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준호 Sep 18. 2021

카프카에스크, 라캉의 계, 키에슬로프스키

내 마음대로 지식 저장 NO.1

카프카에스크

‘카프카에스크’라는 형용사는 유대계 독일 작가인 ‘프란츠 카프카’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수수께끼 같고 불확실하며 환영과도 같은 어두운 힘 앞에 내던져진 존재가 느끼는 섬뜩하고 우울한 감정을 말한다. 그의 소설에서 풍기는 기본적인 분위기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으로, 침울하고 우울한 그리고 누군가에게 이유 없이 협박당하고 있는 듯한 상황에 처한 느낌을 준다. 이 개념은 주로 인간미가 없고 냉철한 관료주의에 적용된다. 1)


1) 카프카에스크, 네이버 지식백과, 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1721936&cid=60604&categoryId=60604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에 대하여 : 라캉철학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는 모두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인 라캉이 그의 욕망 이론 안에서 핵심적으로 주장한 개념이다. 이 개념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라캉의 욕망이론이라는 것은 무엇인지 알아보아야 한다.

욕망이론은 라캉의 이론적인 뿌리가 되는 것이다. 그는 일반적으로 욕망이라고 불리는 것을 ‘욕구, 요구, 욕망’ 세 가지로 구분한다. 욕구는 인간의 육체적인 생존을 위해 충족되어야 할 조건으로, 식욕과 같은 것이다. 요구는 이제 타자가 등장한다. 라캉은 이를 엄마로부터 완전한 사랑을 받기 위한 아기의 울부짖음이라 표현한다. 더 들어가 욕구라는 것과 섞어 이해하자면, 어린아이의 배고픔은 욕구이고, 그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어머니를 부르는 울부짖음이 바로 요구이다. 요구에서 특이한 점은, 생각의 차원에서 이루어졌던 욕구가 언어로 표현된 것이 바로 요구라는 것이다. 어머니를 부르는 행동과 성장한 사람들이 어느 부분이든 요구하는 것은 언어적인 것으로 이루어진다. 욕망은 이 요구에서 조금 더 타자와 면밀한 관계를 맺고, 한 단계 더 나아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본질적으로는, 결핍적인 어느 것을 채우기 위한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욕망이 타자와 더 면밀한 관계라는 것은 욕망은 언제나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앞서 요구가 언어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했지만, 모든 요구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루어지지 못한, 언어적으로는 절대 표현 불가능한 요구나 욕구가 바로 욕망이라는 것이다. 요구나 욕구는 개인의 내부에서 일어날 수 있지만, 그 간극에서 벌어진 욕망은 타자를 끌어들일 수밖에 없다. 이 욕망은 영원히 해결할 수 없다. 욕망이 채워졌다는 것은 아주 잠시 욕망의 경계에서 멀어졌을 뿐이다. 그런 욕망을 영원히 해결하고 싶은 마음에서 바로 ‘환상’이 나타난다. 환상은 이 욕망이 해결되지 못하기에 생성된 에너지가 넘쳐흐름을 의미한다. 욕망은 계속해서 해결됨을 원하고, 해결되지 못한 욕망은 그릇에 넘쳐 환상으로 나타난다. 인간은 욕망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라캉은 이 욕망이 세 가지 영역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에서 나타난다고 본다.

욕망과 깊은 관련이 있는 이 세 영역 중 첫출발은 상상계이다. 욕구와 요구의 차이점을 알아보기 위해 어린아이를 비유했던 것처럼 세 영역을 알아보기 위해선 라캉이 들었던 어린아이의 비유를 가져와야 한다. ‘거울 단계’라고 불리는 것이다. 먼저, 거울은 실제로 대상을 반사하는 물체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것이다. 어린아이는 거울에 자신의 몸을 비추기 전까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까? 머리와 팔 그리고 다리 몸통 등 신체기관이 존재함은 어렴풋이 알겠지만 그것이 합체된 것이 아닌 분열된 형태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것은 현실에서 존재하지 나를 아직 보지 못해서 생겨난 것으로, 그저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것과 내가 머릿속에서만 상상하는 것들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거울 단계’에서 드디어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는 순간 아이는 현실 속에 존재하는 자신의 이미지를 보게 된다. 분열됐다고 생각했던 것이 모두 붙어있는 채로 존재하는 나. 여기서 아이는 최초로 자아가 형성된다. 동시에 상상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동일시 즉, 상상적인 질서가 발생한다. 거울에 비친 이미지와 현실 속의 나를 동일시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형성된 자아는 거울 속에 존재하는 나와 동일한 이미지와 얽혀 자기중심적인 것으로 흘러간다. 애무 의식 속에 그 동일시도 이미 ‘나’라는 심리적 판단이 섞이기 때문이다. 이 동일시는 매우 공격적인데, 거울 속 이미지와 현실 속의 나를 말 그대로 동일시하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울을 바라봄과 동시에 현실을 직시한 나는 현실에 존재하는 언어적인 구조, 인간관계의 법칙 등을 배우면서 상징계로 넘어서게 된다.

상징계는 이미 주변의 모든 것들 즉, 현실의 영역이다. 라캉은 거의 상상계의 환상들이 뺏기다시피 상징계의 우위로 넘어오게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상상계는 환상이 계속해서 흘러넘치는 상태로 멈추게 되고, 결국 궁극적으로 만족할 수 없는 상태로 남는다. 그 필연적인 결핍이 바로 ‘욕망’인 것이다. 욕망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와 더불어 상징계로의 이동은 한 가지 비유가 더 존재한다. 바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이다. 상징계가 현실의 구조와 법칙을 깨달으면서 점차 이해되고 생성된다고 했는데, 이 콤플렉스의 진행과 거의 동시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콤플렉스의 진행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거울 단계에서 진행되는 자아의 동일시 분리, 상징계에 정착하는 어린아이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거울 단계에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본 아이의 시선에서 시작한다. 그를 거울로부터 높이 쳐든 사람이 있다면, 어머니라 볼 수 있다. 상상계의 욕망이 그저 어렴풋이 다가오는 아이는 자신의 욕망을 어머니의 욕망과 똑같이 생각하며 공격적인 자아 형성은 곧, 어머니에 대한 이성적 욕구로 다가온다. 어머니에게 성적으로 다가가고 싶은 욕망이 생겨나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바로 아버지라는 존재이다. 여기서 동시적으로 자아와 주체가 분리된다. 어머니를 성적으로 바라보던 상상적인 자아와 그러한 다가감이 통용될 수 없는 것이고, 그러해서도 안 된다는 걸 안 주체로 분리되는 것이다.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될까? 이 아버지라는 존재는 어머니에게 합법적으로 다가갈 수 있으며, 남근인 팔루스를 가졌기에 나의 욕망이 그대로 실현되면 거세를 당하는 형벌을 얻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로 인해 두 가지 결과가 생긴다. 아버지를 미워하는 감정이 생겨나고, 그 아버지로부터 현실의 언어적 구조와 법, 그리고 법칙을 배운다. 분리된 주체는 현실을 깨닫게 되며 그렇게 상상계로부터 상징계의 절대적인 우위가 벌어진다.

그렇다면 실재계란 무엇일까? 우선 상상계는 이 절대적이라 자부하는 상징계를 의심한다. 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징계 속에서 존재한다. 이러한 상상계는 상징계 속에서 즉, 현실 속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타자로 남게 된다. 그리고 이 두 계를 이어주는 것이 바로 실재계라는 것이다. 실재계는 상상과 현실 그 너머의 아득하고 철학적인 것이다. 현실에선 파악할 수 없는 즉, 언어체계로는 해석 불가한 어느 나머지라고 볼 수 있다. 라캉은 이 세 개의 계가 이루어짐을 나타내기 위해 ‘보로메오 매듭’이라는 개념도 사용한다. 인간이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실재계가 상상계와 상징계를 연결하는 질서라고 생각한 것이다. 세 개의 계들은 연결된 끈처럼 이어져있어서 어느 하나가 뚝 끊기면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없다고 말한다. 상징계에서 상상계에만 빠지면 정신병이 오고, 상상계를 아예 모른다면 도착증 환자가 된다. 쉽게 말해, 상상 속에서만 갇혀있다든지 등이다. 이렇듯 현실에서 욕망을 위해 간단하게라도 상상하는 것을 상상계라 볼 수 있고, 그것들이 현실의 언어적인 체계와 붙어 현실 자체가 되는 게 상징계, 그 둘을 이어주면서 현실과 상상을 넘어선 아득한 무언가를 실재계로 볼 수 있다.


키에슬로프스키 : 진짜 눈물의 공포

키에슬로프스키는 폴란드의 영화감독이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겪어 신부가 되려고도 했었다고 한다. 폴란드 국립영화학교에서 다큐멘터리에 대해서 배웠고, 대학에서는 영화, 연극, 텔레비전 학과의 석사학위를 받는다. 1966년부터 그는 수많은 단편영화와 기록영화를 만들었다. <궤도열차>, <첫사랑>, <어느 공산당원의 일기> 등이 그 예시이다. 여기서 <어느 공산당원의 일기>는 독일 만하임영화제와 폴란드영화제에서 대상을 받는다.

그 후 키에슬로프스키는 <십계>라는 영화로 또다시 주목을 받는다. 화면의 아름다움과 특유의 형식이 유명해진 것이다. 관객에게 현실에서 일어날법한 갈등과 문제를 던지고, 이를 규범에 의해 해결될 수 없음을 시사한다. 이것이 그의 영화가 취한 방법이다.

그렇게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오른 키에슬로프스키는 다큐멘터리에서 극영화로 영역을 옮기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다큐멘터리가 가진 실제 눈물에 대해 공포를 느끼고 개인에게서 더 가까이 가려고 하는 욕망이 겹쳐서 일어난 행위인 것이다.  이 부분을 더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지젝의 도서, <진짜 눈물의 공포>에서 이어진다. 키에슬로프스키는 눈물의 공포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인가?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차이는 무엇일까? 바로 허구성이 존재하느냐이다. 다큐멘터리의 사전적 정의는 ‘실제로 있었던 어떤 사건을 사실적으로 담은 영상물이나 기록물’이다. 다큐멘터리는 실제로 있었던 사실을 담기 때문에 어떤 사실을 담느냐에 따라 한계가 존재한다. 현실 속의 사건이 절대 예술로서라도 다뤄져서는 안 되는 것이라면 말이다. 예를 들어, 다큐멘터리 작품에서 실제 있었던 성폭행 사건을 다뤘다고 생각해보자. 그 작품에서 성폭행당하는 피해자의 순간이 적나라하게 담겼다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은 그것을 연출한 감독의 의도와 상징을 생각해보기 전에 그 외설성에 경악하고 비난을 퍼부을 것이다. 그 외설적인 면모가 이미 타인의 내밀한 부분에 허락도 없이 파고든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다큐멘터리라는 작품이 가진 특징 때문에 외설적인 것과 외설이 가진 눈물의 공포를 이겨내지 못한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비난을 퍼부은 것이다. 이것이 키에슬로프스키가 느낀 한계이며, 지젝이 언급한 ‘진짜 눈물의 공포’로 이어진다.

나라는 주체가 살고 있는 상징계의 사건이라면 사람들은 절대 외설을 이겨내고 상상계적인 탐구를 시작하지 못한다. 상징계는 상상계로부터 절대적인 우위를 갖기 때문이고, 그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 허구를 추가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 사건들이 허구로 전환되면, 그것은 허구이므로 사람들은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 그것이 허구의 힘이다. 상상계에서 일어날 법한 일이므로, 그 대상은 우리가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어떤 이미지적인 타자가 된다. 때문에 다큐멘터리처럼 타인의 내밀한 감정에 공포가 파고들어도 사람들은 그 눈물의 공포를 이겨낼 수 있다. 드디어 감독이 내포한 의미와 상징을 뜯어보려고 하는 것이다. 키에슬로프스키는 허구가 가진 이러한 힘을 인식했고, 그렇기에 다큐멘터리에서 극영화로 넘어갈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기형도의 시, “기억할 만한 지나침”에서 ‘나’가 고통스러웠고, 중지시킬 수 없었고, 떠나지 못했던 이유는 그 감정은 현실에서 일어나는 다큐멘터리였기 때문이다. 마치 실재계의 공포가 스멀스멀 다가오듯 절대로 이겨낼 수 없는 공포. 러브 크래프트의 크툴루 신화를 빌려오자면, 그 존재들 자체에 느껴지는 아찔한 공포라고 할 수 있다. 만약 ‘나’가 그의 울음을 텔레비전 속 연기하는 연기자의 모습처럼 볼 수 있었다면, 그가 가진 감정에 대해서, 저 상황에 대해서, 창작자가 의도한 것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허구의 힘이 첨가된 극이기 때문이다. 이 힘이 추가되었느냐의 여부에 따라 진짜 눈물의 공포가 다른 방향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키에슬로프스키는 그 힘을 자신의 작품에 부여하여 대중들이 눈물의 공포에 저항하여 진실을 바라볼 수 있도록 의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젝은 이 지점과 눈물의 공포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진짜 눈물의 공포>라는 저서에서 서술해놓은 것이라 볼 수 있겠다.

 

참고문헌
요구,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431430&cid=40942&categoryId=31531

2. 무의식은 언어와 더불어 만들어진다, 네이버 지식백과 보고 듣고 만지는 현대사상,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4355939&cid=41908&categoryId=59912

3. 라캉, 네이버 지식백과 철학사전,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180957&cid=41978&categoryId=41985

4. 카프카에스크, 네이버 지식백과 카프카 문학사전,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721936&cid=60604&categoryId=60604

5. 라캉, 네이버 지식백과 상담학 사전,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676661&cid=62841&categoryId=62841

6. 자크 라캉의 사상, 네이버 지식백과 사상사 개설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397568&cid=41978&categoryId=41980

7. 상상계,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390010&cid=40942&categoryId=31531

8. 상상계, 네이버 지식백과 문학비평용어사전,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530248&cid=60657&categoryId=60657

9. 상상계/상징계/현실계, 네이버 지식백과 21세기 정치학대사전,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728123&cid=42140&categoryId=42140

10. 상징계,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200604&ref=y&cid=40942&categoryId=31531

11. 상징계, 네이버 지식백과 상담학 사전,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673319&cid=62841&categoryId=62841

12. 실재계,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200602&ref=y&cid=40942&categoryId=31531

13. 실재계, 네이버 지식백과 문학비평용어사전,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530442&cid=60657&categoryId=60657

14. 보로메오 매듭,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379591&cid=40942&categoryId=31531

15. 키에슬로프스키,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69172&cid=40942&categoryId=40499

16. 슬라예보 지젝, “시차적 관점”, 마티, 2009.03.20.

17. 안시환, “[인사환의 영화비평] 듣기의 예술”, 씨네21, 2015년 9월 8일,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81203

18. 남다은, “[신 전영객잔] 윤리와 폭력과 연민의 이상한 동거”, 씨네21, 2014년 5월 29일,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76987

19. 다큐멘터리, 네이버 사전 국어사전,
https://ko.dict.naver.com/#/entry/koko/87844223589d4ddf8e5d91ffe5da7db5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사랑이라는 연극과 숨김의 미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