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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항의 따뜻한 손

마음의 열쇠

by 팽목삼촌

팽목항에는 '물리치료실'이 있었습니다.


'팽목항에 왜 물리치료실이 필요하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처음에는 저 또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팽목항에서 제가 경험한 스트레스의 무게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그 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술을 찾게 되었고, 밤이면 텐트에서 나와 바다를 향해 목청껏 소리 지르며 하늘을 원망했습니다. 아침에는 새벽기도, 점심에는 미사, 저녁에는 108배를 하며 하루를 마무리했지만, 그 무게를 줄이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오히려 그 무게는 점점 쌓여만 갔습니다. (참고: 저는 '종합종교인'입니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날수록 팽목항 가족들의 스트레스 지수는 극에 달해 모두가 예민해지고 칼날 위에 선 듯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때는 어떤 약도 효과가 없었습니다.


저 또한 방법을 찾아보았지만, 별다른 뾰족한 수가 없어 고민하고 있을 때, 가족 한 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가족분은 물리치료를 받으신 날이면 눈빛이 확실히 편안해지고, 불안감도 뚜렷하게 줄어드는 듯했습니다. 그날은 밥도 잘 드시고 잠도 잘 주무셨습니다. 그분뿐만 아니라 다른 몇 분도 똑같은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저는 그때 불현듯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 이래서 물리치료실이 필요한 것이구나!'
'몸이 풀리면 마음도 풀리는구나!'


약으로도 풀리지 않던 가족들의 몸과 마음을 조금이나마 풀어준 것은 바로 물리치료사님의 마법 같은 손길이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 중에도 경험을 통해 익히 알고 계시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혹시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하신 분이 계신다면, 꼭 한 번 경험해 보시라고 강력히 추천하고 싶습니다. 반드시 물리치료나 안마, 마사지를 받으라는 것은 아닙니다. 산책이나 가벼운 운동 등을 통해 몸을 움직여 딱딱하게 굳은 몸을 풀어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몸도 풀리고, '딱딱'했던 마음도 조금은 '말랑말랑'하게 느껴지실 겁니다.


한 가지 개인적인 팁을 드리자면, 물리치료를 받으실 때 그냥 조용히 받으셔도 괜찮지만, 마음속에 담아두고 차마 다른 사람에게 하지 못했던 말들을 벽에 이야기하듯 주저리주저리 털어놓아 보세요. 용기를 내어, 그렇게 해보시면 효과가 배가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실 수 있을 겁니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런 효과를 경험한 저는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 물리치료를 권하기도 했고, 때로는 물리치료사님을 직접 텐트로 모셔 와 치료를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술에 의존하던 저도 팽목항 주변을 산책하거나 자주 가지는 못했지만, 진도에 있는 산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물리치료사님 덕분에 팽목항에 작은 변화가 생기게 되었죠.


이런 변화는 바지선 위에서도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는 가족 치료는 물론 바지선 위에서 일하는 작업자들과 잠수사들의 건강도 걱정하고 있었고, 물리치료사를 바지선 위에 파견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를 이루기 위해 동분서주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파견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저 나름대로 방법을 찾고 있었지만, 다른 일을 처리하느라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곧 떠날 텐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제게 와서 이렇게 얘기하더군요.

"나쁜 놈들, 충분히 할 수 있는데 방해만 하고 있네요."

"어떤 놈들이요?"

"그런 놈들 있어요."

"제가 도와드릴까요?"

"아니요, 제가 해결해 보고 말씀드리죠."

"그러세요."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그는 결국 파견에 성공했습니다. 허가의 결정권을 가진 상대는 정부 부처가 아니라 그가 속한 물리치료사 협회보다 상위에 있는 협회여서 (최근 뉴스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는 협회)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그는 해결책으로 진도에 상주하고 있던 안산 소속의 한 국회의원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우여곡절 끝에, 파견에 성공했던 것입니다.


결정이 난 후 다음 날부터 바지선에는 물리치료사 협회 소속 봉사자들이 정기적으로 승선하여 치료를 진행하였고, 치료를 받은 잠수사님들도 감사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협회가 철수하는 날까지 가족을 돌보았고, 이후에도 종종 팽목과 목포 신항에 찾아와 봉사하며 헌신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는 저와 동갑이더군요. 목포에 가면 술친구가 되어주기도 하는 고마운 사람입니다. 양수영 물리치료팀장님, 목포에서 또 봅시다.


다음 편에서는 또 다른 특별한 인연에 대해 더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팽목항에는 물리치료사 협회 소속 약 천 명의 봉사자분들께서 귀한 시간을 내어 헌신해 주셨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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