 요소들을 전통적으로 계승하려는 제작진의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일종의 존경심이라고 할까. 이 장르를 재해석하겠다는 도전장처럼 보이기도 한다.


존경을 선보였다면, 이제 신입의 당찬 포부를 보여줄 차례. <곤지암>은 이를 작품 외부에서 보여준다.


<곤지암>이 상업적으로 성공했던 이유

<곤지암>은 <블레어위치>처럼 유명하지 않은 신인 배우들을 대거 캐스팅해 제작비를 줄이고, SNS를 적극적으로 이용해 홍보했다. 블레어위치 전설을 정교하게 꾸며냈던 양상에 빗대어 실제 공포 장소인 정신병원의 이미지에 기대 관객 반응 영상, 예고편 등의 소개 영상 등을 사전에 공개한 것이다.


장르의 존경심을 통해 마니아 층의 관심을 유도한 <곤지암>이 거기서 멈추었다면 이젠 지겹다는 고질적인 문제를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곤지암>은 똑똑하게도 파운드 푸티지의 적절한 활용 외에 한국만의 사회적, 시대적 맥락을 부여했고 정치성을 은유적으로 드러냈다. <곤지암>만의 매력을 돋보인 것인데, 오히려 이 지점들이 영화를 살아있게 만들었다. 누구보다도 공포를 겨냥한 영화지만 공포스럽지 않은 상징성이 다양하다는 것이다.


<곤지암> 단순한 공포영화일까?

페이크 다큐멘터리 장르의 힘 자체가 중심이었던 과거와 다르게 <곤지암>은 이를 뒷배경처럼 은은히 나타내고 정치성과 사회적인 이슈를 메인 상징으로 끌어낸다. 기존 페이크 다큐멘터리 장르의 힘 만으로는 인기를 이끌어 낼 수 없다는 상황을 제대로 반영한 것이다.


<곤지암>이 보여줬던 매력적인 개성한국 정부의 국정농단과 관련한 정치성,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한 현대의 병리 현상이다. 

지난 2012년, 한국이 겪었던 고열을 기억하는가? 찌라시인 줄 알았던 기사 하나로 시작했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사상 초유의 정치 게이트로, 대통령의 국정농단을 비롯해 비합리적인 일들이 암암리에 펼쳐지고 있었다. 이에 국민들은 촛불 시위라는 민주주의 수호의 의지를 내비쳤고 그 결과 정의를 다시 한번 바로 세우게 된다.

승전국이어도 상처와 고통은 큰 법.

국민들은 사회의 부조리에 실망해 뿌리부터 바뀌는 개혁을 원하면서도 피로감을 느꼈다.


<곤지암>은 이러한 정부의 행세를 영화의 미장센으로 꾸짖는다. 탁구를 좋아했던 원장, 5월 16일에 개원했고 10월 26일에 폐원한 정신병원. 등장인물들이 직접 언급하지 않아도 한국의 국민이라면 느낄 수 있는 정서에 기대어 본격적으로 '<곤지암>에 정치적 메시지를 집어넣겠다'는 포부를 보여준다. 감독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인 부패에 피로를 느낀 국민들에게 공포 장르만의 오락성에 기댈 수 있게 하였고, 동시에 정치적인 풍자를 섞어 유신체제로 독재를 일삼았던 박정희 정부까지 꾸짖는다. 잔혹한 호러의 세계가 보여준 신랄한 정치성, 그 아이러니.


<택시운전사>나 <1987>처럼 대놓고 정치적인 소재를 드러내는 영화들은 그 무게를 조절하기 위해 멜로나 로맨스 서사를 추가하기도 한다. 반대로 앞서 말한 공포 영화 속 정치성은 강력하게 발현되어 굵직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는 <곤지암>을 넘어서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공포 영화의 기묘한 특색이다.

좀비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힘을 합쳐도 모자랄 시간에 1층과 지하실이라는 공간적인 문제로 분열하는 생존자들. <어스>에서는 어떠할까? 나와 똑같은 모습의 이들이지만, 하나도 같지 않은 다른 이들로 연출한다. 공화당과 민주당이라는 분열. 공포 영화의 정치성은 오래된 관습처럼 보인다. <곤지암>은 이 지점을 떠올려 한국만이 겪었던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다.


현대의 사회적 병리현상까지 보여준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인터넷이 발달한 요즈음. 온라인 세상에서 가장 떠오르는 아이콘은? 유튜브, 아프리카TV, 트위치 TV 등과 같은 생방송 플랫폼의 방송인들이다. 일명 BJ나 크리에이터 등등.

초등학생들의 희망 미래 직업에까지 등장한 이들은 현대 미디어를 이끌어가는 말 그대로 '인플루엔서'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 PR이 중해진 만큼 나 자신을 개성 있게 표현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자 직업이지만, 이들이 보여준 문제는 심각했다.


바로 '돈'이라는 물질적인 요소만 충족할 수 있다면 어떤 짓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설령 반사회적인 행동일지라도.


영화 속 하준은 생중계 중인 인터넷 방송의 수익을 위해 조작을 감행했고 위험한 상황에서도 멈추라는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현실이라고 다를까?

<위대한 개츠비>처럼 돈이 전부인 세상,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세상. <언프렌디드: 다크 웹>의 범죄자들은 돈과 재미를 위해 비상식적으로 가학적인 방송을 하고, <인간 수업>의 청소년들은 돈을 위해 목숨을 걸어 반사회적인 일들에 가담했다.


<곤지암>은 일명 자낳괴(본주의가 물)로 보이는 인물 하준을 통해 이 모든 병리 현상을 꼬집는다. <엑시트>에선 드론이 주인공을 구하는 구원의 수단이었지만 <곤지암>의 현대적인 장치는 초자연적 존재들에 의해 쉽게 무력화됐고, 관련 인물들은 모두 공포의 대상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해 죽음을 맞이했다. 이 세계에서 인물에게 내릴 수 있는 가장 큰 죄, 죽음을 선사함으로써 이들의 행동을 비판하고, 그것에 일말의 동정심조차 보이지 않은 것이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선 쇼핑몰을 차지하기 위해 생존자들끼리 싸웠다. <국가부도의 날>에서는 국가 경제의 멸망을 자본 축적의 기회로 여기는 자들이 등장했다. <곤지암>은 이러한 인간 지성에 실망해 본성과 이성의 조화를 외치는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의 인간성이 물질성에 얽매어 노예가 되었다는 실망과 비판을 보여준다고 본다.


‘살자’가 ‘자살’로 바뀌는 <샤이닝>의 오마주를 통해 <곤지암>이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단 두 글자의 변화에도 경기를 일으키며 정신병원을 탈출하는 지현과 샬롯. 그들이 이전에도 경험했던 언어 변화의 미장센은 무엇이었는가? 앞서 말한 5월 16일과 10월 26일, 반복되는 503이라는 숫자. 하지만 젊은 층으로 대표되는 체험단들은 이 변화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생각하자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문구가 떠오른다.

생존권을 위협받는 상황에서만 물질적인 욕망에서 벗어나고, 역사적인 상징들에는 크게 반응하지 않았던 모습은 역사에 민감하지 않은 현대인의 모습을 빗대어 표현하는 것과 같다. 정신병원을 탈출해도 반복되는 숲 속. 역사를 잊고 개인의 욕망만을 채우면서 살아가면 과거의 아픔들이 되풀이된다는 걸 보여주는 장치처럼 느껴진다.

영화는 계속해서 현대인의 잘못된 인식을 보여준다. 젊은 층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이루었던 점을 생각해보면, 공포라는 오락적인 요소를 통해 그들을 일깨워주려는 감독의 의도가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곤지암>이 이뤄낸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재해석

<곤지암>은 사회적인 갈등과 정치적인 요소를 공포 속에 잘 녹여내면서 동시에 페이크 다큐멘터리가 현대로 오면서 겪어야 할 필연적인 절차까지 보여준다.

 <블레어위치>가 보여준 관습이 그 당시에 신선했을진 몰라도 이젠 지겨운 답습처럼 평가받는다. 따라서 <곤지암>은 이 요소들을 선택적으로 보여준다. 이 점은 본 장르의 마니아 층을 완전히 만족시킬 수 없다는 아쉬움을 가져올 테지만, 동시에 겨냥하는 타겟층을 확대할 수 있다는 기회로 보인다. 핸드헬드 촬영 기법 역시 적절한 순간에만 배치하였으며, 별다른 사운드를 집어넣지 않았던 과거와 달리 은밀하고 정교하게 다양한 사운드로 관객을 압박했다.

변화와 계승 과정에서 특이한 것은 일반적인 공포 영화처럼 공포의 대상을 물리적인 실체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블레어위치>에서는 마녀가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았고, <클로버 필드>에서도 마수는 코즈믹 호러처럼 미지의 것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곤지암>은 그 대상이 기괴하긴 해도 인간과 비슷한 형태로 등장한다. 다른 공포 영화처럼 파운드 푸티지도 연출에 있어 심리적인 압박에만 국한하지 않고 시각적인 충격에 기대기 시작한 것이다. 픽션을 전제로 가져갔기에 다큐멘터리의 사실성 기댈 수 없어, 심리적인 압박만으로는 심심하다는 단점을 보기 좋게 깨부수면서도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씁쓸한 변화라고 느낀다.  하지만 <곤지암>은 똑똑하게도 심리적인 공포를 아예 놓지 않았다. 바로 공간에 귀신이 스며드는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다양한 곳에 카메라를 배치해놓고 귀신이 등장하기 전 후의 모습을 보여준다. 공간의 의미에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다. 귀신이 실재적으로 드러나겠다고 생각했지만, 샤워실에 물이 틀어진다. 우리는 그것을 보고 귀신이 공간에 스며든 것처럼 생각한다. 동시에 등골이 오싹해지며 공간에 공포를 느끼게 된다. 미지의 공간에 공포를 느꼈던 등장인물에 감정이입이 되는 것만 같다. 심리와 시각에서의 공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것이다!


현대로 올수록 대중들은 공포 영화를 가볍게 즐기기 좋은 오락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특히 젊은 층이 그러하다. 그런 젊은 층을 주 고객으로 겨냥한 <곤지암>은 복잡하고 깊게 몰입해야만 이룰 수 있는 심리적 압박의 틀에서 벗어나, 유연한 변화를 보이며 페이크 다큐멘터리가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미래의 페이크 다큐멘터리가 기존의 관습들에서 탈피하여 타 공포 영화의 요소를 배치해 예상할 수 없는 호러를 보여주리라는 신호탄과도 같은 영화이다.


<곤지암> 한 사발 어떠세요

필자처럼 <랑종>에 심히 실망했다면, 강력하게 <곤지암>을 추천한다. 2017년. 조금은 오래된 공포 영화지만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데 긴 손톱, 짧은 손톱 가릴 필요가 있겠는가. 시원함만 남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밤 <곤지암> 한 사발 원샷 드링킹 어떠신가?


참고문헌
1. 정경석 외 1명, “한국 공포영화의 흥행요인 분석 -「곤지암」을 중심으로”, ‘인문사회 21(The Journal of Humanities and Social science)’, Vol.10 No.5, 사단법인 아시아문화학술원, 2019년.

2. 백승원, ‘모크 다큐멘터리의 표현 스타일에 관한 연구 : 공포 영화를 중심으로’, 국민대학교 석사 학위논문, 2011년.
작가의 이전글 푸르게, 푸르게. 지옥 같은 과거, 현재, 미래일지라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