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드풀니스 프로젝트에서 사람들과 일하다가 생긴 두 가지 에피소드
순간이 있다. 예측할 수 없었던 곳에서 큰 깨달음을 얻는 순간들이.
마인드풀니스 프로젝트에서는 매일이 깨달음의 순간이 있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유독 잊히지 않는 두 가지 에피소드를 풀어보려 한다. 치열한 도시생활 속에선 미처 배울 수 없었던 레슨들.
#1
아침 식사 후에 네추럴 빌딩 일을 할당 받은 사람들은 바로 더러운 작업복으로 갈아 입고 공사장(?)으로 향한다. 정원 일과 점심을 만드는 몇 명을 제외하곤 모두 강도 높은 네추럴 빌딩을 하러 간다. 직접 마른 흙을 진흙 구덩이로 날라다가 물과 빈 벼 껍데기를 일정한 비율로 섞어 10명 정도가 같이 발로 밟는다. 벽돌을 만들 수 있을정도의 점성이 완성되면 진흙을 버킷에 담아 벽돌을 만드는 장소로 옮긴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반복하다 보면 벽돌이고 진흙이고 정말 무겁다. 그 해 생긴 내 근육은 대부분 이 과정 중에 생긴 듯 하다.
이 에피소드가 있던 날 첫 일과는 벽돌 창고에서 15kg 정도 하는 진흙 벽돌 70개를 50m 떨어진 공사장까지 운반하는 일이었다. 대략 12명 정도의 친구들이 50m 사이에 일정한 간격으로 쭉 서서 옆 사람에게 패스하는 식으로 운반을 한다. 여기에선 이걸 뱀(Snake)라고 불렀다.
막노동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아마 이해할거다. 수백장의 무거운 벽돌이 쌓여 있는 저장고에서 일할 때 가장 힘든 위치는 처음에 무거운 벽돌을 집어 드는 첫 주자의 자리이다. 허리를 숙이는 것을 반복하면서 동시에 벽돌 사이에 숨어있던 전갈(다행히 독은 없는)이나 큰 거미 같은 곤충들이 깜짝 출연해서 물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첫 주자는 성별에 상관없이 힘 좀 쓰는 친구들이 자원해서 맡아왔는데 그날은 첫 주자 자리에 몸무게가 40kg도 안 나갈 것 같은 가녀린 리야가 서 있었다. 그녀의 바로 뒤인 두 번째에 있던 내가 프로젝트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녀를 배려한답시고 내가 제안했다.
나랑 자리 바꿀래? 너보다 벽돌이 더 무겁겠어.
"첫 번째 자리는 많이 힘들 거야. 아니면 뒤에 있는 저 (체격이 큰) 남자 애랑 자리 바꾸는 거 어때?"
그녀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니야, 걱정해줘서 고마운데 나 보기보다 힘세, 괜찮아."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 한번 그녀에게 첫 번째 자리가 얼마나 힘든 자리인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때 내 뒤에 있던 안토니오가 내 이름을 불렀다. 안토니오는 평소 힘든 일을 항상 먼저 도맡아서 하는 천사 같은 친구다.'역시 착한 안토니오가 리야랑 자리를 바꾸려고 하나?'라는 생각으로 뒤돌아 그를 바라보았다. 굵은 목소리가 나를 타일럿다.
Hana, let Liya handle it, she said she can handle it.
가까이 다가와 내 눈을 지그시 내려보며 말하는 그의 진지한 눈빛에서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순간 깨달았다. 정말 창피했다. 그 순간 나는 리야를 배려를 하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그녀를 내 잣대로 판단하고 있었던 걸까? 그렇다. 나는 '할 수 있다'라는 리야의 의사를 무시하고 그녀를 좌절시키는 말만 해대고 있었다. 배려라는 좋은 명목을 변명 삼아...
안토니오의 묵직한 한방에 얼이 나간 나는 이후 조용히 그녀가 첫 번째 주자 역할을 완수할 때까지 옆에서 조용히 서포팅했다. 내 눈에 가녀려 보였던 그녀는 결국 15kg 짜리 벽돌 70개를 집어주는 데 성공했다. 나는 그 날까지 배려의 의미를 잘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진정한 배려란 무엇인가?
그 순간의 깨달음이 나를 돌아보게 했다. 그때까지 이런 식으로 남을 배려한답시고 내 판단에 빠져 다른 사람들을 상처 주진 않았을까?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여기서 최악은 내가 남에게 준 상처를 알아차리지 못했을 거라는 사실이다. 그 날 다짐했다. 앞으로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풀기에 앞서 상대방이 과연 내 도움이 필요한가에 대해 반드시 생각해보기로. 도움이란 게 상대방이 원하면 호의지만 원치 않으면 경솔함이다.
내 판단이 맞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배려인 척하는 배려' 따위는 집어치우기로 했다. 내게 '진정한 배려'에 대한 레슨을 준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소유자, 열정적인 멕시칸 소울, 안토니오 고마워!
#2
어딜 가나 있다. 정말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주변 사람 여럿 힘들게 하는 사람들.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초자연적인 환경에서 진실된 휴먼 커넥션을 나누는 건강한 취지의 마인드풀니스프로젝트라고 해서 항상 좋은 에너지만 풍기는 사람들만 모이는 건 아니다. 대부분이 마음을 활짝 열고 가장 최고의 모습과 함께 가장 여린 부분까지 드러낸다. 모두가 각양각색의 매력을 풍기며 자기다움을 마음껏 드러낸다. 그 와중에 유독 모두를 힘들게 하는 그런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녀는 헌신적이고 유머감각이 뛰어나다. 끼도 에너지도 넘치는 사람이다.
누구도 하기 싫어하는 화장실 청소를 항상 자원해서 하고, 그녀의 엄청난 에너지는 미친 듯이 더운 날씨에도 모두에게 힘을 실어준다. 그 큰 목소리로 'Power!'라고 구령을 외치며 지친 모두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파한다.
그녀는 말이 정말 정말 정말 많다.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다 나오는지 일하는 내내 쉴 새 없이 이야기한다. 가끔 조용히 있고 싶은 사람들은 그녀 주변에 있기가 불편하다. 모닝 사일런스 타임에도 그녀는 종종 룰을 무시하고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녀는 화가 정말 많다. 한번 그녀의 눈 밖에 난(?) 사람이 일하지 않고 농땡이 치는 듯 보이면 바로 공격 모드로 돌입한다. 종종 거친 말로 상대방 상처를 주곤 했다. 그녀가 한번 화를 내면 그 분노의 에너지가 프로젝트 전체 사람들에게 전해진다. 의도치 않게 그녀와 엮여서 울거나 화가 난 사람이 꽤 많았다.
그래서 첫 10일간 그녀를 최대한 피해 다녔다. 여기까지와서 감정노동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
나름 오랫동안 회사 생활하면서 이사람 저사람 만나다 보니 특별한 사람들 감지하는 촉이 잘 길러졌다. 특히 갑질하는 클라이언트들에게 더 많이 배웠다. 똥은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해야한다는걸.
그렇게 최소한의 접촉으로 연명하며 10일을 지내다가 첫 번째 휴일을 맞이했다. 프로젝트를 떠나는 친구들을 마중할 겸 콘캔 시내로 꽤 많은 친구들이 함께 처음으로 1박 2일 외출을 했다.
10일간 정이 많이 든 10명 이상의 친구들을 대거 떠나보내는 마음에 싱숭생숭한 밤이었다. 같이 처음으로 맥주도 한잔하면서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떠나야 할 사람들은 먼저 떠나고 프로젝트에 계속 남아 지낼 4~5명의 친구들만 남게 되었다. 그녀도 거기 함께 있었다.
처음으로 그녀와 그렇게 가까이서 이야기하게 되었다. 술도 좀 마셨겠다, 갑자기 총대를 멘 친구가 자연스럽게 이해하기 힘든 그녀의 행동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갑자기 들이닥친 공격에 철저하게 자기 방어를 하다가 끝내 자기의 가족사를 고백했다. 우리 모두가 그녀를 달래며 애원한 부탁은
Please, be vulnerable! You can be.
예민하고 특별한 캐릭터가 만들어진 데까지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만큼 아픈 상처가 있었다. 그녀는 아픔이 정말 정말 정말 많았다. 어려서부터 말로 다 할 수 없는 인생 트라우마들을 수차례 겪은 그녀는 지금의 '특이하고 불편한 그녀'가 되지 않고서는 도저히 그 무게를 견뎌낼 수 없었다. 누구에게도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하지 않는 그녀의 강박과, 불같은 분노와 강한 공격성을 가진 그녀의 성격이 퍼즐 조각같이 맞춰졌다. 옆에서 듣고 있던 친구가 그녀를 꼭 안아줬다. 그녀는 엄마 품에 안긴 어린 아이같이 소리내어 울었다.
그날 밤 이후로 그녀가 측은해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또 다시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내게 더 이상 '피해 다니고 싶은 짜증나는 여자'가 아니었다.
도시에 돌아온 내가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새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호기심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가끔 주변 사람들을 많이 힘들게 하는, 특이하고 불편한 캐릭터 뒤에 숨겨진 그들의 인생 비하인드 스토리는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섣불리 누군가를 판단하기 전에 '가끔 본인도 견디기 힘든 본인만의 불편한 기질' 뒤에 숨겨진 상처를 궁금해하고 공감해 준다면 얼마나 많은 위로가 될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