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쫒는 낭만주의자

세상의 끝에서, 세상이 시작될지도.

by 해다니

내가 글을 쓰고 싶다고 처음 생각한 건, 꽤 오래전 일이었다.

그 계기는 거창한 현실의 사건이 아니라,

매주 반복해서 꾸던 하나의 꿈에서 시작되었다.


그 꿈은 늘 같은 장면에서 시작됐다.

나는 아주 커다란 종이비행기 위에 앉아 있었고,

그 비행기는 논 한가운데 홀로 서있는 나무에 걸려 불시착한다.


사람 하나 없는 조용한 시골마을.

조금 높은 곳에 오르면 사방이 바다였지만, 그 바다는 이상하게도 색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푸르지도, 반짝이지도 않는 바다.

바다에 가까이 갈수록 거센 파도가 쳤다.


처음엔 그 마을에 도착해 바다를 바라보다 꿈이 끝났고,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점점 마을을 탐험하게 되었다.


산 중턱의 중세시대 테마파크처럼 꾸며진 마을,

새로운 길, 새로운 구조물들을 발견했다.


반복된 꿈을 꾸고 나는 눈을 뜨고도 그 마을의 구조를 지도를 그릴 수 있게 되었다.

마치 내 무의식 안에 작은 세계가 형성된 것처럼.


이상한 건, 그 꿈은 내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이미지들로 가득했다.

비슷한 영화도, 만화도, 책도 없었다.

그래서 더 강렬하게 다가왔고,

그 세계를 언젠가 글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조금씩 자라났다.


시간이 흐를수록 꿈은 자주 잊혔다가도 불쑥 찾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홀로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잠에 들자 다시 그 세계에 도착했다.


늘 왼쪽으로 향하던 나의 발이, 처음으로 오른쪽 방향으로 향했다.

몇 년을 봐온 곳이지만 처음 가보는 미지의 세계였다.


그곳에는 거대한 항구 도시가 있었고,

커다란 배 한 척이 정박해 있었다.

나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그 배에 올랐고, 곧 바다로 떠났다.


멀어지는 항구의 풍경에 감탄을 내뱉던 순간,

처음으로 꿈속 존재가 내게 말을 걸었다.


"여긴 포르투갈이야."


그 말 한마디에 뒤를 돌아봤을 땐 아무도 없었고 나는 꿈에서 깨어났다.

이름을 알게 된 그 장소는, 그 이후로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현실에서조차 '포르투갈'이라는 이름에 자꾸 마음이 끌리기 시작했다.


포르투갈, 유럽 대륙의 끝이자.

대항해 시대 사람들에게 '세상의 끝'이라 불리던 장소.

지금도 카보다호카나 사그레스 곶은

'여기서 땅은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는 문구로 유명하다.


아직까지 나는 포르투갈에 가보지 못했다.

하지만 언젠가 그 꿈의 풍경을 따라 그 끝자락에 서보고 싶다.


그곳이 정말 내 꿈의 장소인지,

아니면 내 무의식이 만들어낸 가상의 세계인지 확인하지 못하더라도


그곳을 5년이란 시간 동안 봐온 나에게

이 여정은 세상의 끝이 아니라,

어쩌면 나를 향한 여정의 시작이 될지도 모르니까.


운명을 믿는 나에게 이 보다 낭만적인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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