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사내는 슈퍼에 들러 상추를 조금 사기로 했다. 상추에 싸지 않으면 회나 고기를 먹지 못하는 아내를 위해서였다. 분유와 쌀도 샀다. 버스정류장이 있는 큰길에서 벗어나 창고며 공장들이 늘어서 있는 골목길을 한참 걸어갔다. 3년이 넘게 살았지만 전혀 익숙해지지 않는 길이었다. 시큼한 생활하수가 흐르는 도랑을 끼고 공장들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어두컴컴한 골목으로 접어들자마자 짐을 잔뜩 실은 덤프트럭 한 대가 달려 나왔다. 타일 공장 마당으로 급하게 걸음을 피하고 트럭 꽁무니를 돌아보았다. 저렇게 큰 트럭이 지나갈 때면 좁은 골목이 꽉 차서 갓길 따위는 없는 위험한 골목이었다. 골목에서 차를 만날 때마다 딸아이의 뜀박질이 생각나 오금이 저렸다.
그가 이 골목에 사는 동안 사고를 당한 아이가 세 명이나 되었다. 그 중 두 명이 초등학생이었고 한 아이는 불과 다섯 살짜리였다. 모두 보호자 없이 다니다가 일을 당했다. 동생이 태어난 후 부쩍 딸애 혼자 방문 밖으로 나가는 일이 많아졌다고 아내는 안달을 했다. 그가 집에 있을 때조차도 그런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고 그때마다 아내는 파랗게 질려서 뛰어나갔다.
허리를 앓는 아내가 하루에도 몇 번씩 예은이를 뒤쫓는 것이 진땀나는 일임을 모르지 않았다. 둘째 아이 임신 중에 자궁 근종이 생긴 아내는 임신 중이라 투약을 하지 못하다가 출산과 함께 수술을 받았다. 그 후 변변히 몸조리를 하지 못한 것이 만성 요통의 원인이 되었다. 산부인과에서는 몇 달 교정운동을 하거나 한 번 더 출산을 하는 방법이 있다고 했을 뿐이었다.
병원에 갈 때마다 받아온 처방전이 방 안에 굴러다녔다. 수중에 돈이 없으면 처방전도 휴지조각일 뿐이었다. 아내는 때때로 자면서도 진땀을 흘리며 신음을 삼켰다. 조팝나무 꽃처럼 가늘고 싱그러웠던 아내는 더 이상 희거나 푸르지 않았다. 바랜 창호지처럼 누렇게 뜬 얼굴에 점점 가슴뼈가 드러나게 말라가고 있었다.
그는 알수 없는 분노로 어금니를 조여 문 채 걸음을 서둘렀다. 손에서 부딪치는 비닐봉지가 말할 수 없이 비루해서 한순간 패대기치고 싶은 걸 꾹꾹 다잡아 눌렀다. 철 대문 앞에 다다르자 안에서 딸애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콧마루가 씀벅거렸다.
어둑한 마당 안은 고요했다. 사내는 조용히 대문을 밀고 통로나 다름없는 마당으로 들어섰다. 알루미늄 새시에 어른대는 아내의 그림자가 보였다. 부엌문을 흔들자 아내가 잠금 고리를 벗겼다. 흠칫 놀란 표정으로 그를 끌어들인 아내가 밖을 둘러보고 조심스럽게 새시를 닫았다. 아내가 먼저 방에 들어가서는 딸애에게 주의를 주었다. 소리 지르지 말고 아빠를 부르지도 말라는 웃기지도 않은 주문이었다. 딸애는 무슨 놀이라도 하는 줄 알고 재미있다고 귓속말을 소곤대며 파고들었다.
사내는 딸애를 한번 안아주고 아내에게서 작은아이를 받아 안았다. 비닐봉지를 받아든 아내가 보일 듯 말 듯 웃었다. 좁은 방 안을 가로질러 길게 널어놓은 기저귀를 걷어놓고 아내에게서 아기와 따끈한 우유병을 받았다.
“잠깐 좀 누워. 우유 먹여서 이놈 재워놓고 예은이랑 밥 먹지 뭐.”
젖병을 빠는 아기의 숨소리를 들으면서 아내가 그의 옆에 허리를 펴고 누웠다. 관심을 뺏겨버린 딸애가 그의 어깨를 타고 올라왔다. 사내가 딸애를 달래보았지만 딸애는 아랑곳없이 동생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할 수 없이 누운 아내 품에 아이를 내려놓자 제 엄마한테서 아기를 밀어내며 심술을 부렸다. 사내가 주머니에서 천 원짜리 지폐를 꺼내자 딸애의 관심은 금방 지폐로 쏠렸다. 돈의 교환가치를 이제 막 알아채기 시작한 딸애에게 천 원짜리 지폐는 곧 달콤한 사탕이나 아이스크림이었다. 딸애가 내일 날이 밝으면 사러 가자고 불러대는 이름 중에는 사내가 들어보지 못한 것들도 있었다. 그게 뭐니? 하는 표정으로 아내를 돌아보자 아내가 애매한 표정으로 딸애에게 눈짓을 했다.
우유를 먹은 아이가 잠드는 것과 동시에 아내도 잠들어버렸다. 딸애를 부엌으로 데리고 나와 밥을 안쳤다. 아빠를 독차지한 딸애가 이것저것 쫑알댔다. 그는 얄팍하게 썬 돼지고기를 간장 양념으로 볶아 냈다. 달달한 냄새가 허기를 불러와 그는 거의 실신 지경이었다. 수돗물을 한 사발 들이켜고 나서야 공복인 채 하루를 보낸 것이 떠올랐다. 그는 서둘러 상추를 씻고 밥상을 차렸다. 언뜻 너무 조용해서 돌아보니 딸애가 방문에 기댄 채 졸고 있었다. 딸애를 안아 올리자 쌔근대는 입에서 비릿한 쉰내가 맡아졌다. 그는 개수대 수돗물로 딸애의 입가를 씻겨주었다.
아내와 딸애가 저녁밥을 달게 먹는 걸 보니 코끝이 시큰했다. 아무렇지 않은 듯 고기를 한 점 입에 넣고 아내의 눈빛을 받아냈지만 삼키기 힘들 만큼 혀뿌리가 아파왔다. 그는 일어나 방을 나왔다. 부엌으로 내려서는 그의 등뒤로 딸애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아빠 쉬하러 가?”
언제 다시 아빠가 사라질지 알 수 없어 불안한 딸애가 동의를 구하고 있었지만 아내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는 마당으로 나가지 못하고 부엌 새시문 앞에서 감정을 수습했다.
“이사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이렇게 들볶이지 않아도 되는 곳이야.”
품속에서 잠든 딸애를 눕혀놓고 그가 말을 꺼냈다. 아무 기척없이 아기를 재우던 아내가 살며시 그를 돌아보았다. 아내의 눈이 이사 비용과 밀린 방세를 걱정하고 있었다.
“주인집엔 내가 알아서 할게. 일단 좀 미뤄놓고 이사부터 하지 뭐.”
무슨 말인가 건너오길 기다렸지만 아내는 깊은 생각에 빠진듯 미동도 없었다. 아이들이 번갈아 내쉬는 규칙적인 숨소리뿐 고요했다. 그가 이 생각 저 생각 궁리하고 있는데 가라앉은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 없는 곳이면 좋겠다. 차도 공장도 없는 곳.”
“무인도처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장난스레 되묻자 아내가 픽 웃었다. 딸애를 벽 쪽으로 떼어놓고 아내에게 팔베개를 해주었다. 말랑한 아내의 몸이 그의 품안으로 들어왔다. 한때는 그를 미칠 듯이 발기시키던 아내의 몸에서 달큼한 젖내가 났다. 갓난아기의 분내에 섞여 여린 풀 냄새도 맡아졌다. 그는 아내의 머리칼에 코를 묻었다. 아내의 체취는 그를 아찔하다 못해 몽롱하게 했다. 벽으로 밀려난 걸 알고 심술보를 터뜨릴 딸애 생각을 하니 웃음이 새나왔다.
깊이 잠들지 못한 사내는 두어 시간 후에 일어나 앉았다. 어둠 속에서도 잠든 아내와 두 아이가 눈에 가득 들어왔다. 주인집 영감이 집을 나서는 새벽까지는 짐을 싸두어야 했다. 며칠 시간을 더 보낸다고 다툼을 피할 방도가 생길 리 없었다. 대강 눈에 들어오는 가구를 둘러보았다. 짐이라야 접이식 미니 옷장과 플라스틱 서랍장 속에 든 아이들 옷가지, 이부자리와 잡동사니 약간, 부엌살림이 전부였다. 박스 몇 개면 다 쌀 수 있는 정도였다. 슈퍼에 쌓여 있던 박스를 떠올린 그는 살짝 집을 빠져나왔다.
사내는 곧장 슈퍼로 내려가지 않고 목재 공장 마당을 둘러보았다. 소품을 만드는 이 공장은 개가 없어서 시끄럽지 않았다. 사내는 어렵잖게 큼직한 박스 몇 장을 찾아냈다. 사내가 돌아왔을 때 아내는 부엌에 나와 있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알겠다는 듯 아내가 조용히 짐을 쌌다. 박스가 커서 아이들 물건과 잡동사니를 한 번에 쓸어 넣고 나니 방 안의 일이 수월하게 끝나버렸다. 아내의 손에서 부엌살림들이 순식간에 갈무리되었다.
이제 남은 건 가스레인지와 TV뿐이었다. 플라스틱 수납장 두어 개랑 비닐 캐비닛도 옮길 준비가 되었다. 아이들이 누운 이부자리를 싸기 위해 보자기 하나를 남겨놓았다. 주인집 마룻바닥이 삐걱대는 소리에 뒤이어 곧바로 현관문 소리가 들렸다. 방 안에서 긴장하고 있는 사내의 귀에까지 들리도록 헛기침을 하더니 영감은 가래침을 뱉듯 소리쳤다.
“세도 못 내는 집에서 전깃불은 허투루 쓰는가, 어험!”
여덟 개의 방을 세주고 있는 영감이 대문을 드나들 때마다 잔소리를 늘어놓으므로 세 든 사람들은 귓등으로 들어 넘긴다. 사내는 영감이 구시렁거리며 대문을 빠져나간 뒤 약수터 길로 올라가는 것을 확인했다. 그는 재빨리 골목을 끼고 큰길까지 달려 내려갔다. 몇 번이고 다짐을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범수 형이 약속을 어긴다면 어떻게 할까 걱정했다. 갑작스레 화물차 운행을 부탁하면서 꼭두새벽에 와달라는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도둑 이사라서 잡히면 곤욕을 치르게 될는지도 모른다는 그의 말에 범수 형은 이유를 묻지 않고 응낙했다. 다행이었다. 형이 죽은 뒤 오갈 데 없는 그를 말없이 인력시장에 데리고 다니다 공사장에 넣어주었던 형의 친구였다.
범수 형은 다행히 근처에 도착해 있었다. 곧 1톤 트럭이 집 앞 골목까지 들어왔다. 007작전을 능가하는 초긴장의 짐 나르기가 시작되었다. 차 안으로 옮겨진 아이는 아내의 품에서 다시 잠이 들었지만 예은이가 깨어났다. 트럭에 옮겨진 딸애는 이삿짐을 옮기며 부산스레 서두는 제 아빠의 행동에 충격을 받았는지 기함을 할 만큼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미처 차문을 닫을 새도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결국 세입자들이 하나둘 나오고 골목이 시끄러워졌다. 그리고 주인집 며느리가 나왔다. 웬만해선 나서지 않지만 사실 주인 영감보다 더 야박한 여자였다.
여자는 사나운 얼굴로 도둑 이사를 하려 하느냐고 소리를 질러댔다. 세입자들은 모두 들어가고 주인집 며느리만 남았다. 집세와 밀린 세금을 안 주고 나갈 거라면 짐은 다 두고 가라는 말이었다. 옮겨놓은 짐도 내릴 판이었다. 미처 싣지 못한 TV와 가스레인지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범수 형의 험한 인상 때문에 빠져나올 수 있었다. 어깨에서 팔뚝까지 용을 문신하고 있는 범수 형에게 집세와 세금만 가져오면 언제라도 내줄 거라며 여자가 부엌문 앞을 막아섰던 것이다.
숫기 없는 아내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로서도 저항할 한마디 말이 없었다. 아내의 옆얼굴이 창백해 진 걸 보면서 그는 딸애의 어깨를 토닥였다. 굳은 얼굴로 트럭을 모는 범수 형에게 미안하고 면목이 없었다. 아직도 너 사는 꼴이 이 모양이냐고 묻지 않는 범수 형이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낡은 짐차의 움직임을 따라 아내의 경직된 어깨가 그의 어깨에 부딪혔다.
한 시간 반은 걸려서 도착한 강가는 우중충했다. 컨테이너의 자물쇠는 그가 채워둔 그대로였다. 사내는 내심 반갑고 감격스러웠지만 어쩐 일인지 아내와 딸애 앞에 참담한 기분이 되었다. 혼자서 찾아왔을 때와는 달리 어둑한 강가에 덜렁 컨테이너만 있는 것이 황량해 보였다.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강의 풍경 따위는 자취도 찾아볼 수 없었다. 범수 형의 얼굴을 바로 보기가 민망했다. 형은 아침 일이 늦었다며 서둘러 이삿짐을 내렸다.
“집이 멀지만 당분간 나랑 다니면서 화물 까대기라도 할 맘 있음 연락해. 좀 모아서 화물차 중고라도 인수하게 되면 좋고.”
마른침을 삼키며 초조해하는 사내에게 전화번호를 적어 건네며 범수 형이 말했다. 그러고는 수중에 가진 돈이 이것뿐이라며 만 원권 몇 장을 사내의 주머니에 찔러주고 트럭을 몰고 떠났다. 사내의 눈가가 붉어졌다. 형이 살아 있다면 이렇게 서로 의지하면서 별 어려움 없이 지냈을 거였다.
착잡한 사내를 아내가 컨테이너 창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버려진 컨테이너이므로 안심해도 좋다는 사내의 말에도 아내는 아이를 업은 채 말이 없었다. 궁한 그를 구원한 건 딸애였다. 새벽 구름 때문에 희부옇던 강둑에 햇살이 비치자 딸애가 소리를 질렀다. 반짝이는 강물과 시야에 들어온 너른 들판을 보고 아내의 입가에도 희미한 웃음이 지나갔다. 딸애는 눈 앞에 펼쳐진 모든 것이 경이로운 양 깡충거리며 좋아했다.
짐을 컨테이너 안으로 들여놓은 사내는 서둘렀다. 당장 밥을 해 먹을 수 있도록 손을 보려면 하루해가 모자랄 터였다. 아내가 짐을 푸는 동안 전기를 끌었다. 옮기기 전의 컨테이너 자리에 수도꼭지가 들어와 있어서 물은 당장 그걸 쓰면 될 것 같았다. 사내는 막아놓은 수도꼭지를 풀었다. 수도는 멀쩡했다. 하루 정도 물을 흘려보내면 먹을 수 있을 거였다.
모래와 나뭇잎들로 막혀 있는 배수로는 조금 손보아야 할 것 같았다. 컨테이너로 돌아오니 아이를 업은 채 아내가 팔을 늘어뜨리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스레인지가 없어서……”
사내는 딸애를 데리고 강둑을 걸어 마을로 들어갔다. 마을 슈퍼 앞에 인상이 사나운 여자가 다가오는 사내의 행색을 살피고 있었다. 농로를 걸어오는 동안 줄곧 사내를 지켜보는 사람은 그 외에도 여럿이었다. 사내는 걸음을 서두르지 않고 곧장 슈퍼로 들어갔다. 사내가 좁은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여자가 따라 들어 왔다. 사내가 휴대용 버너와 썬 연료, 플래시, 짜장라면 등을 찾자 여자의 표정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침침한 가게 안에서 대부분의 물건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딸애가 사내의 손을 끌어당겼다. 그는 소시지와 새우깡을 집어 딸애에게 주었다. 여자는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더 필요한 건 없냐고 물었다. 계산을 치르자 아이에게 껌 한 통을 쥐여주며 또 놀러 온나! 하고 인사를 건네기까지 했다. 슈퍼집 여자의 살가운 웃음에 사내는 마음이 누그러졌다. 가게에 딸린 방문이 열리더니 몸집이 통통한 여자가 걸어 나왔다. 초면에 조금도 어색한 기색 없이 사내를 빤히 보면서 언뜻 웃음을 띠는 게 여간 민망한 것이 아니었다.
“아 이년아 들어가 있든지 나가든지 어서 비켜, 손님 나가게!”
슈퍼 여자가 지청구하는데도 전혀 들리지 않는 듯 여자는 느릿느릿 다가왔다가 사내를 스치고 밖으로 나갔다. 속옷을 제대로 갖춰 입지 않아 얇은 여름옷 속에서 말간 가슴이 출렁대고 있었다. 걸을 때마다 엉덩이의 움직임을 따라 구겨진 스커트가 흔들렸다. 몹시 눈에 익은 물방울무늬 스커트였다. 컨테이너에서 보았던 바로 그 여자였다. 사내는 혼자 얼굴이 붉어져서 자꾸 뒤를 돌아보는 딸애 손을 잡고 가게를 빠져나왔다. 슈퍼 앞에 있던 두어 명의 아낙이 사내의 얼굴을 노골적으로 훑어보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곤 사내보고 들으라는 듯이 슈퍼집 여자를 나무랐다.
“이게 무슨 경우야? 컨테이너 도둑맞았다고 가만있는 사람들 들쑤셔놓고 자기는 뒷구멍에서 근본도 모르는 사람한테 물건이나 팔아먹구 말이지.”
“아니 그럼 제 발로 찾아와 필요한 물건을 달라는데, 난들 어쩌겠어요, 누군 처음부터 근본 있었나, 그 근본 찾는 사람은 들어온 지 몇 년이나 됐다고!”
“헛, 참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서방 없이 병신 딸 데리고 산다고 웬만한 일은 봐줬더니, 경우가 없어도 이건 너무하는 거 아니냐고!”
거기까지 듣고 돌아서는데, 몸집이 커다란 남자가 오토바이를 세우고 내리더니 사내를 쓱 일별하고는 큰 소리로 슈퍼 여자를 불렀다.
“아주먼네, 뭔 일로 이렇게 시끄러워요?”
남자가 끼어들자 여자들이 일제히 남자를 둘러싸고는 너나없이 떠들었다. 아낙 중 하나가 노기등등하게 따져 물었다.
“아따, 이장님 잘 오셨소, 것이기 콘테노인지 뭐인지 때메 시끄러워지는 것이 아니겄소.”
“강씨, 기껏 쓰겠다는 사람한텐 묵묵부답 기다리게 하더니, 인제 와서 생판 모르는 뜨내기한테 그걸 줘야겠나?”
“누가 아니래요, 죽 쒀서 개 주는 꼴이지 이게 뭐람!”
“덜컥 들어와 차지해버렸으니, 이제 어떡할 거요? 책임을 져요, 책임을.”
그사이 더 모여든 사람들에게 이장이라는 남자는 둘러싸였다. 사내는 언뜻 남자를 알아봤다. 머리카락이 드문 대머리, 컨테이너에서 보았던 남자였다. 사내는 픽, 웃음이 나왔다. 컨테이너로인해 시비가 생기면 반드시 짚어 내리라 생각했던 사건이기에 사내는 한시도 그 사건을 잊지 않고 있었다. 사내는 자신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소리를 더 듣지 않고 딸애를 번쩍 들어올려 목말을 태우고 논길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