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힐링가객 Jun 18. 2024

비행을 즐기는 꿀팁

 방콕에서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모터 공포증이 있다"



 5월 초에 방콕에 왔다. 봄에서 초여름으로 넘어가는 선선한 날씨, 장미가 피어나기 직전에 출국했다. 기억엔 한국의 봄이 남아있는데, 단톡방 친구들 소식을 보니 폭염이 화제다.


 계획한 일정을 소화하고 이제 며칠 있으면 한국으로 돌아간다. 이방인이 되어 낯선 세계를 탐색하는 6주의 시간이 팬에 올린 버터처럼 순식간에 녹아버렸다. 아쉬움과 뿌듯함, 후일의 기약과 연속성의 계획을 안고 퇴소를 준비하고 있다. 순간 이동으로 한국에 돌아갈 방법은 없을까! 언제나 그렇듯 비행 전에는 긴장이 생긴다. 여행은 좋지만, 비행기나 배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은 아무리 애를 써도 편치 않다.  


  비행은 거대한 전동모터 기구에 내 몸을 맡기는 일이다. 생각만 해도 공포스럽다.  나는 그 현상을 내 맘대로 모터 공포증이라 부른다.  눈앞에서 모터가 작동하는 모양을 볼 때면 온몸이 오그라드는 공포를 느낀다. 공포 반응은 전동 모터의 소음만 들려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즉각적으로 일어난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모터만 보면 환장하는 다른 자매와 남동생이 외계인처럼 느껴질 만큼 내 공포는 원초적이었다. 일찌감치 자전거를 섭렵하고 엄마의 스쿠터와 아빠의 오토바이를 차지한 그들과 달리 나는 언제나 내 두 발로 걷거나 뛰었다. 체인이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 몸서리치게 무서워 끝내 자전거도 배우지 못했다.


  세월을 통과하면서 공포심은 어느 정도 극복이 되었다. 덕분에 운전면허증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운전을 시작했을 때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그때까지 억누르고 있었던 질주본능이 드라이브로 폭발해서 나는 한국땅이 좁다고 느껴질 만큼 열심히 돌아쳤다. 내 안에도 자유이동의 원초적 욕구가 왕성하게 살아있다는 걸 알아차렸으며, 이동을 하고 새로운 땅을 밟는 기쁨과 즐거움을 만끽했다. 그렇게 나라 밖 바다 건너의 땅들도 여행하고 싶었다.


 아프리카 지역을 제외하고 4대륙을 다녔으니 돌아보면 적지 않게 여행을 한 셈이다. 하지만 필수적으로 치러야만 하는 비행 과정이 아무리 반복해도 친숙해지지 않는다. 차소리나 오토바이 소리에도 민감하고 기차나 선박의 소음에도 민감한 편이지만 비행의 소음과 공포와 비교할 수 는 것은 없다. 그 때문에 여행은 항상 두려움 너머에 존재하는 거창한 행사다.

  

  아무리 피하고 싶은 일이라도 닥치면 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공포가 살아날 때마다 기도한다. 비행시간이 얼마가 되든. 어쩌면 인생의 막다른 지점이 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짧게나마 내 인생을 돌아보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위험의 요소를 하나님께 맡긴다. 기도를 하고 나면  "사람은 죽기 전까지는 죽어도 안 죽는다"라고 말한 누군가의 명언이 생각난다. 나는 기도의 연장으로 하나님의 뜻이라면, 죽는 것도 또한 좋은 일이라고 고백한다. 그러고 나면 확실히 마음이 평안해진다.






"비행을 즐기는 꿀팁"



 몇 시간이 걸리는 비행시간을 알차고 즐겁게 보내기 위해 나름의 계획을 한다.


 출발 전에 이어폰과 스마트폰을 풀충전 해둔다.


 자리는 될수록 통로가 좋다. 비행시간이 길수록 이건 매우 중요하다. 비행 중 한 시간에 한 번 앉은 채 스트레칭을 한다. 화장실에 갈 때는 최대한 긴 동선을 선택하여 몸을 움직이며 동승자들에게 피해가 안 되는 선에서 스트레칭을 한다. (가족과 동행하는 경우나 한두 시간의 짧은 비행일 경우 창가로 정한다. )


 비행 전에 가벼운 식사를 하고 될수록 기내식은 먹지 않는다. 카페인 음료나 알코올음료도 먹지 않는다. 될수록 꼭 필요한 만큼의 생수만 먹는 것이 속이 편하고 몸이 붓지 않는다.


 여행에서 얻은 사진들과 메모들을 확인하고 정보를 추가하거나 기록들을 점검한다. 이 작업도 몰입할 시간이 필요하고, 여행감성을 유지하고 있어야 내용과 감흥을 충실하게 기록할 수 있기 때문에 비행 중 하기에 적절하다. 여행이 끝나고 제자리로 돌아가면 일상의 일들에 파묻혀 생각도 나지 않는다.


 평소에 보고 싶었던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지 비행 전에 체크한다. 한국에서 태국으로 올 때는 오래전 온 가족이 함께 본 영화 'August Rush'를 보았다. 영어 자막으로 한번, 자막 없이 한번 더 감상했다. 언젠가 다시 보고 싶었던 명화를 찾아 이렇게 되새김질하다 보면 영상예술을 마음껏 음미할 수 있고 몇 시간을 삭제하면서 비행소음을 잊을 수 있다. 폭력적인 잔영을 남기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음악 미술 문학 댄스 등 예술가를 다룬 영화나 과학 스포츠 요리사들을 다룬 영화를 즐긴다. 가끔은 프리윌리 같은 애니메이션이나 소울서퍼 같은 성장드라마 영화도 즐긴다.  


 영화 관람 후 이어폰을 끼고 소음제어 기능을 작동한다. 고요함 속에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여행에서 얻은 소중한 체험과 정보들을 심화하며 여행의 목적을 어느 정도 충족했는지 평가하고, 다음 방문 시  보충하고 싶은 자료 혹은 장소에 대해, 혹은 다음 여행지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본다. 필요하면 메모도 하면서.  


 비행의 공포가 지나가면 해방감도 공포만큼이나 크다. 나는 그 순간을 새로 태어난 것처럼 기쁘게 맞이한다. 그래서 나에게 있어 비행은 삶의 한 기점이 된다.






 이 짧은 글을 쓰면서 이번 비행이 기대로 바뀌는 걸 느낀다. 글쓰기가 주는 선물이다. 글을 쓰면 스스로의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고, 현재 내가 서있는 자리도 정리가 되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래서 아무리 간단한 기록이라해도 글쓰기는 내 안에 잠들어 있는 빛을 꺼내 스스로를 밝힐 수 있는 유용한 도구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유할 수 있는 글을 쓴다는 건 언제나 간단치 않다. 글을 시작해 마침표를 찍는 일련의 과정에는 몰입과 정성이 투여되며 자아라는 무시무시한 검열관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글을 발행하면서 내가 멀티플레이어가 아니라는 걸 인정한다. 매번 서로 다른 주제의 글들을 한결같이 열심히 발행하시는 작가님들을 존경하는 이유다.  



매거진의 이전글 맘 카페 뒤흔든 '그분'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