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힐링가객 Aug 27. 2024

여기는 광-프리카

심술궂은 팔월


 키 큰 활엽수들이 드리워놓은 그늘  밑으로 민소매 원피스를 입은 여인들이 지나간다. 커다란 부채로 얼굴의 머리카락을 펄럭이면서


 바람이 팔월을 통과해야 하는데 절기 안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습도에 갇혀 빠져나가지 못하고 열풍만 흩뿌릴 뿐이다. 팔월은 심술궂은 아이처럼 막무가내다. 하지만 이 더위 덕분에 태풍이 근접을 못하고 이웃나라로 피해간다고 하니 예사롭지 않은 심술이긴 하다.


 비등점을 끌어올리는 한낮의 매미소리. 마치 집안에서 우는 같다. 아니 안에서 울어도 이렇게 시끄러울 수는 없을 것 같다.


 아프리카보다 뜨겁다는 한국의 여름. 대구가 덥다고 대프리카라고 불렀는데, 여기는 경기도 광주이니 광-프리카라고 불러야 할까 보다.


 비만 국지성으로 내리는 것이 아니라 올해는 더위도 국지성이다. 최고 기온을 기록하는 지역들을 보면 의외의 지명들이 등장한다. 온열질환자들의 비보도 심심찮게 들린다. 입추 말복 처서가 지났지만 여전히 덥고 습하다.


  올해 나는 긴 여름을 보내고 있다. 5월과 6월을 태국에서 따끈하게 보내고 한국에서 7월과 8월을 보내고 있으니 느닷없이 뜨거운 여름을 4달 꼬박 통과하는 중이다.


 덕분에 겨울보다는 여름이 낫다고 여기던 생각에 변화가 생겼다. 더위도 추위만큼이나 견디기 힘들다. 나이 탓인지도 모르겠다. 체질도 변하고 노안을 비롯한 노화 증상들이 낯설고 불편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러니 점점 겸손해질 수밖에.


 중년이 무겁다. 두루 살피고 챙길 일들이 많아져서 윗세대와 아랫세대를 지지하는 중추가 되었음을 느낀다. 수많은 역할 중 연약해지는 부모님을 케어하는 일은 버겁고 슬프다. 오십 대가 되면 제일 먼저 자신을 돌보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진짜 공감이 된다.


  태국에서 돌아온 지 한 주가 지나기 전에 친정엄마가 골절사고로 수술을 받으셨다. 골다공증이 진행 중이던 엄마의 뼈는 낙상으로 심하게 부서졌다. 어려운 복합골절 수술 후 입원치료를 하셨고, 깁스를 하고 퇴원했지만, 회복과 재활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코로나 백신 후유증으로 건강을 잃으신 아버지의 간병을 맡고 계셨기에 엄마의 사고는 자녀들이 총출동하는 계기가 되었다. 부모님의 병원 일정에 맞춰 두 달의 시간이 정신없이 흘러갔고, 상황은 현재 진행 중이다. 바지런한 농사꾼으로 살아오신 부모님은 올해도 예외가 없어서 붉은 고추와 오이 가지 호박 쌈채소들이 당장 일손 내놓으라고 아우성이었다. 농사일을 잘 아는 언니는 애가 타서 틈만 나면 밭으로 달려갔고 동네 이웃분들도 손을 보태주셨다.


 부끄럽지만 농부의 딸로 살아온 나도 난생처음 고추를 땄다. 하지만 일손 없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돌아서면 고추는 또 붉어져 있었다. 풋고추를 씻어서 건조기에 말리는 일도 처음 해보았다. 어릴 때 해 질 녘이면 널어놓은 고추를 걷었던 기억이 났다. 하지만 세물 고추를 따도록 맑은 날이 거의 없는 아열대성 우기여서 태양초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다. 대형 건조기가 없었다면 곯아서 못쓰게 될 뻔했다.


 나는 그저 경험이 풍부한 언니의 뒤를 졸졸 쫓아다녔다. 어린시절로 돌아간것 같았다. 의지하고 상의하고 합력할 형제자매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새삼스레 깨달았다. 혼자서는 엄두가 안나는 일도 같이 하면 어느새 끝을 보게 되는 것이다. 사정을 배려하면서 교대로 역할을 분배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덕분에 조금씩 일상이 회복되고 있다.  


며칠사이 매미소리에 풀벌레 소리가 믹서 되더니 이제 오케스트라 연주곡처럼 음색이 다양하다. 주고받는 돌림노래 끝에 풀 베는 예초기 모터소리까지 끼어든다. 오늘은 어떻게든 브런치에 소식을 올려보자 작정했지만 오늘도 조용히 글쓰기는 틀렸다. 카페로 피난이라도 가야 할까 보다. 

매거진의 이전글 비행을 즐기는 꿀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