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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링씨티 Jul 01. 2022

내 생에 가장 특별한 정글생일파티, 소원을 빌어봐!

값을 매길 수 없는 감동의 생일 선물들

2018년 5월 16일. 31세를 맞이한 이 날은 지금까지 내 생에 가장 특별한 생일날이었다. 

평소같이 아침 요가와 청소를 마치고 침묵 속에서 아침 식사를 마쳤다. 바로 이어지는 모닝 허그 시간에 크리스찬이 오늘은 특별히 다른 방식으로 침묵을 깨 보자고 말했다. 


Happy birthday to you~ happy birthday to you!


라고 운을 떼며 그가 노래를 시작하자 일단 생일을 맞은 사람이 누군지는 몰라도 둘러앉은 모두가 함께 노래를 따라 부른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성인이 되고 나서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게다가 15개국이 넘는 나라 친구들이 생일을 축하한다며 노래를 불러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왠지 모르게 부끄럽기도 하고 가슴 뭉클했다. 노래가 끝나고 크리스티나에게 서프라이즈 선물을 하나 받았다. 정원 들꽃으로 만든 화관이다. 2주 전에 크리스티나가 다른 친구를 위해서 만들어준 걸 보고 내가 너무 부러워했던 걸 기억한 그녀가 아침 청소시간에 몰래 만들어 놨다. 이런 센스쟁이 ;)


생일 선물로 받은 화관쓰고 신난 나. 아침에 친구들이 생일 축하한다며 저렇게 한번씩 꼭 껴안아 줬다 :D


그리곤 크리스찬은 생일자를 위한 특별한 생일선물 규칙을 일러준다. 생일자는 생일 당일 날에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예~쓰!!! 정말 눈물 나게 행복한 생일 선물이다) 또한 생일자는 프로젝트 안의 모든 친구들에게 한 가지씩 생일 소원을 빌 수 있다. 단, 이 소원은 돈과 연관되지 않은 순수한 행위(performance, service) 여야 한다. 물론 원치 않는다면 내 소원을 거부할 수도 있다. ㅋㅋㅋ But!! 대부분 생일자들이 미안한 마음에 소원을 많이 빌지 않기 때문에 친구들이 거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렇게 내 31번째 특별한 생일이 시작됐다. 

평일 하루 땡볕에서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얼마나 기뻤는지 나는 바로 해먹에 누워서 책을 읽기로 했다. 몇 장 읽지도 않았는데 크리스텔이 다가와 마사지를 받지 않겠냐고 묻는다. 그녀는 프렌치지만 태국에서 정식으로 타이요가 마사지 코스를 배워서 몸이 많이 안 좋은 친구들에게 종종 마사지를 해준다. 그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로 매트리스를 가지고 와서 누웠다. :D


두시간 넘게 마사지 받는 동안 또 다른 친구는 내게 코코넛 아이스크림을 가져다 줬다. 여기가 바로 'Heaven on earth'


그녀가 내게 해 준 타이요가 마사지는 일반 마사지와는 조금 다르다. 그녀는 우리 신체의 각기 다른 부위의 세포들이 기억하고 있는 감정이나 트라우마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마사지를 통해서 이런 기운들까지 풀어준다고. 그래서 내 몸 여기저기 부위 별로 터치를 할 때마다 그 부위의 세포가 기억하는 감정에 따라 내 기분이 바뀔 수 있다고 했다. 특히 배나 허벅지 안쪽 같은 부위가 굉장히 예민한 부위라고 했는데, 그녀에 설명에 마음이 동했는지(?) 마사지를 받는 긴 2시간 30분 동안 그녀에게 내 인생 대소사들을 주욱 꺼내놓기 시작했다. '대체 내가 왜 이런 이야기까지 너에게 하고 있는 거지?'란 생각을 하면서도 주저리주저리 말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운 추억 이야기엔 마음이 말랑말랑해지고, 슬픈 기억 때문에 눈물도 났다. 나중에 그녀에게 마사지를 받은 친구 중 두 명은 마사지 도중 아주 많이 울었다. 물론, 마사지 능력자일 뿐만 아니라 상담 전문가인 크리스텔이 모두의 상처까지 잘 어루만져 주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세상에서 제일 자유롭고 지혜로운 그녀가 많이 보고 싶다. 


마사지 후 아주 개운한 기분으로 점심을 먹었다. 식사 후 내가 사용한 식기를 치우려고 일어서자 옆에 앉은 친구가 생일날 뭐하는 짓이냐며 급히 가져가 버렸다. 너무도 따뜻하고 재밌는 친구들 :)))


왼쪽 베이비들을 보러 툭툭보다 작은 소형 오토바이 타고 가면서


점심 식사 후 자유시간에는 소원을 하나 빌었다. 장기 체류자들이 살고 있는 숙소에 가서 태어난 지 1달이 채 안 된 강아지들을 보게 해달라고 했다. 듣던 대로 엄청 귀엽다. 강아지들과 앉아서 좀 놀다가 우리 캠프로 돌아오는 길엔 크리스티나와 둘이 걷고 있었다. 또 다른 서프라이즈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 멀리서 스쿠터 한대가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이틀 전에 캠프를 떠난 미힐이 콘캔 타운에서 머물고 있다가 내 생일인 걸 알고 오토바이를 렌트에서 달콤한 도넛을 사 가지고 왔다. 미힐은 장난기가 엄청 많은 벨기에 친군데 그가 생활했던 10일간 내가 이 녀석 장난을 다 받아쳐 주면서 친해졌다. 콘캔 타운에서 캠프까지 30km를 달려와 준 정성이 정말 고마웠다. 도넛은 40도를 넘나드는 더위에 다 녹았지만 캠프로 돌아가 다 같이 나눠 먹었다. 지금까지도 프로젝트에서 만난 친구들과 종종 연락을 한다. 


세계 이곳저곳에 사랑하는 친구들과 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도록 도와준 소셜 네트워크의 위력이 정말 정말 감사한 시대에 살고 있다. 태국을 떠난 뒤에도 동남아를 계속 여행하던 미힐은 한국에도 일주일 놀러 왔다. 마침 작년 월드컵 시즌에 놀러 온 운도 좋은 미힐. 이 날 밤은 한국과 벨기에 경기가 연달아 있던 날이라 시간 되는 친구들을 소집해서 이태원에서 경기 보면서 신나게 놀았다.  


엄청나게 재밌는 밤이었지만 벨기에는 이기고 한국은 졌다...ㅠㅠ


다시 작년 내 생일날 저녁으로 돌아가서. 저녁 6시 평소같이 따뜻한 토킹 서클을 마쳤다.

오늘은 크리스찬의 저녁 수업 대신 다큐멘터리를 보는 날아나 특별히 생일 맞은 내게 보고 싶은 비디오가 있으면 장르에 상관없이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을 줬다. 보통 불교, 환경, 인문학, 과학 관련 다큐를 보곤 했다. 오전 내내 고민을 하다가 정했다. 공포영화로. 


캄캄한 밤, 정글 한가운데 위치한 캠프 안은 너무 어두워서 이런 곳에서 공포영화 한 편 보면 정말 소름 끼치게 실감 나겠다고 상상만 했었는데, 'why not?' 겸사겸사 한국 영화도 소개해주면 좋을 것 같아서 제일 스릴 넘치게 본 공포 영화는 아니지만 한국 최초 좀비 영화 부산행을 골랐다. 한국 영화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친구가 대부분이었는데, '한국식 좀비 영화'라는 신선함에 상영 전에 반응이 좋았다. 프로젝터를 설치를 돕고 있는데 갑자기 모든 불이 꺼진다. '아... 또 정전인가? 영화 어떻게 보나...' 어둠 속에서 노래가 또 한 번 울려 퍼졌다. 


Happy birthday to you, happy birthday to you, 
happy birthday dear my friend, happy birthday to you.



감동 of  감동의 순간


친구들이 점심시간에 나 몰래 만든 비건 초콜릿 케이크가 어느새 내 손에 쥐어져 있다. 노래는 끝나지 않았다. 이어서 머릿 수가 제일 많은 독일 친구들이 독일어로 노래를 불러줬다. 그다음 수가 많은 브라질 친구들이 포르투기로 이어 부른다. 릴레이 경주에서 바통 터치를 하듯이 프랑스, 스웨덴, 핀란드어로 노래를 불러줬다. 더 이상 이어서 부를 사람이 없게 되자 누가 질문한다. "근데 한국어로는 이 노래 어떻게 불러? 여기 아는 사람은 하나밖에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 하나가 부르면 되겠네?"


'얘들아, 생일자에게 생일 노래를 시키다니...'라는 생각도 잠시, 가만히 생각해보니 '또 언제 내가 나를 위해서 이렇게 많은 외국인들 앞에서 내 생일 노래를 한국어로 불러볼 날이 있을까?' 싶었다. 지난 31년을 잘 살아준 나를 위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지막이 나에게 거기선 아무도 못 알아듣는 한국어로 부른 생일 노래는 한없이 특별해졌다. 혼자 부르는 첫 소절을 듣고 센스 넘치는 몇몇 친구들은 소리 나는 대로 비슷하게 따라 불렀다. 그 순간에 오롯이 집중해서 함께 즐겨주는 한 명 한 명 친구들의 모습들이 정말 감사했다.


케이크를 조각조각 잘라서 나눠 먹은 후 부산행을 감상했다. 한국 영화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친구들에게 부산행 영화 상영은 성공적이었다. 할리우드 좀비 영화같이 가볍고 자극스러울 줄만 알았는데 '자본주의 사회를 작게 담아 묘사한 스토리는 나름 의미도 있고 한국 문화도 조금 엿볼 수 있어 판타스틱!' 했다고 다음날까지 칭찬을 들었다. 몇 달뒤 독일로 돌아간 로버트는 자기 형이랑 다시 부산행을 볼 거라며 내 생각이 문득 났다며 안부를 물었다. 마인드풀니스 프로젝트 친구들에게는 잊히지 않을 첫 한국 영화 부산행같이 나는 이제 매년 생일마다 떠올릴 영화 같은 추억 하나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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