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천국간다 생각하니 고통은 두렵지 않다

이 땅에서도 천국을 만나길

by 코치 루아

온몸의 근육이 수축하며 몸살이 퍼져나가고, 장기가 뒤틀리는 듯한 고통이 몰려왔다. 복부는 마치 개구리 엄마 배가 불러 터져 죽었다는 동화 장면처럼 팽창했고, ‘아, 이렇게 사람은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나는 그 고통을 그냥 견디기로 했다.

다음 날엔 손목이 꺾이며 올라가지 않았고, 그 다음 날엔 왼쪽 무릎이 풀려 걸으려면 양손으로 허벅지를 들어 올려야 했다. 그래도 병원에는 가지 않았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으니까. 오히려 천국에 빨리 가고 싶었다. 남는 건 자식들에게 미안한 마음뿐, 이 땅에는 더 이상 미련없다.



딸이 물었다.

“엄마, 그렇게 아픈데 일을 해? 어제는 말도 못 하더니…”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내일 죽더라도, 오늘은 사과나무를 심어야지. 엄마가 늘 그렇게 말했잖니.”


다음 날은 나가면 책상에 앉아 있는 나에게 말한다.

“엄마는 진짜 의자에 앉으면 안 일어나더라. 어떻게 그래?”

“엄마는 몰입을 아니까. 그래서 재미있으니까.”


--

얼마 전, 중증장애인 딸을 30년 넘게 돌보다 결국 살인을 저지른 엄마가 재판을 받았다. 동반자살을 시도한 엄마는 내가 같이 죽지 못해 미안하다 했는데, 정말 30년 동안 중증 장애인 딸을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돌봤을까

사람을 기능으로 보면 쓸모없는 인간이지만, 사람을 생명으로 보니 그렇게 돌본 거죠. 그런데 지칠만도 하죠~ 저같아도 그랬을지 몰라요~ 다행히 가족과 지인들의 탄원으로 15년 형니었는데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삶은 마치 우리가 선택한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불행을 스스로 불러들인 것 같지만, 실은 주어진 삶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태어날 때부터 바꿀 수 없는 조건들―가문, 성별, 건강, 장애―이 이미 삶의 큰 틀을 정해버린다. 정신적 장애조차도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며 어릴 적 삶은 내가 정할 수 없다.


이 사회에는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이 정말 많다. 그런데 조금 더 가진 이들이 자기와 자기 가족만을 위해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세상에는 나누어야 할 자리, 손 내밀어야 할 순간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내가 만나는 내담자들 역시 그런 사람들이다. 사실 나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현편이 됐다., 그러난 많은 사람들이 내게 도움을 청한다.때론 그들보다 내가 더 절실한데도 나는 그들의 요청에 응한다. 그래서 내가 아프더라도, 집이 멀더라도, 상담료보다 실비가 더 많이 들더라도, 상담 기간이 남아 있는 한 끝까지 책임질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구나’ 혹은 '이렇게 해주시는 분이 있구나'하는 작은 희망이 되길 바란다.


사회에는 진정한 ‘의미 있는 타자’가 필요한 순간들이 많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러나 그 선택권은 내게 없었다. 오직 하나님만 계실 뿐이다. 그래서 나는 천국을 사모한다. 아프더라도 견뎌진다. 그리고 매 순간이 소중하다.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

“어떻게 그렇게 살아갈 수 있나요?”

나는 대답한다.

“그냥… 나니까. 그렇게 살아가게 하시니까.”


사람마다 살아가는 이유가 있다. 잘 사는 사람들이 도와야 세상은 건강하게 굴러간다. 남을 속이고, 빼앗고, 그럴듯한 가면을 쓰고 크리스천인 척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무너진다. 나부터 더 진실하게, 더 크리스천답게 살아가고자 노력한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영안을 열어주셨다.

“주님의 뜻대로 하소서.”


---


그리고 놀랍게도 오늘 아침, 팔도 손목도 제 기능을 되찾았다. 무릎도 굽혀지고, 당기던 근육도 풀렸다. 복통도 한결 가셨다. 다만 위나 장은 좀 오래갈 거 같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직 제가 해야 할 일이 있나 보군요.”


나는 이미 천국을 소망했기에 죽음은 두렵지 않다. 다만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들을 향해 우월한 것이 아니라 더 겸손하게 감사하며 살아가기를 기도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공감은 중요하지만, 진실을 파묻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