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테이너 3

단편소설

by 힐링가객

마을 이장 강씨는 사람들이 제각기 떠들도록 한참을 말없이 듣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분을 내며 심하게 퍼부었지만 저항도 변명도 없이 묵묵부답인 이장 앞에서 이내 잠잠해졌다. 이장은 돌아서서 마을회관으로 걸어갔다. 사람들이 어수선하게 그의 뒤를 따랐다. 회관에는 동네 노인들도 모여 있었다. 회관으로 들어선 이장은 얼추 말을 들어야 할 사람들이 다 모였다고 판단하자 입장을 털어놓았다.


“명색이 마을 이장인 내게 우선은 책임이 있는 거 인정합니다. 허지만, 제 마음 같아선 이쯤에서 누군가 컨테이너를 쓰게 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대로 두면 못쓰게 될 것이 뻔하고, 그렇다고 서로 쓰겠다는데 하나밖에 없는 컨테이너를 두개 세 개로 쪼갤 수도 없고, 뭣보다 학생들이 자꾸 거기 와서 술도 퍼마시고 싸움질도 하는 통에 애물단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관리 기간이 끝나면 시에서 수거해 갈 물건이라 제가 마음대로 처분할 수도 없는 거였습니다.”


강씨는 중요한 이야기를 하기 전 뜸을 들이듯 좌중을 신중하게 둘러보고 말을 이었다.


“서로 터놓고 말을 안 해 그렇지, 다들 욕심을 내는데, 어느 한 집이 쓰게 되면 동네 인심만 사나워질 것이 뻔하고, 당당히 세를 내면서 쓰겠다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고요, 우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야박해졌습니까, 겨우 이따위 일로 험한 말이 오갈 만큼 우리 마을 인심이 타락해서야 쓰겠습니까, 오죽하면 저걸 집이라고 식솔들을 데리고 왔으려고요. 차라리 꼭 필요한 사람이 들어오면 일꾼도 없는데, 마을에 젊은 사람도 늘고 좋지 않겠습니까? 내가 가서 알아보리다. 대동회비라도 얼마씩 내놓을 수 있는지, 그렇게만 되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 아닙니까?”


강씨의 말에 잠시 수군대던 사람들이 잠잠해졌다.


“그럼 그럼, 강씨 말 하나도 틀린 거 없네. 우리 이장이 어떤 사람인디 이렇게 실례를 허믄 쓰나, 치열한 경쟁을 제치고 쓰레기 매립장을 유치한 덕분에 우리 동네가 그동안 근동에서 제일로 혜택을 받었잖남. 말이야 바른말이지 젊은 사람 다 떠나는 시골에 아 딸린 젊은 부부가 들어왔는데, 이건 차라리 경사라, 암만.”


평소 어지간해서는 말이 없는 지게차 심씨의 추렴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별다른 이견이 없는 양 이장에게 길을 터주는 사람들의 얼굴이 한결 가볍게 풀어져 있었다. 이장은 그길로 곧장 컨테이너를 향해 오토바이를 달렸다.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명색이 마을의 이장인 그의 허락도 없이 저질러진 일이지만 심씨 말대로 잘된 일이었다. 누군가 버려진 컨테이너를 써준다면 더 이상 그것을 단속하지 않아도 되는 셈이었다.

매립 공사가 끝난 뒤에 심지라도 뽑아서 동네 사람 중 누군가가 가져가도록 했어야 했다. 살구나무집 영감과 슈퍼 여자는 집까지 찾아와 쓰게 해달라고 졸랐다. 관리 기간이 끝나면 시에서 수거할 거라는 그의 말에 욕심을 내던 사람들은 슬며시 물러났지만 정작 그것은 엉뚱한 용도로 쓰였다.


지난봄 날씨가 꽤 따스해졌을 무렵, 밭에 갔다가 우연히 컨테이너를 들여다본 강씨는 해괴한 풍경을 보았다. 여러 명의 학생이 컨테이너 바닥에 나동그라진 채 잠들어 있었다. 단단히 물려있던 컨테이너 자물쇠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으로 보아 누군가 일부러 제거한 것이 틀림없었다. 눈에 익은 교복을 알아보는 순간 그는 긴장했다. 잊어버릴 만하면 한번씩 뉴스를 타는 환각제를 떠올렸던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들놈을 포함해 네 놈이나 퍼질러 잠들어 있었다. 그중 하나는 슈퍼집 딸이었다. 말하자면 아이들보다 몇 살 많은 처녀애랑 아들 친구들이 혼숙을 하고 있는 꼴이었다.


슈퍼집 딸은 몸뚱이만 탐스럽게 자란 좀 모자란 아이였다. 다니다가 쉬다가 하면서 스무 살이 되어서야 초등학교를 졸업한, 근동 마을에서는 다 아는 아이였다. 멀건 대낮에 학교도 가지 못할 만큼 취해서 뒹굴고 있는 녀석들을 깨워 호통을 쳤다. 아들놈이 끼어 있어서 몹시 마음이 쓰였다. 성에 민감한 녀석들에게 슈퍼집 딸내미가 문제의 중심이 된 건 아닐까 하는 불길함 때문이었다.


그날부터 컨테이너는 그가 단속해야 할 우범 지역이 되었다. 밤이나 낮이나 분별없이 컨테이너에 와서 뒹구는 슈퍼집 딸내미를 달래 집으로 들여보내는 일도 그에게 맡겨진 일과가 되었다. 여름이 되니까 여자애는 거의 벗은 몸으로 컨테이너에 들어와 있기 일쑤여서 여자애를 달래는 데 점점 더 애를 먹었다. 모자란다고는 해도 무르익은 몸 냄새를 물씬 풍기며 아무 저항도 없이 젖가슴이며 허연 허벅다리를 내보이는 여자애는 굶주린 남자에겐 위험한 존재였다.


자궁암 수술을 한 뒤 잠자리를 거부하는 아내 때문에 점점 더 접촉이 뜸해져가는 강씨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여름 들어 어느 날 컨테이너를 들여다보니 여자애가 옷을 홀랑 벗고 잠들어 있었다. 강씨는 성숙할 대로 성숙한 여자애의 몸을 마음놓고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여자애가 벗고 있으니 들어가 깨우는 것도 멋쩍고 두렵기도 해서 나중에 일어나 옷이나 입으면 들여보내자 하고 들로 나갔다. 하지만 들에 있는 동안 누가 와서 들여다보지나 않을까 걱정되었다. 두어 시간 후에 돌아와 보니 여자애는 깨어 있었다. 여전히 옷을 입지 않은 채였다. 남자는 어서 옷 입고 집에 들어가라고 호통을 쳤다. 여자애는 밍밍한 웃음만 보일 뿐, 말을 듣지않았다. 그런 일은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


슈퍼집 여자는 슈퍼를 닫는 시간까지 딸을 찾는 법이 없었다. 어디서 먹고 다니든 애물로만 여기고, 자신은 가게에서 되는 대로 막걸리 한잔에 밥 때를 때우는 식이었다. 마을에서는 누구네 집이든 여자애가 눈에 띄면 밥을 먹여주었다. 사정이 그러하다 보니 방치에 길든 여자애는 점점 더 자신이 편한 곳을 찾았고 컨테이너의 자물쇠가 없어진 이즈음에는 컨테이너를 애용하게 된 것이다. 때론 여자애를 무서운 얼굴로 쫓아 보내거나 컨테이너에 방치해둘 때도 있었지만, 여자애를 돌려보내거나 방치하는 것이 불가항력인 날이 결국에는 오고야 말았다.


어느 날 여자애가 그의 손을 끌어 자신의 젖가슴을 문지르면서 키득댔는데, 그게 그를 미치게 했다. 그것이 부끄러운 일이라거나 혹은 특별한 관계라는 걸 전혀 분별하지 못한 채 그저 스킨십을 갈구하는 여자애한테 그의 이성과 윤리 의식은 어이없이 굴복했다. 두려워하고 경계했지만 실수를 저지르게 된 거였다. 그런데 여자애의 반응이 의외였다. 노상 그래 왔던 것처럼 익숙하게 일을 치러낸 것이다. 게다가 관계 후 그 어떤 티도 내지 않았고,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컨테이너에 와서 뒹굴고 있는 거였다. 며칠 동안 그 자신의 양심에 자신의 잘못이나 죄가 아니라고 항변해야 했지만 같은 상황이 되면 결과는 같았다. 낯뜨겁게도 그의 의지는 더 이상 아무 효력도 없었다.


며칠 전 밤에도 그런 상황이었다. 강둑에서 인기척을 듣고 서둘러 나갔을 때, 강둑 아래를 걷는 한 사내를 보았다. 틀림없이 자신을 보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불편한 생각을 하면서도 마을 사람이 아닌 것이 틀림없어 별일이야 있겠느냐 생각했던 터였다. 하지만 사내는 컨테이너를 점유하며 그렇게 존재감을 드러냈다. 지게차 심씨에게 컨테이너를 옮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미리 논의했던 터였지만, 상황이 생각보다 빨리 닥쳐와 좀 당황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제 컨테이너에서 벌이던 일이 끝났다는 것에 그는 먼저 안도했다. 다만 마음 한쪽에 남아 있는 그날 밤의 일이 그를 곤혹스럽게 했다.


오토바이 소리에도 불구하고 컨테이너에서는 인기척이 나지 않았다. 강씨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불볕 같은 더위 속에 컨테이너는 구워질 듯이 놓여 있었다. 그늘 한 점 없는 컨테이너 주변은 아이들이 지내기에는 너무 뜨거웠다. 천막이라도 씌워서 그늘막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씨가 막 그런 생각을 하면서 컨테이너를 돌아보고 있을 때, 아이를 목말 태우고 사내가 강쪽에서 올라왔다. 먼저 오토바이를 본 아이가 소리를 질렀다.


“오토바이다. 아빠, 오토바이 아찌 왔어.”


아이의 호기심과는 달리 사내는 무심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강씨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마을 이장 강이라고 합니다. 뭐, 이왕 우리 마을에 들어왔으니까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첫인사치고 호의적인 강씨의 말에 사내도 긴장을 풀고 마주 인사를 건넸다.

“경황없이 들어와 죄송합니다. 마을에 상의하고 오는 것이 순서인데…….”

“괘않습니다. 다만 컨테이너가 마을 공동 재산이라, 우선 살아보시고, 살 만하시면 대동회에 찬조나 좀 해주시면 별 문제는 없을 겁니다. 뭐 당장 내라는 건 아니고요,”

“예, 사정을 봐주시니 고맙습니다. 내야지요. 어찌됐든 잘 부탁드립니다.”

사내가 고개까지 숙이며 인사했다.

“앞쪽으로 천막이라도 치면 낮에 그늘도 좀 생기고 아이들 놀기도 좋겠는데요, 여름날이 원체 뜨거워서요.”

강씨가 턱짓으로 컨테이너를 가리키며 말했다.

“예, 뭐, 차차 해야지요.”

“그럴 게 아니라 쓰고 남은 천막이 집에 좀 있는데, 그거라도 우선 칩시다.”


생긴 것하고는 다르게 시원하게 호감을 내비치는 이장 강씨의 말에 사내는 긴장이 누그러졌다. 마을로 들어간 강씨가 즉시 파란색 비닐 천막과 지지대로 쓸 쇠파이프 등을 가져왔다. 천막을 펼치니 면적이 꽤 넓었다. 장마를 대비해 우사 지붕에 치고 남은 거라고 했다. 강씨는 익숙한 솜씨로 지지대를 세워 고정했다. 사내는 강씨를 도와 컨테이너 뒤편에서 앞쪽으로 제법 넓게 지지대를 세우고 천막을 쳤다. 미안해하면서도 흡족해하는 사내를 보면서 강씨는 마음 한쪽을 불편하게 했던 그날 밤의 수치감에서 어느 정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강씨가 돌아간 뒤에도 꼬박 이틀 동안 사내는 컨테이너를 손보았다. 아내와 아이들이 컨테이너에서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꼼꼼히 챙겼다. 싱크대 배수로며 수도, 전기를 점검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강씨가 비닐 천막을 쳐준 덕분에 제법 서성댈 그늘까지 확보한 셈이었다. 컨테이너 사용료를 내겠다고 확답을 주길 잘한 거였다. 이장이 돌아간 뒤 지게차 심씨가 찾아와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라도 이장이나 자기한테 이야기하라고 당부까지 하고 돌아갔다.


다음날 딸내미를 데리고 슈퍼에 갔을 때 마을 아낙들의 눈길이 전과 다르게 푸근해진 걸 볼 수 있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마을 사람들과 지내는 데 별 어려움이 없을것 같아 안심이 되었다. 밤새 아내에게 단단히 일러두고 다음날 아침 범수 형을 찾아갔다. 그날부터 화물차를 타고 다니며 같이 일을 했다. 형은 짐이 많거나 적거나 상관하지 않았고, 멀리까지 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내에게 물류창고나 이삿짐센터에서 일하는 것이 벌이가 낫다고도 했다. 사내는 어디든 정기적인 수입이 있는 곳이 좋다고 했다.

백방으로 부탁해서 어떻게든 일자리를 알아봐주겠다는 범수 형의 약속을 뒤로하고 나흘 만에 사내가 컨테이너로 돌아왔을 때 식구가 늘어 있었다. 아내가 두 아이를 데리고 슈퍼에 갔더니, 이장 집에서 딸애에게 강아지를 한 마리 주었더란다. 사내는 이전보다 훨씬 마음이 놓였다. 아내의 얼굴색이 한결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성품이 밝고 목소리가 큰 딸애의 조잘거림을 마음껏 들을 수 있어 좋았다. 강아지 이름을 예삐라고 부르며 딸애는 강아지와 뒹굴었다. 사내는 가족이 함께 머물 수 있는 컨테이너가 있는 것에 감사했다. 그리고 아내에게 줄 지폐가 있다는 것에 흐뭇했다.


하룻밤을 머물고 사내는 일주일 혹은 열흘 안에 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다시 범수 형을 찾아갔다. 물류창고 일을 하게 되면 좋으리란 기대가 있었다. 이제부터 모든 것이 잘 풀리게 될 거라는 확신도 들었다.


마을은 캄캄했다. 슈퍼도 문을 닫고, 마을 길은 가늠할 수도 없이 어두웠다. 열흘 만에 돌아오는 사내는 마음이 몹시 다급했다. 영감네 셋방보다는 덜하지만, 날짜가 지날수록 식구들을 강둑의 컨테이너에 두고 온 것이 걱정되었다. 비가 내리자 그 걱정은 공포가 되었다. 지대가 높아서 강둑이 범람할 가능성은 없었지만, 컨테이너가 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환상이 자꾸만 오버랩 되었다. 오후부터 내린 비에 마을 전체가 정전된 것 같았다.


가로등 하나 없는 길을 더듬어 컨테이너로 가면서 사내는 몇 번이나 고인 물에 발이 빠져 손으로 땅을 짚었다. 그때마다 손에 든 고기 봉지 안에 흙물이 들어간 건 아닐까 신경이 쓰였다. 화물차를 며칠 따라다니다가 범수 형 아는 사람의 소개로 물류창고에 들어가게 되어 수당이 붙는 주말 근무까지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깜깜한 마을을 보면서 휩싸인 불길한 생각은 윤곽만 잡히는 강둑길로 들어서자 이상한 냄새로 다가왔다. 비가 오니까 동네를 통과한 수로에서 온갖 냄새가 올라오는 모양이었다.


그는 컨테이너가 보이는 곳에서부터 딸아이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컨테이너가 있는 강가는 안전해 보이지 않았다. 비는 거의 그쳤지만 여울물 소리가 그의 목소리를 방해했다. 그는 이번엔 아내의 이름을 불렀다. 그가 컨테이너에 다가서며 소리쳤을 때 문 안쪽에서 낑낑대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문을 여는 순간 강아지가 튀어나오더니 내처 달아났다. 미처 잡을 수 없는 속도였다. 놀란 그의 입을 아내의 손이 막았다.


“예은이 깨겠어요.”

“어떻게 된 거야, 별일 없는 거지?”

“정전이라 그래요. 오후 내 볶아치다 이제 겨우 재웠어.”

“하필 정전이야, 알았음 양초라도 사 올걸. 마을 슈퍼도 문을 닫았더라고.”

“할 수 없지 뭐. 근데 일자리는 괜찮아요?”

“당신만 애들하고 잘 지내주면 될 것 같아. 물류창곤데, 사람들도 좋고 일도 할 만해.”

“잘됐어요. 들어가요.”

“강아지가 어딜 갔지? 예은이가 찾을 텐데.”

“아침에 찾아보면 돼요. 강아지 있어도 잘 잤는데, 오늘은 어찌나 끙끙대고 달아나려고 하는지 성가셔서 애먹었어요. 그 녀석 도망갈까 봐 잠을 못 자고 있었는데, 결국 달아났네.”


사내는 후유 긴장을 풀어냈다. 말이 많아진 아내를 보니 걱정은 기우였다는 생각이 들면서 노곤해졌다.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서서 아내가 이끄는 대로 발을 내디뎠다. 딸애 머리맡에 앉자마자 셔츠를 벗었다. 집에 돌아왔다고 생각하니 몸이 물에 젖은 솜방망이처럼 무거웠다. 머리만 땅에 닿으면 금세 코라도 골 것 같았다. 언제 돌아왔는지 달아났던 강아지가 문밖에서 낑낑댔다. 밖에다 재우기엔 너무 작아 보인다거니 비가 그쳤으니까 괜찮다거니 아내와 입씨름을 하는데 딸아이가 뒤척거렸다.


사내는 딸아이 곁에 누워 이름을 부르며 달랬다. 꿈이라도 꾼 모양 종알대던 예은이가 사내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손으로 얼굴을 더듬다가 까슬한 턱을 만진 딸애는 아빠라는 걸 알아채고는 바스락거리며 일어났다. 아내가 아이를 달래며 토닥였다. 불을 켜달라고 보채는 딸아이에게 아내가 엄한 목소리로 나무랐다.


“예은이가 아까 플래시 건전지 다 써버렸잖아. 아빠 지금 아파서 쉬어야 해. 어여 코 자.”


엄마의 완강함에 예은이의 보채는 소리가 잦아들었다. 퀴퀴한 냄새가 났다. 강둑으로 접어들면서 맡았던 냄새와는 좀 다른 냄새였다. 모든 긴장이 풀리면서 그는 정신없이 잠에 빠져들었다. 잠은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 깊이로 그를 데려가려는 듯 무거웠다. 잠결에 자지러지는 아기 울음소리와 아기를 밟았다고 딸애를 나무라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눈이 떠지지 않아 손짓으로 딸아이를 불렀다. 하지만 어두워서 그의 손짓은 보이지 않았다. 아이를 부르는 그의 목소리도 입속에서 녹아버렸다. 잠시 후 딸애 울음소리가 들렸다.


“예삐가 울어, 예삐 들어오라고 해. 엄마 예삐 문 열어줘.”


예은이가 강아지를 찾으며 빨리 불을 켜달라고 소리 질렀다. 피곤한 아내의 목소리가 딸애를 달래며 딱 한 번만이라고 다짐을 받았다. 언제나 딱 한 번만이라고 단서를 다는 아내의 목소리에 빙그레 웃으며 그는 질긴 덤불처럼 끈적거리는 잠에 몸을 맡겼다. 잠자리에 예삐를 들여오려면 발이라도 닦아주어야 된다고 투덜거리며 아내가 일어나 싱크대로 갔다.


성냥불이 없어 가스버너를 켜야겠다는 아내의 말이 정적 속에서 들려왔다. 순간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환한 빛이 그의 눈으로 떨어졌다. 아내의 것도 아이의 것도 아닌 아우성이 바늘처럼 그의 귀에 꽂혔다. 정신을 수습할 사이도 없이 엄청난 고통이 그를 덮쳤다. 다급한 목소리로 예은이를 불렀다.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눈도 뜰 수 없었다. 그는 방향도 모른 채 꿈틀대다가 혼절했다.


그가 깨어났을 때 살가죽이 타는 고통 속에서 그는 거칠게 고함치는 사람들의 소리를 들었다.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때 그는 사무적인 목소리를 들었다. 갓난아이가 이미 질식사했다는 말이었다. 숯검정이 된 채 마을까지 달려간 여자도 생사가 불투명하다고 누군가 말했다. 목과 가슴에 치명적인 화상을 입은 여자아이 역시 생명이 경각에 달렸다는 말에 사내의 의식이 요동했다. 그는 잠긴 목을 열어 신음을 토했다. 그러곤 믿을 수 없게도 모든 고통이 뚝 멈췄다. 잠시 후, 몸의 고통을 넘어 견딜 수 없는 절망이 사내의 심장을 조여왔다. 헉, 헉. 점점 더 세차게 조여오는 고통 속에서 사내는 필사적으로 쥐고 있던 의식의 끈을 놓아버렸다.


죽은 자들의 구조를 구조라고 해야 할지 알 수 없었지만 사내의 가족은 그렇게 구급차에 실려갔다. 파출소에서 간단한 경위를 조사한 경찰이 서성대는 마을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무섭도록 조용한 밤이 느리게 흘러갔다. 새벽부터 경찰이며 시 직원들이며 방송사 기자들이 밀어닥쳤다. 마을 사람들은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발 사고를 보도하는 아침 뉴스를 마을회관에 모여서 보았다.


시작은 전쟁 같았지만, 이상하게 지루하고 허무한 하루가 지나갔다. 여전히 어수선한 마음으로 주민들은 약속이나 한 듯 마을회관으로 모여들었다. 막연한 두려움 속에서 무언가 해명되길 바라면서.


저녁 뉴스에서는 쓰레기 매립 지역에서 관리용 컨테이너를 수거하지 않아 임시 거주하던 일가족이 폭발 사고로 모두 사망한 사건이 꽤 자세히 보도되었다. 매립지에서 분출된 유독가스가 비로 인해 컨테이너에 고여 있다가 가스버너에 불을 붙이면서 연쇄 폭발하여 일어난 사고로 추측했다. 늦은 시간 버너에 불을 켤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마침 정전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거였다.


“마을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컨테이너 주변에 비 막이용 비닐 천막이 둘러쳐져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이 비닐 천막이 통풍을 막아 산소보다 무거운 유독가스가 컨테이너를 중심으로 고이게 되면서 큰 사고로 이어졌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뉴스 앵커의 마지막 말은 마을 사람들 누구도 모르게 이장 강씨의 마음에 깊이 박혔다. 마을회관에 모여 앉은 주민들은 불행이 비껴간 자리에서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시와 당국에 환경관리 보상금을 청구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이장 강씨는 모여 앉은 사람들의 의견을 귀담아들으며 또다시 자신이 나서서 할 일이 생겼다는 것에 대해 알 수 없는 열정을 느꼈다. 더위에도 아랑곳없이밤이 늦도록 마을회관엔 불이 밝혀져 있었다. 안전관리를 위한 보상금에 대해 사람들은 각자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였다. 마치 잔칫날처럼 설레는 밤이었다.


강가에는 까맣게 녹아 형체를 알 수 없어진 검은 물체가 놓여있었다. 털이 그을려 까칠한 강아지 한 마리가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냄새를 맡으며 그 주변을 서성댔다. 이따금 강아지는 심하게 몸을 떨면서 환하게 불이 켜진 마을회관 쪽을 건너다보았다. 하지만 강가,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단편소설 [컨테이너]를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 글은 소설집 <도마뱀이 숨쉬는 방>에 실핀 8편의 소설 중 첫번째 작품입니다.

현재 일상힐링 레시피를 연재를 하고 있는데, 새로운 연재소설은 새해에 시작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구독자님과 작가님들께 안부 전합니다. 어느새 겨울로 접어들었네요. 행복한 연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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