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은 어쩜 이럴까
이제 다섯 살이 된 딸은 한시도 가만히 있는 법이 없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씩씩한 아이는 아침에 눈떠서 자기 전까지 텐션이 100%로 유지되는, 그야말로 에너자이저다.
이 흥과 힘이 넘치는 아이 덕분에 별일 없으면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나가지 않는 지독한 집순이인 나도 매일같이 나간다. 평일에는 주로 놀이터를 가고, 주말엔 동네 산책을 하거나 마트를 가거나 가끔은 카페에서 같이 차도 한 잔하며 몇 시간씩 놀다 온다. 얼마 전까진 킥보드에 푹 빠져있더니, 요즘엔 신랑이 새로 사준 핑크색 디즈니 프린세스 자전거에 열심이다.
"얘 발바닥이 좀 이상하다."
주말 저녁을 함께 하러 들르신 엄마가 소파에 앉아 장난을 치던 아이의 발을 잡고 나를 부르셨다. 가만 보니 딸의 오른쪽 발바닥에 점처럼 작은 검은색 티끌이 보이고 주변이 부어올라 있었다.
가시가 들어간 것 같은데 하필이면 세로로 들어간 탓에 뭘 해도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든 빼보려 하니 - 엄살이 반쯤 섞여 - 아프다고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를 어쩌지 못하고, 소독 후에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이는 걸로 합의를 보았다.
아직 자그맣고 여린 발이 얼마나 아플까 싶어 마음이 아리고, 저러다 곪기라도 하면 어쩌나 내내 속을 끓였다.
밥을 먹으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에 자꾸 아이 발을 보게 되었다. 그러다 옆에 앉으신 엄마의 발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의 엄지발톱에 커다란 붕대가 감겨 있었다. 한참 전에 발을 심하게 부딪힌 적이 있는데 그때 멍이 크게 들더니 이제 발톱이 들뜨면서 빠지려 하는 것이었다. 병원에 가보시라 해도 괜찮다던 엄마는 붕대를 감아 임시방편을 해두고 있었다.
참 어이가 없었다.
엄마의 발톱 상태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몇 번이고 병원을 권하기도 했고 어쩌냐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 외에 나는 무얼 했던가.
평생 엄마 팔 부러진 것보다 내 손가락의 작은 거스러미를 더 아파하며 살아왔다. 자식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 엄마가 되어 내 자식이 생기니, 이번엔 내 새끼 발바닥에 박힌 티끌보다 작은 가시가 내 엄마의 큰 상처보다 더 커 보인다. 이것도 자식이니 어쩔 수 없는 걸까.
그렇다면 자식은 어쩜 이럴까.
내 딸이 쑥쑥 자라 나를 밟고 높이 올라야 한다면 그건 기꺼이 밟힐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이제 내가 오르기 위해 엄마를 밟을 자신이 없다.
내 자식이 더 커서 나를 뒤로 하고 훨훨 날아간다면 그건 기쁘게 보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이제 내가 날기 위해 엄마를 뒤로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제 내가 선 땅은 그런 곳이다.
내 땅의 모든 풍요로움을 끌어 아이에게 주고 싶고, 모든 비옥함을 모아 엄마에게 주고 싶다. 내가 가진 모든 좋은 것을 아빠와 신랑과 친구에게 주고 싶다. 그러다 내가 다 메말라져도 당신들만 있으면 좋을, 요즘은 그런 날들이다. 내게 그런 소중한 존재가 있어 마냥 좋은 그런 날들이다.
언젠가 세상에 오직 나만 보이고 나만 중하던 시간을 통과해 이곳에 왔다. 그건 그대로 찬란했고 지금은 지금대로 아름답다.
아이 발의 가시는 다행히 아이가 잠든 틈에 신랑이 깔끔히 빼주었다.
오늘은 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꼭 가야겠다.
- 헤아리.다;heari.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