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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링씨티 Dec 21. 2018

한국을 떠났던 이유

정말 행복하고 싶었다.

2013년 여름날, 서울의 한 대형 제약회사에서 1년째 근무하고 있던 나. 


평소같이 9시까지 출근을 해서 주어진 일을 착착 해내고 있던 날이었다. 그 날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뀌는 결심을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싱가폴에서 회사생활을 하고 있는 친한 친구가 한국으로 출장을 와서 퇴근 후에 만나기로한 날이었다. 하필 그 날 나는 직속 매니저에게 엄청 깨진 뒤에 야근을 하게 되었다. 


반드시 끝내야 하는 급한 일만 후다닥 끝내고 대충 짐을 챙겨 약속 장소로 서둘러 향했다. 약속 시간보다 30분이나 늦게 도착한 내게 "언니 왔어!!!"하고 반갑게 웃으며 안아주던 수지의 얼굴을 보니 하루종일 쌓였던 온 몸에 긴장이 다 풀리는 것 같았다. 내 초최한 몰골과는 반대로 활기찬 에너지를 뿜어내는 그녀의 모습이 좋아보였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서로의 '회사생활'을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똑같은 '회사생활' 이야기를 한다기에는 그녀와 나는 너무나도 다른 경험을 하고 있었다. 수지는 자기에게 주어지는 회사 일이 너무 재밌고 기대가 된다고 말했다. 왜 우리 둘은 나이도 비슷한데 나만 '버티는 회사생활'을 하고 있는 걸까? 나도 그녀처럼


'행복한 회사생활'을 하고 싶었다. 



우리가 서로 다른 경험을 하는 이유가 단지 나라가 달라서인가 싶었다. 그리고 그게 정말 일하는 나라의 문제라면 내 환경도 한 번 바꿔보고 싶었다. 5년 뒤에 내가 내 직속 매니저같이 살고 있을 모습을 상상해보니 결심이 쉬워졌다. 서울에서 재미없는 직장생활을 5년이나 더 하고 싶진 않았다.


싱가폴은 다민족 국가라 전세계 다양한 나라에서 온 동료들과 일하면서 지루함을 느껴본 적이 없다는 친구의 이야기에 마음이 더 기울었다. 필요한 건 뭐든 도와주겠다고 언니도 할수 있다고 힘을 실어준 그녀의 응원에 용기가 났다. 그리고 이후 수지는 약속대로 나를 도와주기 시작했다. 


한 번 마음먹으면 실천에 바로 옮기는 기질인 나는 그 다음 주부터 퇴근 후 종로의 한 통번역 학원을 등록했고 바로 해외취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해 말 회사에 사직서를 내고 한국 회사생활을 정리했다. 입사할 때만해도 너무 좋아서 날뛰었던 회사였는데 하루 빨리 떠나고 싶어하는 내 마음도 신기했다.



사실 이 제약회사도 처음에는 내가 너무나도 원해서 들어온 꿈에 직장이었다.

간호학과를 졸업한 학생이면 모두가 그렇듯이 대학병원에서 두 달동안 간호사 트레이닝을 받았었다. 두 달만에 내 고유의 컬러를 모두 잃어버리고 회색 빛이 되버린 나를 보곤 난 간호사라는 직업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란 걸 깨달았다. 병원의 특유의 보수적이고 엄격한 위계질서를 버틸 자신도 없었고 버티고 싶지도 않았다. 간호사가 아니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막막했지만 방향을 바꾸면 길이 보일 거라 믿고 잡서칭을 하기 시작했다. 다른 직업들을 알아보다가 우연히 신약개발 임상시험 모니터링 요원(CRA)이라는 직업이 있다는 걸 알게되었고 때마침 이 제약회사에서 신입사원 모집을 하고 있었다.


돌파구를 찾은 것 같았다.

바로 자소서를 써서 지원했다. 1명을 뽑는데 200명이 넘게 지원했다고 들었다. 운 좋게 서류합격을 했고 총 4명이 최종 면접을 보게 되었다. 4명 중에 실무 경험도 제일 부족하고 스펙도 낮았던 내가 뽑혔다. 지옥같이 느껴졌던 병원에서 탈출하고 싶었던 내 절심함이 하늘에 닿았던 걸까. 될 일은 된다고 최종 면접에 있었던 소장님이 영어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분이였는데 그 중에서 내가 제일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 때만 해도 간호학과를 나와서 병원을 거치지 않고 제약회사에 취업하는 케이스가 거의 없었기에 친구나 가족들 뿐만아니라 교수님한테도 축하를 받았었다.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입사한 회사였는데... 나만의 고유의 컬러가 회색빛으로 변하는 듯한 느낌은 이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때의 나는 내가 행복할 수 없었던 이유가 한국의 보수적인 기업문화 때문이라 확신했었다. 한국만 떠나면, 싱가폴에서 회사를 다니면 나도 내 친구같이 자유롭고 행복하게 하루하루 살 수 있을거라 믿었다. 무식하면 정말 용감하다. 젊으니까 뭐든 해보자는 마음 하나로 새해가 밝자마자 싱가폴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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