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평범한 숫자와 현관의 노란 불빛

by 헤아림꾼
0*iNZ9YQD1weKI3FjH Photo by Christian Sitowski on Unsplash

여느 회사나 그렇듯이 내가 다니는 회사도 연말이면 인사고과로 바빠진다.


회의실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어떤 이는 밝은 표정으로,

어떤 이는 굳은 표정으로 문을 나선다.


평범한 능력을 가진 나는, 올해도 어김없이 호출된 회의실에서 상사로부터 늘 듣던 조언과 함께 딱 그럭저럭한 숫자를 받았다.


"고생했고, 내년에도 잘 부탁한다."


짧은 격려와 함께 나의 새로운 숫자가 정해졌다.

상사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가지만 나는 이미 머릿속으로 그 숫자를 쪼개고 계산하기 바쁘다.


'연금에는 이 정도 들어가겠고... 주식에는 이 정도 넣으면 되겠고... 가족들하고 여행도 좀 다녀오고... 아, 아들이 쓸 새 침대도 사야 되는구나...'


끝없는 계산을 하다 보니 어느덧 자리로 돌아와, 휴대폰으로 숫자를 비교하는 나를 발견한다.

숫자가 오가는 대화창에서 멋쩍은 우월감과 씁쓸한 부러움이 새어 나온다.


사실 주위와의 이런 사소한 비교는 미디어 속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에 비하면 그저 도토리 키 재기에 불과하다. 그들이 받는 천문학적인 숫자는 나 같은 일반인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재능과 노력, 그리고 운이 겹쳐진 결과물이기에 시기심조차 들지 않는다. 좌절마저도 사치인 셈이다.


고만고만한 주위와의 비교에 목숨을 걸게 되는 것은 그래서인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숫자와 함께할 내년...


이런저런 생각과 함께 차갑고 어두운 겨울 저녁을 뚫으며 집으로 향한다.

그런데 골목을 돌아선 순간, 저 멀리 현관에 노란 불빛이 켜져 있는 게 보인다.

그리고 불빛 아래에 두 사람이 있다.


그들은 나를 보자마자 밝은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고,

나는 방금 학교를 마친 아이처럼 그들을 향해 달려간다.


"추운데 나와서 뭐해?"


나의 물음에 아내가 덤덤하게 대답한다.


"그냥, 아들이랑 잠깐 바람 좀 쐬려고 나왔어."


아내 품에 안겨 있던 아들을 건네받는다.

팔 아래로 전해지는 이 묵직함...


"춥다, 어서 들어가자"


다 같이 집으로 걸어 들어가며 생각한다.


어쩌면 내가 가진 숫자는,

결코 작지 않은 것 같다고.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