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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링씨티 Apr 17. 2024

지구 반대편에서 내려놓은 외모 콤플렉스

아이리쉬 친구에게 배운 나의 아름다움

스물둘, 한국 생활을 잠시 멈추고 새롭게 시작한 아일랜드에서의 생활은 모든 게 재밌고 신기했다.


무엇보다 다르게 느껴졌던 건 일상 속 여유로움이었다.

더블린이라는 도시 속에서 느낀 느긋함은 서울에서는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던 기분이었다.

서울에서 항상 무언가에 얽매여 살았던 나를 위한 보상같이 느껴졌다. 간호학과 커리큘럼을 따라가면서 남는 시간과 방학에는 빼곡히 이런저런 알바를 하니라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없었다.


어학원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매일 지나가던 공원에는 벤치에서 샌드위치를 먹는 사람, 돗자리도 깔지 않고 잔디밭에 누워서 햇빛을 쐬는 사람들, 개 산책을 시키는 할머니, 멍 때리고 있는 아저씨들이 여기저기 앉아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하루종일 일만 하고 지내는 건 아니구나...' 그 광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들어서 공원에 멈춰서 잠깐씩 쉬어가곤 했다.



도착 후 첫 6개월은 더블린에서 브라질리언들이 모여사는 아파트에 같이 살게 되었다. 렌트비를 아끼려고 투룸 아파트에 남자 셋, 여자 셋이 같이 사는 집으로 들어갔다. 지금 돌이켜보니 진짜 그 나이에만 해 볼 수 있는 재밌는 경험이었던 것 같다. 전 세계 곳곳에서 모인 사람들과 살아보는 첫 경험을 한다는 생각은 어쩌면 불편할 수 있었던 일상 속 크고 작은 부딪힘까지도 한 편의 시트콤 같이 느껴지게 했으니까.


오전에는 어학원을 다니고 오후 시간에는 친구들이랑 놀기도 하고, 도서관에 가서 영어 공부를 하고, 저녁에는 밥을 해 먹고 영드를 보거나 책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영어 공부 한다고 저녁에 집 근처 펍에 가서 단골이었던 할아버지랑 대화했던 기억도 있다. 매일 단조로운 것 같으면서도 새로웠던 하루하루를 보내다가 더블린에서 운명 같았던 연인을 다시 만났다. 2~3개월 애틋하게 롱디를 하다가 6개월 뒤에는 남자친구를 따라서 코크라는 남부 도시로 이사를 갔다.


아일랜드, 코크라는 도시에서 내 인생 두 번째 힐링을 경험했다.


주말마다 아파트 테라스에서 쌓아놓고 마시던 맥주...ㅋㅋㅋ


이십 대 초반, 신입생부터 아일랜드에 갈 때까지 쭉 나는 외모 콤플렉스와 다이어트 강박 때문에 정신적인 고통을 겪고 있었다.


누가 대학교만 가면 살은 저절로 빠진다고 했던가?


입시를 준비하면서 불어난 살들은 입학해서도 쉽게 빠지지 않았다. 입학 초기만 해도 살찐 몸에 대한 스트레스는 그렇게 심하지 않았다. 빠지면 빠지는 거고 아니면 어쩔 수 없고 그런 마음으로 잠시 살았다.


내 몸에 대한 불만은 입학 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점점 커져갔다.


동아리 모임, 미팅, 교양과목 모임, 알바 모임 각종 모임은 계속해서 쏟아졌고 사람 만날 일들이 점점 많아졌다. 모임을 나가며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소리는 이 말이었다.


"하나야, 넌 살만 좀 빠지면 진짜 예뻐질 거 같은데..."


특히 남자 선배들이 이런 말을 자주 하곤 했는데 요청하지 않은 조언(?) 듣는 일들이 반복되니까 너무 속상했다. 그때 당시 내 몸이 있는 그대로 환영받지 못한다는 기분에 자존감이 날이 갈수록 떨어졌다.


 '아씨 뭐야... 지금 이대로는 별로라는 건가...?'


스무 살 가을이었다. 소개팅 후에 몇 번 썸을 타다가 잘 안 되는 일이 생기면서 썸붕의 원인을 내 외모 탓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아.. 이거 내가 정말 통통해서 그런가... 살 빠져서 예뻐지면 나를 좋아해 줄까?'


그 생각을 완전히 믿어버린 그 해 가을, 처음으로 독하게 살을 빼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야식이랑 과자도 다 끊고, 닭 가슴살, 토마토, 고구마만 먹는 전형적인 다이어트를 했다. 그렇게 4개월 동안 매일 1~2시간을 걷고 모임도 거의 나가지 않았다.



2006년 입학 당시 58~60kg -> 2007년 여름 51~52kg


처음엔 열심히 다이어트를 한 보람이 있는 것 같았다.


주변에서 날씬해졌다는 말을 듣기 시작하면서 정말 기뻤다. 자신감도 조금 올라간 것 같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때 당시 나 나름대로는 살을 빼서 만족스러웠는데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 레스토랑 알바에서 만났던 매니저가 나한테 똑같은 소리를 했다.


'하나씨, 살 좀만 빠지면 정말 예뻐지겠어.'


어이가 없고 당황스러웠다. 노력해서 다이어트에 성공한 줄 알았고 이 정도면 충분히 날씬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대체 언제 예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너무 속상했다. 예뻐지는 건 끝이 없구나. 살이 빠졌어도 낮아진 내 자존감은 여전히 그 선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후에 시작이 되었다.

다시 살이 찌는 게 두려운 나머지 식욕을 억누르기 시작했는데, 평소에는 고강도의 운동을 하고 식단도 잘 지키다가도 술을 마시면 억눌렀던 식욕이 터져서 미친 듯이 먹는 버릇이 생겼다. 그리고 살이 찌는 게 무서워서 억지를 토를 했다. 처음엔 몇 번 그럴 수 있다 생각했는데 이 패턴이 반복되면서 술을 많이 마신 날마다 나도 모르게 토를 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술만 마시면 먹고 싶었지만 참았던 무언가를 먹고, 많이 먹지 않았어도 게워내야만 안심이 됐다


그런 나 자신이 너무 싫고, 창피하고,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는 내가 한심했다.


지옥 같던 패턴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아서 너무너무 두려웠다. 나름 심각했던 고민을 1년 넘게 누구에게도 제대로 말하지 못한 채 아일랜드에 가게 되었다.  


어학원 끝나고 금요일 밤


지구 반대편의 작은 섬나라에서 전 세계에서 모인 사람들을 만나고 바쁘게 지내면서 다행히 다이어트 강박 증상은 많이 괜찮아졌다. 다양한 국가에서 다양한 외모를 가진 사람들을 보고 듣고 느끼면서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아일랜드에서 지낼 땐 내가 스스로 통통하다고 불평하면 주변에서 다들 미친 소리 하지 말라고 했다. 얼마나 속이 시원하던지...! 여기서 살이 더 빠지면 지구에서 없어지겠다며 나를 'a tiny Korean girl'라고 부를 정도였다. 태어나서 처음 받아보는 새로운 관점의 칭찬(?)에 내 몸과 마음이 위로를 받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다이어트 강박 증상의 빈도가 점차 줄어가던 중 잃어버렸던 자존감을 큰 폭으로 회복할 수 있었던 일이 생겼다. 잊을 수 없는 대화였다. 그래서 이렇게 글까지 쓰고 있으니까. 그날 밤 아이리쉬 하우스메이트와의 대화 이후 날씬한 몸에 대한 강박과 외모에 대한 불만족감에서 아주 많이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코크에서는 정말 정말 인형같이 생긴, 탑샵(Topshop) 모델같이 생긴 예쁜 아이리쉬 친구가 같은 집에서 살고 있었다. 스타일도 세련되고 착하고 예쁜 그 친구와 친해지면서 밤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았는데, 그날 밤에 나는 어김없이 그 친구에게 내 외모에 대한 불평을 털어놨다.


"R, 나는 네가 너무 부러워, 어쩜 그렇게 얼굴도 작고 가녀리고 코가 그렇게 높아? 한국 여자들은 너 같은 얼굴을 갖고 싶어서 턱뼈를 깎기도 하고, 귀 연골을 뽑아서 코에다가 넣는 수술도 해. 난 내 납작한 얼굴이랑 각진 턱뼈가 너무 싫어. 너 같은 얼굴로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상상만 해봐도... 정말 부럽다. 넌 예뻐서 좋겠다."


"Hey, shut up!(정말 처음 했던 말) 너 지금 내 코가 부럽다고 했어? 미친 거 아냐? 나는 평생 이 길고 높은 코가 너무 컴플렉스야. 나는 작은 코 가진 사람들이 부러워. 내가 만약에 성형수술을 한다면 너 같은 코 사이즈로 줄일 것 같은데? 그리고... 둥근 턱이 싫다고? 나는 그게 없어서 속상해. 너를 위로하려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 너 같은 둥근 턱을 가질 수만 있다면 갖고 싶어. 하나, 너 지금 모습 그대로 진짜 예뻐"



아일랜드에서 나. 그저 아름다웠다... 그 때 너무 미워했어서 미안해 ㅠ



그녀의 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묻고 또 물었다. 진짜?

저렇게 모델같이 예쁜 여자애가 내가 가진 외모를 원한다고?

내 얼굴이 그 누군가에게 수술을 해서라도 갖고 싶은 얼굴일 수도 있다니.... 와... 정말?


그날 밤 깨달았다.

내 외모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람마다 느끼는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이 완전히 다를 뿐이었다.

사람들은 서로 가지고 있지 않은 걸 높게 평가하고 부러워하며 산다.

그때까지 내가 나를 미디어가 만들어 놓은 미의 기준에 맞춰 비교하고 평가하면서 스스로를 미워했던 시간들이 너무나 부질없게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내가 나를 너무나 괴롭혀왔다는 생각에 나 자신에게 미안했다.


내가 가진 건 당연하고 하찮게 느껴졌고, 내가 가지지 못한 건 한없이 고결하고 높아 보였다.

그랬다, 나는 나를 사랑하지 못하고 있었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걸 얻게 된다 해도 얼마가지 않아서 그게 당연해지고, 하찮게 느껴져서 또 다른 불평거리를 찾아 자기를 미워하길 계속한다. 스스로 미워하니까 내가 갖게 되는 순간 그게 더 이상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는 굉장히 피곤한 마법을 계속 부리면서 산다.


그 날밤의 깨달음 이후로 나는 다이어트 강박도, 폭식도, 폭토도 멈출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58kg까지 살이 쪄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는데 더 이상 그걸 문제 삼지 않게 되었다. 계절에 따라 그냥 몇 킬로 더 찐 나, 몇 킬로 더 빠진 나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좋아했던 urban outfitters


외모 컴플렉스의 본질적인 문제는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이 시선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집단 무의식'의 영향도 크다고 생각한다. 혼자 힘으로 자기 자신의 아름다움을 알아차린다는 게 어려울 수 있다는 점도 충분히 이해한다.


이런 이유로 나에게 코칭상담을 받으러 오는 분들이 짧게는 수년에서 수십여 년 동안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걸 본다. 나를 사랑하는 습관을 기르면서 내가 나를 바라보는 관점을 사랑에 기반하도록 바꿔주면, 외모 컴플렉스도 다이어트 강박도 더 이상 나를 괴롭힐 수 없게 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아름다움의 어원이 '나다움'에서 왔다는 사실 알고 있을까?

나는 나다울 때 가장 매력적이고 아름답다.

당신은 당신 다울 때 가장 매력적이고 아름답다.


매력은 어디에서 오냐고?

사랑이다. 오직 사랑뿐이다.




내 인생 두 번째 힐링, 외모에 대한 고정관념 unpattern 완료!
내 외모를 문제 삼아 스스로를 미워하던 시선을 정반대로 바꿔서
내 외모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기 시작했다. 나는 나라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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