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이중성과 내가 나를 바라보는 방식”
마음은 참 신비로운 곳입니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모든 경험과 감정을 지켜보는 관찰자 이면서,
동시에 현실 속에서 직접 행동하고 선택하는 행위자 이기도 합니다.
이 모습은 마치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빛의 파동성과 입자성을 떠올리게 합니다.
빛이 관찰되는 방식에 따라 전혀 다른 성질을 드러내듯,
우리의 마음 역시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줍니다.
빛은 뭉치면 입자처럼 집중되고,
흩어지면 파동처럼 퍼져나갑니다.
우리 마음도 그렇습니다.
어떤 목표에 몰두할 때는 하나의 점처럼 또렷하고 강해지지만,
걱정과 잡념이 많을 때는 흐트러진 파동처럼
여러 방향으로 흩어져 혼란스러워지죠.
빛의 이중성이 관찰에 의해 드러나듯,
우리 마음도 선택하는 나와
그 선택을 바라보는 나가 동시에 존재합니다.
무언가를 포기할지 말지 고민할 때,
결정하는 ‘나’가 있고,
그 결정을 평가하며 잘했다 혹은 잘못했다 말하는 ‘또 다른 나’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둘을 매 순간 오가며 삶이라는 현실을 만들어냅니다.
이처럼 마음의 이중성을 이해하면
우리가 왜 후회하고, 왜 자책하고, 왜 흔들리는지
조금 더 선명히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더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앎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현대 사회는 결과와 행위를 지나치게 강조합니다.
좋아 보이는 모습, 인정받는 성과, 타인의 기준에 부응하는 행동…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을 잃기도 하고
집착과 압박에 시달리며 스스로를 몰아붙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그 행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입니다.
왜냐하면 가치라는 것은
대상이 스스로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라보는 사람이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당신은 참 멋있어요”라고 말할 때,
그 사람은 당신에게 ‘멋있다’는 가치를 부여한 것입니다.
우리가 달을 보며
“쓸모없다”고 말하는 순간
그 달은 우리의 세계 안에서 ‘쓸모없다’는 가치를 갖게 됩니다.
돈에 울고 웃는 이유도 같습니다.
돈 자체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돈에 ‘가치’를 부여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가치는 어디에서 만들어질까요?
결국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에서 만들어집니다.
만약 내가
“못생겼고, 잘하는 게 없고, 늘 부족한 사람이다”라고 바라본다면
그 시선은 그대로 가치가 되어
나에게 상처의 형태로 되돌아옵니다.
반대로
“나는 멋지고, 능력이 있으며, 할 수 있는 사람이야”라고 바라본다면
그 역시 나에게 힘과 가능성으로 되돌아옵니다.
부모가 자녀를 귀하고 소중한 존재로 보면
그 아이는 소중함을 배우며 자라납니다.
반대로 짐처럼 바라보면
그 아이는 스스로를 짐 같은 존재라고 느끼며 살아가게 됩니다.
결국 우리의 삶은
‘어떻게 바라보는가’에서 시작됩니다.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내면에서 ‘나’를 바라보던 방식이 바뀌면
그동안 나를 눌러왔던 감정과 굴레들도 함께 풀려나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이중성―
행동하는 나와 바라보는 나를 모두 이해하게 될 때
우리는 타인이 부여한 가치에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에게 더 선명하고 정확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우리는 마음속에서 조용히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내가 바라보는 만큼 존재한다.
그리고 그 바라봄은 언제든 다시 선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