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들여다보는 중
안녕하세요.^^
웃는 얼굴이 아름다운
힐링아지매입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힐링아지매에 대한 생각을 주관식으로 적어 주세요.
1.힐링아지매가 제일 잘하는 것?
2.힐링아지매가 제일 못하는 것?
3,힐링아지매가 제일 좋아하는 것?
4.힐링아지매가 제일 싫어하는 것?
52살, 늦깎이 대학생이 되었다.
상담심리학, 나 자신에게 찾아온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심리를 공부하는 것이 이렇게 재미있을 줄이야 무엇보다 '나'라는 사람을 알아가는 것이 좋았다.
수업을 들으면서 '아하~!' 무릎을 치기도 하고 내가 겪었던 다양한 경험들의 바탕이 여러 심리학의 이론이라는 것을 아는 것도 무엇보다 좋았다.
그중에 가장 좋았던 것은 바로 심리 상담을 받은 것이다. 지인의 소개로 현직에 계신 교수님에게 상담을 받으면서 이론을 이론으로만 알기보다는 실제 상담에 사용되는 기법과 적용하는 이론들을 배울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담심리학과 1학년의 눈에 상담기법이 제대로 보일리 없고 적용 이론을 알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었지만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아는 데는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상담받는 동안 '나'라는 사람은 내면과 외면의 갭이 너무 커서 항상 불안했고 용기를 내지 못했고 자존감이 바닥을 치면서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많이 놀랐다.
그렇다면 과연 다른 사람들은 이런 나를 어떤 사람으로 인지하는가 하는 궁금증이 생겨서 알아보기로 했다.
교수님이 주신 과제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아주 자기중심적인 설문지를 만들어 주변 지인들에게 보냈다.
한 사람씩 붙들고 물어보는 것보다 설문지를 통하면 좀 더 참여율(?)도 높고 기록도 남길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설문지를 받은 사람들은 다들 별나다 하면서도 재밌어하면서 정성껏 답을 보내왔다)
두근두근,
답을 열어 볼 때마다 가슴이 쿵쾅 거렸다.
진짜 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카멜레온은 아니지만 환경에 따라, 주어진 여건에 따라, 상대에 따라 불리는 이름도 역할도 달라진다.
부모님에겐 딸이고
아이들에겐 엄마이고
동생들에겐 누나이고
직장에선 OOO 씨로 불리고
누군가에겐 친절한 사람이고
누군가에겐 이기적인 사람일 수 있고
누군가에겐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차가워서 가까이 가기가...
30대 때 나의 첫인상은 열에 아홉은 차가워 보여서 선뜻 다가가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결혼하고 살림만 하며 살다가 졸지간에 준비 없이 사회라는 강호로 나섰고 마치 예능 프로그램인 런닝맨에서처럼 '가장'이라는 이름표를 등 뒤에 붙이고 누가 나를 아웃시킬지 몰라 한 손은 등 뒤 이름표를 지키고 한 손은 책임감이라는 미션을 위해 모든 것에 긴장 상태에 있었던 시기다.
믿음이 가요
사십 대 초반에는 외국계열 보험사에서 설계사로 부지점장으로 8년간 일을 했다. 당시 신입 설계사로 생명보험의 가치를 공부하면서 참 많이 울었다.
가장의 부재로 인한 고통과 어려움에 대한 사례들은 멀리 볼 것 없이 바로 나에게 닥친 현실이었으니 더욱 와닿았고 진심을 담기에 충분했다.
나의 진심은 고객에게 그리고 주변에도 그대로 전달이 되고 고객 만족은 물론 소개도 받을 만큼 믿을 수 있는 설계사가 되었고 언행일치를 위한 나의 말과 행동은 믿음의 아이콘이 되었다.
믿음을 주는 것과 융통성이 없는 것은 다를 텐데 점점 유연함이 없어지고 진실함이 솔직함으로 변하고 있었다.
정직하면서 솔직하니 나의 말과 표정에서는 온기보다는 차가움이 더 많이 있으니 사람들과의 관계도 역시 그랬다.
거의 서로 할 일만 하는 건조한 관계가 다였다, 인간미를 찾아보기 힘들게 기계 같은 그런 사람이 되어 갔다.
뭔지 모르게 부드러워 보여요
무미건조한 삶이 계속되던 50대... 일 잘하는 사람은 있었지만 정이 가는 사람은 아닌 그때, 과로로 인해 빠지는 살인 줄 알았는데 건강 검진에서 갑상선 암 진단을 받았다.
8시 출근, 8시 퇴근하던 교육실장(당시는 보험 대리점의 교육실장으로 있었다)은 이제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생긴 암을 치료를 위해 일을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
수술과 동위원소 치료(갑상선암 항암치료)를 마치고 요양병원에 있을 때부터 세 차례나 사장으로부터 다시 직장에 나오라는 권유를 받았다.
예전과 같은 조건이라면 난 다시 과로를 해야 하고 스트레스를 받을 게 뻔하니 아들들도 말리기도 했지만 나 역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고 1년 정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회복에만 집중했다.
'이제 뭐 하며 살지?'
나의 세 번째 직업이 되었다.(직업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에 다시 글을 쓸 예정이다)
"뭔가 많이 바뀐 것 같아요"
"분위기가 달라진 것 같아요"
"부드러워졌는데요, 뭐지?"
많이 웃는 덕분이기도 하지만 삶을 대하는 나의 마음가짐이 변하면서 표정도 태도도 다 바뀌었다.
조금 더 유연해지고, 더 많이 웃고, 스트레스로부터 점점 자유로워지면서 마음이 편해지니 나는 물론 주변, 모든 것이 변했다.
편안해 보여요, 그리고 진짜 웃는 얼굴이 너무 예뻐요.
힐링아지매의 지금은 아주 편안한 할머니고 여유롭고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는 일이 전혀 없고 웃는 얼굴이 예쁘다는 말에 대한 보답으로 생각하고 더 많이 웃으며 지내고 있다.
설문지를 받은 사람들의 대답은 완전 극과 극이었다.
여고 시절부터 나를 알던 사람들은 명랑하고 밝고 가족에게 헌신하는 엄마라고 바라보고 있고 남편이 가고 난 후, 인연이 된 사람들은 자신의 일을 잘하고 똑 부러지며 차가우며 밥은 아예 못할 것 같은 사람으로 비춰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남편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내 모습은 완전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름 '내 삶을 치열하게 잘 살고 있구나' 하는 안도감과 '많이 변하긴 변했구나' 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심란했었다.
내 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나
그렇다.
어느 것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난 원래 그런 사람이야'라는 맞지 않다.
원래 그래서 변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변하지 않으면 살아가기가 힘들다.
옳고 그름도 없다.
그저 상황에 따라 맞추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지금 역시 또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는 나를 느낀다.
이 변화는 긍정적인 변화라고 본다.
그리고 앞으로 남은 내 삶에 기대가 된다면 너무 과한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