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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링씨티 Apr 10. 2024

왜 나는 한국을 떠나는 상상만으로 짜릿함을 느꼈을까?

내 인생 첫번째 힐링 경험담


스무 살이 되어 대학교를 들어가기 전까지 내 유일한 낙은 학원에 가서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시간이었다. 여전히 가깝게 지내고 있는 그 친구들이랑 어렸을 때 이야기를 종종 하는데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아도 그때 ‘즐거웠던’ 그 느낌만은 선명히 기억에 남는다. 독서실 앞에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숨이 넘어갈 듯이 웃고 떠들었던 행복한 기억들. 원하는 대학 입학을 단 하나의 목표로 삼아 눈 떠서 잠이 들기 전까지 진짜 무식하게 공부만 했었다. 그때는 성과를 낼 때 휴식과 운동의 중요성 같은 건 수면 위로 올라오지도 않았던 시절인지라 오래 공부하면 공부한 만큼 좋은 성과가 있으리라 믿고 우직하게 공부만 했었다.


평소 모의고사 성적이나 내신 점수대로 간다면 목표하던 대학은 무난하게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상위권에 있었다. 그런데 고교시절 그 누구도 내게 수능 당일과 그 전날 컨디션 조절에 대한 조언은 해준 적이 없었다. 무의식적으로 엄청나게 긴장을 했었는지 수능 전날 예비 소집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잠이 미친 듯이 쏟아졌다. 그래서 그냥 잤는데 낮잠만 4~5시간 잤던 것 같다... 너무나 단 잠을 잤다...ㅠ 평소 피곤함이 이날 다 몰려왔는지 아… 무튼 그날 밤 애써 자려했지만 잠들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정신이 그로기한 상태로 수능을 봤다. 망했다고는 생각했는데 가채점 결과 총점이 평소보다 거의 30점이 낮게 나와서 태어나서 처음 큰 좌절감을 맛봤다. 피시방에서 가채점을 끝내고 집에 와서 인생이 끝난 사람처럼 서럽게 울었다. 평소 아빠는 내게 ‘재수는 생각하지도 마라. 지원해 줄 수 없으니 한 번에 끝내라’고 단언해왔기 때문이었다. 수능 당일 날 방문을 닫고 엉엉 소리 내서 우는 나를 불러서 아빠는 바로 말을 바꿨다. ’ 재수 한 번은 시켜줄 테니까 그만 울라’고.


생각해 보면 이게 어린 시절 아빠가 나를 대하던 패턴이었다. 뭔가 기회를 주고 나서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같이 강력하게 이야기한다던가, 내가 뭔가를 원해서 요구를 하면 처음엔 거절하고 나중에 자기 기분이 내키면 들어주곤 했었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부터 정말 필요하지 않은 부탁은 애초에 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한 줄기 희망이 생겨서 두세 달을 마음 놓고 쉬었다. 점수에 맞춰서 안전하게 경기도에 있는 한 의과대학 간호학과에 지원하라는 담임선생님의 말을 무시하고 원래 목표였던 한양대 간호학과에 지원한다고 했다. 어차피 붙어도 안 갈 대학에 지원하기보다는 원하던 대학에 지원이라도 해보고 싶었다. 담임 선생님은 내가 말을 안 듣는다고 혀를 내둘렀지만 내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근데 이거 웬걸? 학교 전체가 놀랐다. 평균 3등급으로 한양대 간호학과에 합격했기 때문이다.


결과 발표 날, 당연히 ‘불합격’ 세 글자를 예상하면서 수험번호를 확인했는데… 합격 통보를 확인했을 때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엄마!!!! 나 합격이래 ㅠㅠ”

너무 좋아서 쿵쾅쿵쾅 소리가 날 정도로 집안을 헤집고 뛰어다녔다. 

아빠는 그날을 생각하면 여전히 귓가에 내가 뛰어다니는 소리가 생생히 들린다고 했다.

나도, 엄마 아빠도, 군대에 있던 오빠도, 친구들도, 선생님들도 모두 기적이라고 했다. 엄청난 축하를 받았다. 정말 운이 좋았다.  


내 인생의 첫 번째 기적 같은 순간을 시작으로 설레는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신입생 생활은 생각보다 훨씬 더 재밌었다. 왜? 공부 안 하고 거의 놀기만 했으니까 ㅋㅋㅋㅋㅋ

마음이 잘 맞는 친구들이랑 어울리면서 동아리 활동 위주의 생활을 했다. 전공 공부는 완전 뒷전이었고 교양 과목을 더 재밌어했다. 대학 입학이 목적이었지 ‘간호학’이라는 학문에 관심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겉돌면서 놀러 다니는 대학 생활을 1년 반 정도 하고 있었을 때 오빠가 군대에서 제대를 했다. 어느 날 부모님이 오빠와 나를 불러서 예상치 못했던 제안을 했다.


”요즘 대학생들 어학연수를 많이 다녀오는 거 같던데, 너네도 한번 가볼래? 둘이 간다면 1년은 지원해 줄게. “


이 제안을 처음 들었을 때 내 심장은 그 자리에서 마구 뛰기 시작했다. 내 머릿속 옵션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옵션이 추가되었는데 그 옵션이 바로 가장 좋은 옵션같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서 신나서 ‘예쓰’라고 대답한 나와는 다르게 오빠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생각해 보겠다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빠는 어학연수엔 관심이 없다고 대답했다. 부모님은 오빠가 안 가겠다면 ‘여자애’ 혼자는 해외에 보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가슴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어렸던 나는 오빠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왜! 이런 좋은 기회를 자기 발로 뻥 차버린단 말인가? 너 때문에 나도 안 보내준다고 하잖아!!!

 

우리 부모님은 우리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세탁소를 운영해 왔다. 매일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성실히 일해서 우리를 먹여 살리고 교육시키는 걸 최우선순위로 여겼다. 우리가 잘 크는 걸 보는 낙으로 살아오신 두 분이다. 우리 오빠는 나와 다르게 철이 일찍 들었다. 부모님께서 재정적으로 큰 여유가 있어서 어학연수를 보내 주는 상황이 아니었던 게 뻔히 보였던 오빠는 부모님에게 또 다른 짐을 만들어 주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오빠는 휴학을 하고 1년 동안 알바를 하면서 용돈을 벌었고 복학해서 그 돈으로 생활비를 하면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을 했다.


깊은 우리 오빠의 속 뜻을 전혀 알리가 없던 나는 속으로 씩씩거리면서 ‘기필코 혼자 힘으로라도 어학연수를 가고야 말겠다’고 결심을 했다. 그때부터 어학연수 자금으로 쓸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과외 알바, 이태원 카페 알바, 대학생 방학 알바 등 시간이 나는 대로 알바를 했다. 그렇게 3학년 말까지 악착같이 천만 원 남짓되는 돈을 모았다. 그런 내 노력을 기특하게 여긴 부모님은 결국 1년간의 어학연수를 허락했고 나머지 자금을 지원해 주신다고 했다. 끝내 허락을 받았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사실 그 돈을 모으는 기간엔 몸이 정말 고생스러웠다. 나름 힘든 전공 시험 공부하면서 시간 나는 대로 알바를 했었으니까. 그런데도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 있는 건 힘들었던 감정보다는 기대감과 설렘에 휩싸여서 지치지 않을 수 있었던 순간들이다.


한국을 떠나서 해외생활을 하는 상상만으로도 짜릿함을 느꼈다.


딱히 영어를 잘하고 싶다는 욕심도 없었다. 어학연수라는 명목은 내가 한국을 떠나기 위해 부모님을 설득할 좋은 핑계였다. 그저 해외에서 지내는 내 모습을 떠올렸을 때 그 느낌이 좋았다. 그때 왜 나는 한국을 떠나는 상상만으로도 짜릿함을 느꼈을까? 돌이켜보니 해외생활에 대한 내 환상이 내게 찾아온 첫 번째 힐링의 기회였다. 태어나서 20대 초반까지 단 한 번도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인생에 원하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해본 적이 전혀 없었다. 한국 대학입시 제도에 맞춰서 적당히 공부 잘하는 아이로 자라면서 부모님이 좋아할 것 같은 학과를 선택했고, 성적에 맞는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에 들어가니 막상 노는 시간 이외에 나를 재밌게 하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러다가 상상만으로도 재밌을 것 같은 일을 발견했다. 한국을 떠나서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서 살아보는 것이었다. 유럽 국가에서 나 혼자 살아보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즐거움을 느꼈다. 스무 살 초반까지 나는 내게 주어진 것들이 전부인 줄 알았다. 삶에 대한 태도는 매우 수동적이었다. 그러다가 처음 상상만으로도 나를 설레게 하는 무언가를 발견했고 그걸 이루기 위해 매우 매우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언가에 홀린 듯이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 그 설렘 하나만을 따라가고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내가 정말 원하는 무언가를 능동적으로 해본 경험이었다. 뭔지 모를 무언가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일말에 망설임도 없이 간호학과 3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했다. 휴학생은 나뿐이었다. 나는 한국을 떠나 아일랜드로 갔다. 




내 인생 첫 번째 힐링, 삶의 주도권에 대한 unpattern 성공!
주어진 것이 전부인 줄 알고 수동적으로 살아오던 패턴을 깼다. 
내 영혼이 원하는 걸 발견 했고 적극적으로 찾아나서서 행동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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