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못 믿는다

스스로 만들어가는 작은 순간 하루

by 힐링아지매




모르는 걸 어떡합니까?




결국은 큰 소리가 오고 간다.

지나가는 길에 자기를 픽업해서 가자고 하면서 어디 어디로 오면 된다는 얘기를 하는데 그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아예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처음 픽업 이야기가 나올 때부터 열 번도 넘게 내가 했던 말을 그 역시도 제대로 듣고 있지 않았는지 계속 도돌이를 하고 있다.


"저는 네비가 가라는 대로 가기 때문에 아무리 말씀을 하셔도 거기를 못 찾아가요"


"가는 길이니까 거기 거기로 오면 되는데"


"무슨 말씀인지는 아는데요. 제가 거기 거기를 모르고 네비가 알려주는 대로만 가니까 말씀하시는 그 장소를 못 찾아가요"


"가는 길이라니까요"


"그런데 저는 못 찾아간다고요. 전 심하게 길치에 방향치라고 몇 번을 얘기하고 있어요"


"네비로 가도 그 길이라서 가는 길이라고요"


"네비가 알려주는 대로 갈 거라서요, 계신다는 곳으로 갈지 어떨지 정확하지 않아서요"


한 걸음도 진전이 없고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의미 없는 이야기가 오가기가 30분도 넘었다.

소통이 안 되는 것은 둘 다 똑같다.

안다.

우린 지금 각자의 말만 계속하면서 서로에게 답답해하고 있다.

불과 10년 전 차량에 매립되어 있는 네비게이션만 있을 때 실제 내게 일어난 이야기다.



길치에 방향치




자세하게 설명을 하고 있는데 그걸 왜 모르냐고 다그치고, 심하게 길치이고 방향치라고 아무리 얘기를 해줘도 어딘지 모른다고 하고 계속 되돌이다.

(글을 읽으면서 분통 터지는 분이 계실리라...)




내가 길치라는 것을 안 것은 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운전면허를 따고 중고로 프라이드를 구입하고 주행연습에 들어갔다.

그 당시에는 주행시험이 따로 없고 이론과 코스만 합격하면 면허증이 나왔고 면허를 취득한 후에 주행연습은 운전학원 선생님이나 개인적으로 아는 경력자에게 따로 배웠던 시절이었다.


친구, 지인, 동생, 아버지 이렇게 4명의 운전 경력자 선생님(?)들에게 밥 한 끼로 수강료를 대신하면서 주행 연습을 할 때만 해도 몰랐다.


주행 연습을 하는 동안 다들 한결같이 '운전을 잘하네' '센스가 있네' '과감하네' '감각 있네' '걱정 안 해도 되겠네'등 칭찬을 바가지로 주 덕분에 어깨 가득 자신감을 풀로 장착하고 감하게 첫 단독 주행을 시도했다.


김해 어딘가에 주문해 둔 곰국거리 고기를 가지러 가는 미션


첫 단독 주행임에도 떨리기는커녕 그저 기대에 차서 참으로 즐겁게 겁 없이 운전했다.


아버지가 일러 주신 대로 무사히 김해에 도착하고 곰국거리도 잘 받아서 차에 실었고 이제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엥? 이게 뭐야?

처음부터 멘붕이다.

어쩜 이렇게까지 모든 길이 처음 보는 새로운 길일까?


김해로 갈 때는 아버지가 일러주신 갈림길의 표지판과 방향을 잘 찾아왔으니 돌아가는 길은 왔던 길을 거꾸로만 가면 다고 생각했고 나는

분명히 그렇게 거꾸로 잘 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돌아가는 길은 그 길이 그 길이 아니고 그 방향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거꾸로 돌면서부터 방향을 못 잡면서 자꾸 엉뚱한 곳으로 갔던 것이다.


곧 러시아워가 되는데...

해도 질 텐데...

어디로 가고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고...

집으로 가야 하는데...




한 시간이면 충분한 거리

퇴근시간을 넉넉히 감안하더라도 두 시간이면 집에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인데

연락도 안되고 소식도 알 수가 없으니 아버지와 동생은 캄캄한 골목에서 집 쪽으로 들어오는 불빛만 하염없이 보면서 피가 말랐다고 한다.


4시경에 김해를 출발했고 어떻게, 어디를 헤매다가 왔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 어찌어찌 집에 도착한 시간은 거의 10시가 다 되었으니 사람은 사색이 되어 있었고 실제로 동생은 스트레스로 인해 2,3일 심하게 몸살을 앓았다.


그때 알았다.

난 방향은 물론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한다는 것을, 를 아는 사람들은 전혀 이해가 안되는 표정으로 설마 그 정도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다른 일은 다 똑 부러지게 면서 이렇게까지 모른다고?


길치로 인해 생긴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으니 그건 차차 다른 글에서도 들려드리기로 하고 ㅎ




난들 노력을 안 해봤을까?

같은 길을 몇 번을 오가면서 갈림길의 이정표를 외우고 특정 건물을 눈에 담고 입으로 수없이 되뇌었지만 매번 갈 때마다, 올 때마다 새로운 길인 것을, 나 자신도 얼마나 답답한지...


그나마 그렇게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면서 게 된 사실이 있다. 최소 다섯 번 이상 같은 길을 가면 그때부터 조금씩 그 길이, 지나가는 건물 간판이 눈에 익혀진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돌아오는 길은 언제든지 새로운 길이지만...(미친다)


건물 안으로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생소함을 아실까요?


입구가 여러 곳인 건물은 내겐 개미지옥이고

꼬불 꼬불 골목길은 들어갈 때와 돌아 나올 때는 언제나 낯설고 새로운 길이다.




분명 주행 연습 때는 센스 있고 운전도 잘하고 걱정 안 해도 되겠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길을 모르니 운전 센스는 아무짝에 쓸모없다.


'길 모르면 초보'라는 말은 바로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비게이션이 없던 시절에 사람들은 지도를 보면서 길을 찾았지만 난 그 지를 읽을 줄 모른다.(지금은 그 당시에 비해 아주 많이 좋아졌다. 내 기준에서는 ㅎㅎㅎ)


요즘 라디오 광고에서 종종 듣는 카피 중에 '내 어깨의 상태를 알아야 제대로 된 치료를 할 수 있습니다'라는 말처럼 내가 있는 곳을 알아야 가는 목적지도 경유지도 제대로 알 수가 있는데 내가 있는 곳을 제대로 찾지를 못으니 지도를 펼치면 그냥 그림책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어떠냐고요?



나도 나를 못 믿는다



네비게이션은 사막의 오아시스고 찐빵 속의 앙코이며 인천 앞바다에 뜬 사이다를 먹을 수 있는 컵며 나와 같은 길치에게 이 우주가 주는 최고의 선물이면서 영원히 벗어 날 수 없는 족쇄가 되었다.

네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방향과 가라고 하는 길로만 가야하는 내비게이션의 노예가 되었다.

앞서 이야기 한대로 대여섯 번을 오가는 길은 찾아갈 수 있다고 자부를 하고 네비게이션을 켜지 않고 나서지만 여지없이 방향을 잃고 엉뚱한 길로 수없이 돌아온다.


최소한 집으로 오는 길은 알고 있어야 하는데 그 역시도 내가 사는 동네 언저리쯤 들어서야 안심하고 네비게이션을 끈다.


내가 나를 못 믿는다.


가까운 10분 거리, 우리 동네와 옆 동네까지는 그나마 헤매도 금방 제자리로 찾아올 수 있니 그 때는 자신있게(?)

매번 다니는 길도 때론 헤매니 내가 나를 못 믿을 수 밖에...


누군가는 발전하는 각종 전자기기와 앱과 프로그램이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고 하지만 내게 있어 네비게이션은 길을 못 찾아 헤매면서 울고 있었던 나의 자존감을 올려주었고 북대구를 가야 하는데 함안 톨게이트까지 가서 돌아오는 등의 낭비하는 시간 없이 약속시간을 지킬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하고 고마운 것이다.


이제 발전을 거듭하여 스마트 폰 기능을 사용하면서부터는 경유지를 입력하고 '가는 길 중간에 가 가서 픽업할게'라는 얘기를 먼저 할 줄 아는 스마트한(?) 할머니가 되었다.


"저랑 드라이브 가실 분~~!!"


"오케이, 이따 봐요"














닫는다 길을 났으면 나는 나를 못 믿는다 길치에 관한 이야기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