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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식공장장 Feb 01. 2018

초보자를 끌어들이는 스토리 텔링

카와이 카츠토시가 스포츠의 세계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법

그 이름은 천재 만화가


카와이 카츠토시(河合克敏), 모르시는 분들도 많을텐데 이 사람은 64년생으로 S.E.X로 천재성을 입증한 카미죠 아츠시(上條淳士)의 문하생 출신입니다. 이후 1987년에 <폭풍 걸즈>로 정식데뷔했죠. 


1988년엔 소년 선데이에 첫 장편연재작인 도복을 꼭 매고 (帯をギュッとね!)를 연재, 인기만화가의 반열에 오르고 이어서 그린 장편 후속작 몽키턴(1996)도 히트시켜서 흥행성을 입증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래서 어쩌라고? 그게 누구야'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지만, 표지를 보면 반응이 바뀌실지도 모릅니다.


출처 : 帯をギュッとね!

이 작가가 다룬 이야기는 굉장히 흡입력이 있습니다. 유도는 그렇다쳐도 경정에 붓글씨까지 인기있을만한 소재가 아니에요. 유도경기도 일본에서야 다무라 료코의 은메달로 붐이 일었고, 야와라!! 등의 대히트로 붐이 조성되었지 한국에서는 그럴 일도 없죠. 하지만 이 책은 해적판으로 출간되어 큰 인기몰이를 했고, 이후 세주문화에서 정식출간되기도 했습니다.


대체 무엇이 이 작가를 특별하게 만든 걸까요?



왜 스포츠를 즐기지 못하는가?


의외로 스포츠를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선 갑론을박이 상당한데 이 사람의 만화를 읽어보면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 지 알 수 있죠.


인간은 단순히 말하면 감각기를 통해 얻은 정보를 처리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스포츠 만화를 즐기지 못한다는 것은 얻은 정보를 처리하지 못한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원칙 1 : 선수와 주변 사람들을 알 고 있다.

원칙 2: 시합의 현황파악이 가능하다.

원칙 3: 각 플레이가 가진 의미를 알고 있다.

원칙 4: 선수들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다. 


즉 뭘 하는지 알 수 없으니 재미가 없는 거고, 룰을 배워가면서 볼 이유도 없는 거죠.


그래서 영리한 스포츠 만화는 이 정보수집과 처리의 벽을 없앤 만화들입니다. <슬램덩크>처럼 초짜 강백호가 배운다는 개념을 잡고 독자의 시야를 넣어버린다던가 <터치>, <H2>처럼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고 이 사람들의 감정을 통해 '야구의 룰을 모르는 사람에게도 감정을 공감시키는' 화법을 취하기도 하지요.


이런 화법이 전제가 되지 않으면 스포츠 만화는 스알못 독자를 절대 끌어들일 수 없습니다. 



3. 그래서 뛰어난 작가는 자신이 가진 스포츠의 감동을 스알못 독자에게 전달하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또한 많은 방법을 알고 있죠. 우선 만화에서는 작중에 나온 정보를 보완해서 전달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해설, 지금까지의 이야기 같은 기초적인 것부터 작중의 설명역까지 활용할 수 있죠. 이렇게 작가는 독자를 독자가 눈치 못채게 <교육>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감정의 표현으로 말할 수 있지요. 

출처 : H2

만화 H2에서 이기적이던 키네가 책임감을 느끼고 전력투구하는 장면입니다. 이 이야기를 보면서 독자들은 야구를 잘 몰라도 한 선수가 시합내내 볼을 던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7월의 고시원이 얼마나 뜨거운지 몰라도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환경인지 바로 이해할 수 있지요.


그래서 성공한 스포츠 만화는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드는데 집중합니다.


뒤집어 말하면 스포츠 만화에서 얼굴이 안보이면 높은 확률로 실패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복면레슬러가 나오는 프로레슬링인데 마스크를 쓰니까 누가 누군지 알 수 없죠. 그래서 작가들은 주인공은 복면을 안씌우던가 씌워도 근육맨처럼 표정과 감정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얼굴을 만들죠. 아니면 타이거 마스크처럼 마스크의 눈동자를 빼던가 배경으로 묘사를 하던가.



카와이 카츠토시가 사람을 끌어들이는 법

도복을 꼭 매고, 몽키 턴, 거침없이 한 획 등의 만화는 각각 유도, 경정, 붓글씨라는 영역을 다룹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위에서 말한 네 가지를 꼭 염두에 두고 그려요. 스크롤 올리긴힘들테니 다시 한 번 정리해 볼까요?


원칙 1 : 선수와 주변 사람들을 알 고 있다.

원칙 2: 시합의 현황파악이 가능하다.

원칙 3: 각 플레이가 가진 의미를 알고 있다.

원칙 4: 선수들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다. 


이게 제일 잘 보이는 만화는 경정을 그린 몽키턴 입니다. 경정은 모터 보트를 타고 즐기는 경기로 우리나라에선 2002년에 하남시에서 첫 경기가 열렸지만 꽤 책을 읽은 사람도 잘 모를 정도로 인기는 안 좋아요. 그리고 일본에서는 도박이라는 이미지가 있어서 몽키 턴을 읽어야 할 소년독자들과 거리가 있는 작품이었죠.


그래서 작가는 주인공을 경정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는 독자들의 현실을 반영한건데요. 이후 학교에 입학하고 선수로 데뷔, 여러가지 승부에서 고생하게 되지요. 이 과정에서 여러가지 캐릭터가 나와서 다양한 패턴의 경기를 펼칩니다.


경정은 실제 경기니만큼 실존인물이라던가 기관까지 차용합니다. 왜냐하면 원칙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에요. 독자가 이를 일일히 공부해서 들어올리는 없으니 최대한 현실과 연결고리를 만들어 두는 겁니다. 


그래서 작가는 엄청난 취재를 합니다. 나중에 인터뷰를 보면 경정 선수들, 기관관계자는 다 만나본 모양이에요. 이는 작가의 경험이 반영된 '캠퍼스 라이벌'에도 반영되어 있죠. 


중요한 것은 취재자료를 맞춰내는 조합력입니다.


작가는 취재한 자료를 분리하는 과정에서 초보자가 이야기에 진입하는 방법까지 같이 연구합니다. 초보자가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조합하는 것이죠. 그래서 한국에 사는 우리 독자가 작가가 하는 이야기의 진위여부는 알 수 없더라도 설득은 당하게 됩니다. 리얼리티가 살아나는 것이죠. 리얼리티가 살아난 이야기는 자연히 쉽게 이해됩니다.


거침없이 한 획에서는 한국에서도 유명한 전위예술가 이노우에 유이치가 등장한다. 배경지식없는 초보자에게 전위서의 어려움을 전달하기 위한 장치다 [출처 : 김달진 미술연구소]


이렇게 작가는 리얼리티를 조립해 나간다. 캠퍼스 라이벌에선 여러 만남을 통해 유도 강자만큼 연습량이 안된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들의 무력함을 느낀 주인공들이 이기기 위한 방법으로 체중증량, 기술을 배우게 된다. 이는 일반적인 스포츠 만화에서 나오는 근성과 용기와는 정면배치되는 현실의 상황이다. 하지만 독자는 이 현실을 신선하게 받아들이고 쉽게 감정이입하게 된다. 이는 비단 유도만이 아니라 우리모두가 겪는 현실의 벽을 현실적으로 돌파하는 과정이니까. 


처음에는 대설산 떨구기같은 만화 기술을 연구하던 주인공들에게 쉽게 이입된 독자들은 실제적인 고행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자연스럽게 빠져든다. 이는 리얼리티의 힘이다. 물론 깨알같은 개그가 리얼리티에 빠져들 동기를 부여함은 부정하기 어렵지만. 


거침없이 한 획이 대단한 이유

출처 : 거침없이 한 획


스포츠를 모르는 스알못을 끌어들이는게 커피라면 이 '거침없이 한 획'은 T.O.P입니다. 무려 주제는 붓글씨라는 마니악한 분야인 것이죠. 


이 만화가 재미있는 점은 '붓글씨라는 것은 만화에 최적화된 소재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피아노의 숲, 노다메 칸타빌레는 만화독자가 음악은 못듣지만 주위 사람들의 반응과 긴장된 모습으로 이 만화가 대단한 작품임을 알 수 있어요. 


하지만 이 작품은 직접 독자가 붓글씨를 그대로 볼 수 있죠. 만화라는 매체에서 스포츠는 동작 과정이 빠져있고, 음악은 소리가 빠져있는반면 붓글씨는 그 모든 것이 그대로 만화 지면에 제어된다. 그래서 붓글씨는 정말 희귀한 만화 소재입니다.

순수하게 그림 표현만으로 독자를 납득시키는 장르인 것이죠.


그래서 작가는 취재 과정의 상당부분을 '초보자가 봐도 놀랄만한 글씨'를 구하는데 매달렸습니다.


심지어 표지로까지 썼다. [출처 : 거침없이 한 획]


작품에서는 실제 서도가, 독자 공모작품이 등장합니다. 저자는그게 얼마나 노력해야 쓸 수 있는 작품인지는 모를겁니다. 하지만 세 가지 장치로 독자에게 붓글씨를 보는 감식안을 높여주죠.


첫째는  작품에 나오는 미우라라는 '칭찬을 잘하는 인격자'의 말입니다. 미우라 세이후는 지역에서 날리는 서도가이자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는 인격자죠. 심지어 자신이 모르는 것을 16세 여자아이에게 고개숙여 사과할 정도로 겸양을 갖춘 사람입니다. 


독자들은 무의식적으로 미우라의 뛰어남에 감화되고 
그리고 그의 말을 통해 감식안을 배웁니다.


둘째는 교차 제공입니다. 작품에서는 뛰어난 붓글씨도 나오지만 누가 봐도 못 쓴 글씨, 잘 쓴 것 같은데 망한 글씨들이 교대로 튀어나옵니다. 그리고 그 글씨들이 매번 평가받죠. 이 과정에서 독자들은 

어떤 글이 어떤 평가를 받는지 인식하고 감정이입하게 됩니다.


이렇게 작품을 따라온 독자들은 설령 붓글씨를 한번도 써본적이 없어도 13권에서 유카리가 쓴 글씨를 보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누가 봐도 사랑이 넘치는 그 글씨를 보고 어찌 눈물짓지 않을 수 있을까요?


셋째는 캐릭터입니다. 카와이 카츠토시의 캐릭터는 좋기로 소문났는데 이 작품은 유별날 정도로 각 캐릭터의 개성이 강합니다. 그리고 그 캐릭터들은 각자 쓰는 글씨의 풍이 다르죠. 

한자 획수도 틀리는 서알못 유키, 나중에는 뛰어난 운동신경을 활용 대활약하게 된다. [출처 : 거침없이 한 획]

이런 캐릭터의 성격과 출품된 작품을 번갈아보면서 서알못들은 자연스럽게 서풍(글의 특성)을 익히게 됩니다. 즉 붓글씨의 재미를 자연스럽게 익히는 것이죠. 


마치며

자신이 생각한 이야기를 남들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지식량의 차이, 표현하는 방법, 사고방식의 차이가 이를 가로막습니다. 그래서 진짜 뛰어난 스토리텔러는 항상 사람을 유도하는 장치를 깔아놓죠. 


카와이 카츠토시는 천재적인 스토리 텔러입니다. 그는 사전지식이 없는 독자를 끌어들이 위한 장치를 설계하고 배치하는데 뛰어나요. 


왜 이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냐 하면 


이 사람이 대한민국의 글쟁이들에게 좋은 힌트를 주기 때문입니다.


지식량이 다르고, 사고방식이 다르고, 흥미도 다른 사람을 우리는 많이 끌어들여야 합니다. 그게 글을 쓰는 사람의 숙명이고 이를 쉽게 전달하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공부를 하죠. 그리고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적어도 글에 대한 사랑과 집착이 있는 분들일 것입니다.


유도, 경정, 붓글씨라는 마니악한 장르를 사전지식 없는 독자에게 전달하는 인기 만화가는 우리에게 스토리 텔링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좋은 선생님일 것입니다.



사족, 화력도 뛰어나거 인체비례, 관절의 움직임, 동세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다 [출처 : 거침없이 한 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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