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을 읽어보면 무섭지 않아요
1. 지나가다 서점이 보이면 설레는 마음을 안고 들어갑니다. 책이야 다 뻔한데 굳이 설렘을 안고 들어갈 필요가 있냐고 여쭤보신다면, 그게 있습니다. 저는 전시된 책을 읽는 게 아니거든요. 책이 전시된 모양 그리고 그 책을 접하는 사람들의 반응에서 트렌드를 읽는 걸 좋아합니다.
이런 와중에 요즘 핫한 트렌드라면 '4차 산업혁명'을 들 수 있겠네요. 정말 산같이 쌓여있습니다. 심지어 기존에 만들어진 책까지 제목과 키워드를 '4차 산업혁명'으로 바꿔 다시 내고 있을 정도죠.
이런 열풍에 저도 흥미가 있냐고 여쭤보신다면, 열풍의 중심에는 '공포심'이 자리 잡고 있다고 보기에 솔직히 심드렁하다고 답변하겠습니다.
2.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키워드는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블록체인, 가상현실(VR/MR/XR/AR) 등이죠. 이런 기술이 각종 사무기기, 운송수단과 연결되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할 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인간이 필요 없어지게 된다는 공포심이 생긴 것이죠.
이런 공포심을 부각한 것은 알파고(Alpha Go)였습니다. 구글은 경우의 수가 많아서 인간을 이기기 어렵다는 바둑에서 인공지능의 위력을 보여준다며 알파고를 데뷔시켰죠. 이렇게 데뷔한 알파고는 데뷔전에서 바둑기사 이세돌 9단에게 4:1로 이기면서 공포심을 바탕으로 성공적인 데뷔를 했습니다. 이후 커제 9단에게 압승하면서 그동안 얼마나 진화했는지 만천하에 공개했죠.
그리고 공포심은 극이 되었습니다. 알파고님이 우리를 능가하신다. 우리는 쓸모없는 사람들이다. 이제 사고라는 인간 고유의 영역까지 무기물에게 지배당한다!라고 말이죠.
저는 이게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생각합니다
3. 저는 이게 쓸데없는 걱정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여기에는 제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습니다. 굉장히 많은 예시를 들 수 있는데 여기서는 카풀을 법적으로 막아달라고 해서 최근 한 소리 듣는 택시업계를 예로 들어볼까요?
첫째,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대한민국에 우버가 잠깐 들어왔었죠. 돈을 받고 사람을 태워준다는 것은 유료 대중교통에 익숙한 현대인의 관점에선 이상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법적인 면에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져요. 자가용이나 렌터카로 사람을 실어 나르는 운수사업법 제34조와 제81조를 위반하는 조항이에요.
AI를 활용한 시스템이 들어온다고 해서 그게 당장 운용되긴 힘듭니다. 우리나라도 2020년에 자율주행 차량의 주행이 가능해진다고 하죠? 하지만 그게 바로 택시를 대체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우선 운수 관련 법규를 손봐야 해요. 이게 뚝딱 손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선 국회를 통과해야 해요. 국회의원들은 당연히 선거일정을 머리에 넣고 기존 기득권과 새로운 수혜자 간의 표심을 저울질합니다.
이 저울질을 통과해서 대중교통을 AI가 대체한다고 쳐도 바로 들어오긴 힘듭니다. 우선 관련 이동루트를 안전하게 운행하기 위한 프로그램과 시스템 구축 그리고 이게 안전한지 시험을 거쳐서 안정화되어야 비로소 대체가 가능합니다.
이건 새로운 시스템이 들어가기 위해선 기존 시스템을 교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죠. 현실에선 바로 인공지능을 도입한 차량이 도입되는 것 자체가 위법이고, 그 시스템을 바꾸는데 시간이 걸리며 바뀐 시스템을 검증하고 납득하는데도 시간이 걸린다는 이야기입니다.
둘째, 인공지능은 생산성을 무조건 담보하지 않습니다.
기술의 발전은 비숙련 노동자를 기계 + 숙련된 노동자 + 관리자 패키지로 대체합니다. 그래서 AI무인자동차가 기존 운송수단을 대체할 수도 있을 거예요. 현재 볼보도 무인 트레일러로 운송 노동을 대체하는 연구 중이죠. 이런 것만 보면 기술의 발전은 100% 인간을 대체, 생산성이 펑펑 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고래부터 생산성의 향상은 혼자서 잘나서 된 적이 없습니다. 생산성의 향상은 언제나 기존 사회와 기술이 융합되면서 태어났어요. 산업혁명이 일어난 이유는 기존의 양모가 인도에서 들어온 면직물에 밀리기 시작한 것이 계기였습니다. 훨씬 가볍고 따듯한 면직물의 파워에 온 유럽이 전율하고 기존의 시장이 빠르게 바뀌는 과정에서 면직물의 공급이 부족했고 이런 기존 사회의 목마름에 기술이 화답하면서 산업혁명이 일어났습니다.
한국에서 우버가 왜 반응이 미적지근했느냐? 우선 기존의 규제가 많은 것도 있지만 서울이라는 도시는 우버가 태어난 곳과는 달리 택시가 차고 넘치는 곳입니다. 즉 운송수단에 대한 목마름이 없는 시장이니 우버가 굳이 파고들 필요도, 파고들 방법도 없었던 것이죠.
즉, 새로운 기술이 나왔다고 해서 바로 생산성을 대체하지는 않습니다. 될 것 같은데 안돼요. 그건 사회의 목마름에 제대로 부응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셋째, 인공지능 핑계를 댈 필요가 없습니다.
애초에 사람은 인공지능과 경쟁할 필요가 없습니다. 굳이 거기까지 안 가도 여러분이 바라보는 핸드폰이나 컴퓨터가 이미 여러분보다 똑똑해요. 것도 급이 다릅니다. 이 똑똑한 녀석들이 산업에 대두된 것이 제3차 산업혁명이라고 불리는 녀석입니다... 만 오히려 3차 산업혁명은 생산성을 하락시켰다고 하죠.
이건 어쩌면 당연한 겁니다. 경제학에 보면 잠재성장률이란 모든 생산요소를 동원했을 때 달성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즉 도구만 발달했다고 생산성이 발달할 수 없다는 겁니다. 비슷한 논리로 AI가 아무리 좋아도 우리 생산수단을 당장 대체하진 못해요.
자 무인택시가 들어온다면 우선 승차거부를 안 할 테고, 졸음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가 감소할 겁니다. 외국인들한테 바가지도 안 씌울 테고요, 운수회사도 인건비가 60% 이상인 상황을 볼 때 이득일 겁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장점은 아예 없는 것일까요?
모든 것을 인공지능에 내줘야 할까요?
무인택시가 한국보다 빨리 도입될 일본에서는 이미 택시기사가 AI무인택시와의 경쟁을 포기하고 다른 방향의 길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미 좋은 기사분들이 해주시는 투어 서비스가 그거죠. 지방에서 좋은 택시를 타면 맛집, 명소를 다 알려주시잖아요? 일본에선 이를 체계화된 서비스로 제공 중입니다. 물론 구글 정도면 맛집 데이터와 리뷰 선호도를 바탕으로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긴 하겠지만요.
중요한 점은 굳이 인공지능인 택시와 빨리 목적지 도달하기, 24시간 운행하기 같은 걸로 싸울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이건 유도선수가 권투선수가 있는 링에 주먹 쥐고 뛰어드는 것과 같아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서비스로 싸우면 되지 뭐하러 무인택시의 링에 뛰어드나요? 우리가 계산기로 더하기 빼기 경쟁을 하진 않잖아요?
일본의 산와교통(三和交通)은 이미 AI와의 정면승부에 나섰습니다. 귀신이 나오는 택시, 관광택시, 응급 택시, 산모 택시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요. 이 정도면 몇 개가 히트해도 히트할 겁니다.
4. 알파고는 바둑기사를 이겼습니다. 하지만 이건 이세돌 9단이 대단한 거예요. 수많은 기보를 바탕으로 파해법을 조합하는 PC를 인간이 연산속도로 이긴 셈이니까요.
하지만 바둑이라는 오락의 본질을 생각해보면 이 승부만큼 어이없는 승부도 없습니다. 바둑이 뭔가요? 놀이입니다. 인간이 즐기기 위한 것이죠. 그리고 전략 싸움입니다. 상대방의 수를 읽고 나의 수로 상대를 공략하는 게임이죠. 그리고 경기입니다. 사람들은 인간이 상대방을 수로 무너뜨리는 과정을 보고 즐기는 거죠.
무슨 말이냐고요? 자 스타그래프트를 생각해보죠. COM VS COM 하고 친한 친구들이 하는 어설픈 경기중 어느 것이 재미있어요? 단연 후자입니다. 이런 시합은 애초에 잘하는 기술이 본질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시합이 본질이죠. 즉 바둑시함에서 알파고가 이겨봤자, 바둑이라는 오락, 경기에서 알파고는 승승장구 할 수 없습니다.
알파고가 아무리 바둑을 잘 둬도 이세돌 9단이나 커제 9단 같은 인기를 얻을 수는 없습니다. 알파고가 얻은 것은 인공지능의 상품성, 시장 대안으로써의 지위일 뿐이죠. 즉 놀이라는 면에서는 여전히 인간이 우위입니다.
인공지능에 졸지 마세요. 완전히 인공지능과 같은 판에서 승부하는 것만 피하면 됩니다. 요즘은 글도 인공지능이 쓴다고 하죠? 하지만 인공지능은 이렇게 인공지능에게 쫄지 말라는 글은 못 씁니다. 자기 목줄을 죄는 일이니까요. 이런 식으로 판을 인간 쪽으로 되돌리면서 살아나가면, 새로운 일을 개발해나가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하지만 제 말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정말로 인공지능님이 세상을 지배하시고 글쓴이를 채찍질하며 더 열심히 하라고 혼내실 수도 있어요. 그래서 저는 제가 쓴 글은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라고 선을 긋겠습니다. 이런 꼼수를 부리는 것도 창의성을 지닌 인간의 특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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