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걱거리며 쓰는 팽목항의 기억

프롤로그)이야기를 시작하면서..

by 팽목삼촌

안녕하세요.

‘팽목삼촌’ 김성훈입니다.

‘팽목삼촌’이라는 별명이 낯설게 느껴지시죠?
“팽목삼촌? 누구야?” 하실 텐데요.
간단히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저는 2014년 4월 16일부터 세월호 참사 현장, 팽목항에서 1,172일 동안 아이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던 사람입니다.


그날,

저는 해남에서 농사 준비에 한창이었습니다.
땀을 흘리며 작업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계속 전화벨이 울리더군요.
처음에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가, 전화가 끊임없이 울려 작업을 계속할 수 없었습니다.

잠시 작업을 멈추고 전화를 확인해 보니 부재중 전화가 여러 건 있었고,

친척 몇 분이 연달아 연락을 주셨더군요.

‘왜 이렇게 전화를 많이 하셨지?’
‘무슨 일이 있으신가?’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는데

또 전화벨이 울리더군요.

“성훈아, 네가 진도랑 가깝게 사니까 빨리 가봐라. 모두 생존했다고 하니 동생을 먼저 찾아봐라.”
“단원고 학생이다. 단원고 학생 중에 찾아봐라.”

그제야 친척 동생이 단원고 학생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날 이후...
6일째 되던 날, 친척 동생은 잠든 모습으로 가족의 품에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곳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가족 텐트에서 서로에게 한 약속, 아이들에게 한 약속...

결국, 다시 팽목항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3년이 될지는 상상도 못 했다는...)


팽목항

많은 국민들께서 팽목항(현재 진도항)에 대해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어떤 사람들이 함께했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시간, 아픔과 기다림 속에서 함께했던 사람들을 기억합니다.

20160829_194516.jpg 묵묵히 팽목항을 지키는 팽목등대

다짐

팽목항을 떠나던 날,

“언젠가는 꼭 팽목의 이야기를 글로 써야겠다” 다짐을 했습니다.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일 년, 이 년..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은 점점 더 불안해지고 조급해졌습니다.

참사 이전의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팽목항에서의 기억과 다짐을 애써 눌러 담고 외면하며 지냈습니다.

그냥 ‘삶’을 찾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외면하면 외면할수록 마치 깊은 늪에 빠져드는 것 같았습니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바닥으로 바닥으로...

기억에 기억을 더하며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 절망하던 중

문득 세월호가 올라오기만을 간절히 바랐던 그때가 떠올랐습니다.

‘반드시 올려야 한다! 올리고 말 것이다!’

두 눈에 핏대 세우고, 어금니 꽉 깨물고 했던 다짐과 희망.

팽목항을 떠난 지 7년여의 세월을 방황하며, 마침내 깨달았습니다.
외면했던 과거를 당당히 마주해야만 그 늪에서 빠져나와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요.
그래서, 이제 용기를 내어 ‘덜걱거리는 기억들’을 하나하나 더듬어 팽목항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합니다.


치유

저는 팽목항과 목포신항에서 보낸 1,172일 동안의 기억을 여러분께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았던 순간들, 함께해주셨던 많은 분의 진솔한 이야기들을 담고 싶습니다.
팽목항에서의 기억을 되돌아보며 제 삶과 마주하고, 일어서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고 싶습니다.

지금도 세월호 가족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그날을 기억하며 치유하려 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제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날을 기억하며 치유하려 합니다.

“또 세월호 얘기야?”
“아직도?”
“이제 좀 그만하지?”

이런 말씀을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저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다만 단 한 분이라도 제 이야기를 통해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이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팽목삼촌’ 김성훈 드림

무지개갈매기.jpg 서망항가는길 조각무지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어떤 단체에도 소속되지 않았으며,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을 솔직하게 이야기할 것입니다.
혹시라도 내용을 곡해하거나 확대·재생산하지 말아 주십시오.
글에 등장하는 분들은 (일부를 제외하고) 실명을 사용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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