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야~쫌~!!

맨손으로 담배꽁초 줍는 소녀이야기

by 팽목삼촌

은혜는 참 인상 깊은 봉사자였습니다.

그녀를 알게 된 건 그날 이후 며칠 뒤였습니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다 보니 바다로 향해 있던 저의 시선이 사람에게로 돌려지게 되더군요.


이야기에 앞서 팽목항을 조금 설명하겠습니다.

팽목항은 크게 두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대합실을 바라보고 오른쪽은 가족들의 구역, 왼쪽은 행정(?) 구역이었습니다.(현재 가족식당과 분향소가 있는 지역)

그런데, 제가 있었던 텐트는 가족구역이 아닌 행정구역에 있었습니다.


당시 팽목항에는 작은 낚시가계와 매점, 민박업소, 대합실 외에는 비바람을 피할 곳이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가족들은 진도체육관에서 지냈고, 일부는 대합실에서, 또 우리처럼 몇 가족은 임시텐트에서 자갈바닥 위에 종이박스를 구해와 깔고 그 위에 앉아 밤을 지새웠었죠.


여하튼 이야기로 돌아와서

봉사자 분들은 가족구역 한편에 마련된 텐트동에서 남녀를 구분하여 생활하시더군요.

행정구역에서 생활하던 저는 상황게시판을 확인하고, 보급품을 수령하기 위해서 하루에서 수십 번을 가족구역과 저희 텐트를 왕복했었죠. (기억을 다시 떠올리기만 하는데도 숨이 턱까지 차오르네요)

그러던 어느 날 봉사자 한 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텐트와 텐트사이를 활기차게 오가던 그녀. 저희 텐트로 찾아와 쓰레기도 치워주고 필요한 물품이 없는지 물어보고 살뜰히 챙기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제가 인사를 건네도 움찔 고개만 끄덕이던 그녀.

(결코 제가 무섭게 생겨서 움찔한 것은 아닐 겁니다~결코~네버~쿨~럭~)

그런데, 하루는 대합실 앞에 있는 커다란 녹색 쓰레기컨테이너 위에 그녀가 보였습니다.

저는 다가가서

"위험하니까 빨리 내려와요! 도대체 어떻게 올라간 거야?"

그녀는 말없이 내려와서 옷을 툭툭 털고 꾸벅 인사를 하고 어디론가 바삐 가더라고요.

'도대체 쓰레기통 안에서 뭐 하고 있었던 거지?'

그렇게 4월이 지나 5월

그 많던 사람들도 점점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하였고,

가족들도 한가족 한가족 떠나가고 어느덧 텐트에는 저만 남게 되었습니다.

제 텐트는 체육관에 있는 가족들이 팽목항에 와 잠시 쉬어가는 대기실로 바뀌고,

가까운 봉사자들도 잠시 쉬어가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음식도 같이 먹고, 이야기도 나누고, 잠깐 쉬었다 갈 수 있는 그런 텐트였습니다.

특히 봉사자 텐트는 워낙 사람들이 많아서 편히 잘 수도 누워 있을 수도 없는 환경이란 걸 알았기에

가족들이 없는 시간이면, 일부러 봉사자들을 붙들어 두기도 했습니다.

그녀도 처음에는 거절하다가 시간이 흐른 뒤에는 제 집(?)처럼 머물다가 가더군요.

(생각해 보니 잔소리도 많이 했던 걸로 기억이 나네요.. 쿨~럭~)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그녀의 얼굴을 본 적도 대화를 한 적도 없었습니다.

그녀는 항상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할 말만 하고 사라지는 봉사자였으니까요.

많이 가까워졌을 때 그동안 궁금했던 점을 하나씩 물어봤습니다.(저는 궁금한걸 못 참는 성격이기에)

텐트 앞을 지나가던 그녀에게


"은혜야 간식 먹고 가라~"

"네~"


"은혜야 근데 너 쓰레기통에는 왜 들어가?"

"분리수거하려고요"

"아~"


"그럼 왜 맨손으로 담배꽁초를 주워? 집게 많잖아?"

"사람들이 맨손으로 담배꽁초를 주우면 그날은 덜 버리더라고요"

"아~~"


"그리고, 또 궁금한 게 있는데 다른 봉사자분들은 마스크를 안 쓰는데 너는 왜 마스크를 쓰고 다녀?"

"제가 웃음이 너무 많아서요. 가족들 앞에서 웃을까 봐..."

"아~~~"


나이는 어리지만(몇 살인지 물어보지도 않았네) 저보다 더 속 깊고 배려심이 많은 어른이었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난 뒤에도 저는 걱정하는 마음에

쓰레기통을 뒤지고 담배꽁초를 맨손으로 줍는 그녀를 볼 때마다 소리쳤죠.


"은혜야~쫌~~!!"


그녀가 언제 떠났는지 기억이 흐릿합니다.

다만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조용히 와서

"삼촌 오늘이 팽목항에서 마지막날이에요. 술만 먹지 말고, 밥 잘 챙겨 먹고, 건강히 잘 지내세요!" 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던 것 만 기억이 납니다.

흠. 그때 제 마음을 제대로 표현 못 한 것이 아쉽네요.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제 마음을 전해봅니다.

"은혜야 그때 너무 고마웠다"

"행복하게 잘 살기를 기원할게"


모든 봉사자분들과 가정에 항상 행복이 가득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팽목항어민.jpg 팽목항과 어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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