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셨는데, 당신의 형상대로 흙으로 만드셨다.
진짜 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셨다는 것을 누가 믿겠는가?
성경에 써있으니, 믿어라? 성경은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여 쓰여진 것이니, 한치의 거짓도 없다. 모두 진실이다. 그리고, 묻지 않고 믿어야 한다. 성경에 있는 말은 모두 사실(?)이다??
인간이 지식을 총 동원해서 합리적으로 생각한다 해도 믿기지 않는다.
특히, 기독교 신앙이 없는 사람들은 말도 안된다고 할 것이다.
흙으로 빚었다고 하는 것은 은유적인 이야기고 신화적 설화적 서술기법이고 전해내려오는 이야기일 수 있다.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를 설화로 인정한다.
'창세기 설화'의 저자 헤르만 궁켈은 “설화는 ‘거짓말’이 아니라, 특별한 시의 일종이다. 설화는 민간 구술을 통해 옛적부터 전해 내려 오던 시적인 이야기로서, 과거의 인물이나 사건을 다루는 것(29쪽)”이라고 주장한다. 시의 일종? 은유적이다!
역사적 사실은 보다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검증되지만, 설화는 상상력이 발휘되고 상징성이 강한 이야기다. 객관적 과학적 방법으로 검증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흙으로 창조하셨다는 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동양심리학으로 설명해볼 수 있다.
설화는 시적인 표현이라니, 은유라면, 더더욱 설명이 가능하다.
동양에서는 세상의 이치를 밝히기 위해 보이지 않는 기의 흐름의 세계를 음양오행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음양"인 양(陽)과 음(陰)의 상호작용과 "오행"인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의 상호관계를 중요시했다. 음양오행론은 고대 중국의 철학자들이 우주의 원리와 변화, 평형을 이해하고 설명하는데 사용한 개념이다.
오행 중 금, 목을 만물이라고 한다.
수 화는 기라고 하고,
수화라고 하는 것은 토가 있어야만 만물을 만들어낸다.
토는 수화를 품고, 있다가 만물을 만들어낸다.
오행 중 토는 큰 우주이고, 지구이고, 이 땅이고, 내가 살아가는 환경이고, 집이고, 자기 몸이고 만물의 생성을 가능하게 하는 기운다.
찰흙으로 찻잔을 빚어 구워서 하나의 완성품이 되는 것을 생각해보자.
분명히 흙으로 빚어서 모양을 만들고 무늬도 넣고 구워서 완성품으로 탄생한다. 완성품은 다른 사람에게 줄 수도 있고 내가 사용할 수도 있다.
그건, 찻잔이지?? 물건이나 그렇지! 사물은 설명이 되지만, 인간을 흙으로 빚었다고 설명하는게 가당키나한가? 맞는 말이다.
인간이 찻잔과 같은 사물과 다른 것은 하나님께서 입김을 불어넣으셨다고 했다. 생명을 불어넣어주신 것이다.
장난감 태엽을 감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듯이, 건전지를 충전하지 않으면 작동되지 않듯이, 물건을 사용하지 않으면 가치가 없듯이 인간에게도 시동을 걸어줘야 한다. 하지만, 인간은 시동을 걸어주면, 인간이 알아서 시작하고 멈추기를 한다. 학습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인간이 행동할 수 있게 생명을 불어넣어주신 것이다.
자. 다시 음양오행론으로 돌아와보자.
토는 큰 우주이고, 지구이고, 이 땅이고, 환경이다.
경계가 없으면 마냥 넓은 허공이 되고, 경계를 지으면 공간이 된다. 토는 작게는 흙이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터전이고, 환경이고 더 크게는 우주 전체다.
토는 구분하는 역할을 한다. 이것이 불이고, 이것이 물이란 것을 알게 하는 것이 토다. 토가 없다면, 물이라고 불이라고도 할 수 없다.
허공인지 공간인지, 수화를 구분하게 하는 것도 토이고, 수를 막고 화를 막는 것도 토이고, 수화가 목금을 만들어낼 때도 토가 필요하다. 토가 없으면 만물이 생성되지 않는다. 모든 것에는 토가 들어간다.
그것을 아는 옛사람들, 그 지혜로운 사람들이 흙으로 사람을 지었다고 한 것이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니까, 세상을 인식할 수 있고, 구별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토는 수화에 관여하게 된다. 토가 없으면 공간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냥 허공이 된다. 바닷속 수많은 물고기 중에 이름을 붙여서 구별하는 것이 토가 하는 일이다.
우리 집에 거실, 각방의 공간, 책장 칸칸이 나누어진 공간, 서랍, 이런 것들이 모두 토가 관여한 것이다.
인간을 흙으로 지었다는 말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세상을 청지기로 주시면서 다스려라 한 것이다. 그리고, 없어서는 안될 것이며, 토(흙)로 만들어진 사람이 세상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 없다.
태양이 빛을 비추게 하고, 어둠과 빛을 나눌 수 있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그 신의 능력의 일부를 인간에게 주신 것이다.
'하나이면서 모두 다' 인 것이 하나님이다. 목화토금수 모두 다 합쳐진 형태이면서 각각인 것이 하나님이시고, 그것을 어떻게도 잘 다루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고 이 우주 전체를 움직이는 질서이자 기운이시다. 이것을 기독교적으로 말하면, 우리에게 오셔서 일하시는 성령님이시고, 보이지 않는 영혼의 불꽃이며, 알파와 오메가이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신이 될 수 있는 것처럼, 혹은 자기가 신이고, 재림 예수라고 하는데, 인간은 절대 신이 될 수 없다. 단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를 닮은 성품을 나누어 주신 것이라,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임해 있을 뿐이고, 그것을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능력을 주셨어도,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다. 우리 각자에게 주신대로 함께 일하고, 교회 공동체에서 성도들은 예수님의 지체로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부분을 감당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을 잘 쓰는 것이다.
오행의 목화토금수는 음과 양으로 되어 있는데, 목화가 양이고 금수가 음이다. 토는 음도 양도 아니다. 음과 양을 구분하는 것이다.
그리고, 목화토금수는 각각 음과 양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 때, 토도 양음을 나눈다. 양목음목, 양화음화, 양토음토, 양금음금, 양수음수가 된다. 이것을 갑을, 병정, 무기, 경신, 임계로 표시한다. 양토는 바깥 세상을, 음토는 자기를 인식하는 기능을 맡는다.
명리학에서는 '목'을 기본적으로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 목이 살아가려면, 뿌리 내릴 토가 있어야 한다. 살아갈 환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살아갈 기본 환경이 태양이 있어서 좀 더 윤택하게 살아가느냐? 물이 있어서 늘 준비하고 마르지 않게 살아가느냐? 너무 방만해서 다른 사람과 관계 하지 못한다면, 금으로 다듬어서 관계를 좋게 하고 현실적으로 살게 한다. 이 때, 무엇 무엇 하나에 다 토가 관여하게 된다.
그러니, 흙으로 사람을 만들었다는 비유가 얼마나 대단하단 말인가?
진짜 흙으로 사람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지 않나? 흙이 없으면 사람이 살 수가 없다.
태양이 있어서 광합성을 해야만 생명이 살아가지만, 그 태양의 광합성을 잘 받게 해주는 적절함이 토라는 것이다.
유튜브에서 어떤 스님이 인간을 흙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종교도 아니라고 기독교를 비방하는 것을 들었다. 공사상이 있고 연기법이 있다나? 연기법이 공사상을 뛰어넘을 수 없다나?
글쎄? 그럴까??
하나는 알고 하나는 모르시는 듯한 그 분의 깨달음이신 것 같아, 반문하고 싶었다.
음양오행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이 흙으로 만드신 인간을 설명할 수도 있는데 말이지.
흙으로 만들어졌다는 '인간', 하나님은 구분지어 만들었다.
구분을 지을려고 하는 것이 '토'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께서 주신 만물에 이름을 붙였다. 세상의 모든 것은 구분되어 있고, 구별되어 있다. 이것이 토가 하는 일이다. 요즘 같은 다양성의 시대에서는 '토'의 할 일이 너무 많아졌다. 때로는 구분을 허물어뜨리고 싶어질 정도다. 그렇다고 완전히 경계를 없앨 수는 없겠지만.
천간에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와 지지에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가 갑자, 을축, 병인----으로 짝지어진 형태를 60갑자라고 한다.
모든 세상을 다루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고, 알파와 오메가이시니 처음부터 끝까지 60갑자를 끊임없이 운행하시는 전체이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완전하시다. 우리가 감히 견주어 상상할 수 도 없다. 그러한 하나님이 가진 속성 중 우리에게 일부를 주셨는데, 그것은 60갑자 중 년월일시 사주라는 4개의 기둥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을 보고 알 수 있다. 인간의 사주는 최소 2글자에서 최대 8글자로 존재한다. 거기서 인간의 속성도 정해진다. 인간 1인이 할 수 있는 것은 60갑자 중에 4개 간지 기둥 뿐이다. 사주가 10년 마다 바뀌는 운을 걸어가게 되는데, 인간이 100세를 산다해도 각 개인이 덤으로 경험할 수 있는 간지는 최대 14개다.
정말 놀랍지 않나??
하나님께서 왜 우리가 다른 이들과 함께 공동의 선을 추구해 나가길 원하실까?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을 발휘하길 원하신다.
각자 태어난 강점에 다른 사람의 강점을 더해서, 퍼포먼스를 내면서, 그렇게 살아가길 원하신다. 자기 능력으로만 사는 사람은 없다. 때로는 다른 사람의 능력으로,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힘이 되어주면서 살아간다.
인간은 아무리 힘을 합쳐도 하나님 앞에서는 연약하고 부족할 수 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주신 걸 잘 발휘하려면, 다른 사람과 협력해야만 나에게 있는 오행을 잘 운영할 수 있다.
토(흙)로 만들어 목화금수라는 하나님의 속성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모두 똑같이 주지 않으셨다.
함께 해서 균형있게 살아가길 원하신다.
양자역학을 근거로 부를 끌어당기는 법칙은 우주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끌어당길 수 있다고 한다. 무한한 우주는 목화토금수 전체로 되어 있다.
그 음양오행은 자기장 같은 것이다. 내게 부족한 것을 끌어올 수도 있고, 내게 있는 강력한 기운에 같은 것을 끌어와서 더 강해질 수도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날 때, 동류의 사람이 만나기도 하고, 전혀 다른 사람이 만나기도 한다. 음과 양의 끌어당김 때문이다. 그래서, 목화가 많은 사람이 금수를 만나서 살기도 하고, 토가 없는 사람 옆에 토가 많은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때때로 지금까지 만나던 사람들이 정리되고, 내 인생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포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게 구분짓고 다시 시작하고, 잇고 연결하는 것을 토가 한다.
사주에 토가 너무 많아도 토의 기능을 잘 하지 못하고, 토가 없어도 토의 기능을 할 수가 없다.
토가 없으면, 음양을 품을 수가 없을 뿐 아니라, 음양을 내놓을 수도 없다. 그 말은 인간관계가 수월하지 않다는 얘기다. 감정조절이나 맺고 끊는 것이 잘 안될 수도 있다. 한난조습이 생겨나지 않으니, 그 안에서 만물이 생장성멸하지 못하고, 그 시기가 적절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사주를 통해, 내게 주신 것을 알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도 알 수 있다. 운이란 것은 신의 섭리 안에서 움직여지기 때문에, 그 질서에 억측을 부린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운을 잘 타는 것도 인간의 도리다. 그것이 토다!
흙으로 만들어진 인간에게 생기를 불어넣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 음양오행을 잘 살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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