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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형균 May 06. 2023

인생은 문제 해결의 연속(2편)

문제 푸는 걸 즐기는 나

임상을 떠나 있은 이후 한 번씩, 응급실에서의 급박한 상황이 그리울 때가 있다. 특히 TV 드라마에서 그런 상황을 볼 때면. 내가 레지던트를 할 때 내가 당직인 날엔 다른 동기들이 당직일 때보다 emergency (응급)가 유독 많았다. 응급실에서 콜이 올 때면 자다 깨서 왜 하필이면 내가 당직일 때 오는지 불만스럽게 생각했다. 대학병원이 여기 한 군데만 있는 게 아닌데 왜 하필이면 여기로 왔는지 원망스러웠다. 심지어 응급수술을 양방으로 두 곳에서 동시에 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막상 환자를 보고 나서 상황이 급박하게 전개되면 달라진다. 심지어 그런 상황을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응급 환자들은 응급 수술 후 대부분 잘 회복되었다. 그 이유는 내 아래위 연차 레지던트들이 탁월하게 우수해서이다. 솔직히 나의 능력은 그리 탁월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 진짜 능력은 인복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응급상황은 행정을 할 때도 나타났다. 일례를 들면, 보건소장을 할 때 관내 임플란트를 주로 하는 치과병원의 개설자인 치과의사들이 연달아 사망하면서 선금을 못 받게 될까 두려워한 환자들이 해결을 요구하면서 구청장실로 몰려왔다. 전체 금액이 상당히 컸었다. 당시 구청장은 출장 중이었고 보건소장인 내가 구청장실로 가서 조속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원론적인 말로 달랬다. 방송국 몇 군데에서 기자들과 카메라맨들이 취재를 나왔고 인터뷰를 몇 군데 방송국과 했다. 당시 인터뷰가 지역방송뿐만 아니라 중앙방송 9시 뉴스에도 나왔다. 그런데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인터뷰를 마친 후 담당 과장, 팀장, 주무관들과 소장실에서 회의를 하면서 누군가에게서 그런 말을 들었다. "소장님은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여유 있을 수가 있죠? 오히려 상황을 즐기시는 것 같던데요. 저 같으면 정신이 없을 것 같은데요." 내가 그런 상황을 즐긴 건 사실이었다. 내 성격이기도 하고, 사실 난 믿는 구석이 있었다. 그 사건이 터지기 얼마 전 내 고등학교 동기인 친구가 하는 치과의원에 스케일링을 하러 갔었다. 스케일링이 끝난 후 친구가 할 말이 있다면서 원장실에서 보자고 했다. 그때 그 치과병원 얘기를 들었다. 내 관내 치과병원이라 얘기를 한다고. 자신의 치대 동기가 하던 곳인데 개설자는 아니지만 실질적 운영자였던 치과의사가 자연사했고, 개설자였던 동기가 이어받고 뒤이어 유명을 달리했다고. 두 번째 장례식에 다녀왔다고. 선금을 준 환자들에게서 집단민원이 있을 거라고. 난 상황 파악을 위해 몇 가지 질문을 했고 해결방법을 물었다. 이후 그 친구와 난 plan B뿐만 아니라 plan C까지 수립을 했다. 그래서 난 그 병원에 선금을 준 환자들이 몰려와서 흥분해서 대책수립을 요구할 때도 차분할 수 있었다. 그 사건은 그 후 잘 해결되었다. 그 일에도 내 능력보다는 친구의 능력이 주효했다. 내 능력은 그런 인재를 친구로 둔 것이다. 그 외에도 방송국 인터뷰를 하게 된 다른 일들도 많았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내게는 골치 아프기보다 재미있는 기억들이다.
병원에서나 조직에서 그런 급박한 문제 해결 상황을 마주한 지 몇 년 되고 나니 그런 상황이 그립다. 그런 상황을 즐기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며 나의 정체성을 확인하곤 했었다. 나는 문제 푸는 걸 좋아하고 기출문제가 아닌 참신한 처음 보는 문제면 더 좋다. 어렵고 해결이 시급한 문제를 푸는 걸 좋아하고 즐긴다는 걸 안다. 그럴 때면 언제나 문제 해결을 도와줄 사람이 내 근처에 있다는 걸 안다. 그것이 내 능력이라는 사실도. 조만간 문제 풀 일이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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