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받침대를 빼는 순간 지게차가 기우뚱하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사내가 성큼 컨테이너로 다가섰다. 벌판에서 산 밑으로 겨우 몇 발짝 옮겼을 뿐인데 컨테이너는 안정감이 있어 보였다. 주변을 꼼꼼히 돌아본 사내는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갔다. 창문에서 보이는 푸른 풍경에 사내의 미간이 살짝 펴졌다. 그 강둑 끝에 희끗한 것이 보였다. 건물이라고 하기엔 터무니없이 작은 벽돌 구조물이 덩굴식물에 덮여 있었다. 겨울이 되면 덩굴식물의 줄기가 드러나 흉흉할 것 같았다. 창가에 설 때마다 그 집을 보아야 할 거였다.
사내가 돌아갈 채비를 하는 지게차 기사를 불렀다. 사내의 입매를 쓰윽 훑어본 기사는 마뜩잖은 표정을 숨기지 않은 채 사내가 지시한 대로 컨테이너를 들어 방향을 슬쩍 돌려주었다. 그뿐이었다. 사내가 돈을 건네자 접힌 지폐를 펴서 액수를 확인하고는 느려터진 지게차를 몰고 사라졌다. 요란한 소음이 강둑을 흔들었다. 지게차 소음이 마을로 들어가는 동안 사내는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가 창문 밖으로 펼쳐진 풍경을 내다보았다. 마치 강가의 전경을 감상하는 전망대처럼 근사했다. 강을 내다보는 사내의 눈빛이 깊어졌다.
사내는 두 손을 쓱쓱 비비고는 컨테이너 바닥에 접혀 있던 박스를 세워 빈 술병들과 담배꽁초, 아이스크림 껍질 등의 쓰레기를 담아서 내놓았다. 겨우 바닥만 치웠는데도 아홉 평짜리 컨테이너의 내부는 꽤 넓어 보였다. 싱크대까지 놓여 있어 꽤 쓸모 있는 구조였다. 한쪽 벽을 차지하고 있는 사무용 탁자와 의자를 치우면 더 넓어질 거였다. 모노륨이 깔려 있는 바닥은 몹시 지저분해서 제 색깔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지만, 그런건 문제가 아니었다. 사내가 손바닥으로 쓱 문지르자 굵은 붓으로 터치한 것처럼 나뭇결무늬가 살아났다. 먼지가 닦여나간 모노륨 바닥은 온통 상처투성이였다. 손바닥으로 문질러보았지만 긁힌 흔적들은 지워지지 않았다.
언젠가 철거를 기다리는 빈 연립주택 지하에 용수철이 삐져나온 매트리스를 끌어다 놓고 공짜로 얻은 잠자리가 황감해서 킥킥대며 형과 함께 잠들었던 밤들이 생각났다. 형 생각을 하니 가슴 위로 쇠톱이 지나가는 것 같다. 컥 소리를 내면서 사내가 가래를 돋웠다. 어금니를 조여 물고 밖으로 나온 사내는 강 쪽으로 힘껏 가래를 뱉어냈다. 다시 생각해도 이곳을 찾아낸 건 기적이었다.
며칠 전 사내가 우연히 이 강가에 당도해 컨테이너를 발견했을 때 그것은 비어 있었다. 출입문의 손잡이를 잡아당기자 안에서 밀어내기라도 한 듯 헐겁게 문이 열렸다. 방치된 공간이 으레 그렇듯 내부는 몹시 지저분했다. 잠자리로 사용했음직한 박스 옆에 꽁초가 그득 담긴 술병이 엎어져 있었다. 사내는 덤프트럭 바퀴에 다져진 둑길과 묻히다 만 건축 폐기물을 보고 그곳이 제방공사의 현장 사무실로 쓰였다는 걸 알았다. 마을에서 강으로 이어진 벌판의 산자락 귀퉁이라 특별히 주목하지 않는 한 사람들의 눈에도 띄지 않는 지점이었다. 버려진 땅, 사람들의 관심에서 밀려난 곳에 방치된 컨테이너라니, 믿기지 않는 횡재였다.
그 때부터 사내의 생각은 온통 컨테이너에 묶여 있었다. 마치 보물을 길가에 묻어놓고 온 것처럼 안절부절못했다. 하루이틀 날이 지날수록 불안감은 더해갔다. 중고로 팔아도 몇백은 받을 만한 컨테이너가 버려졌을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 좋게 한 주일 동안 인력시장에서 일거리를 잡은 덕에 얼마간의 푼돈을 쥐고 컨테이너를 찾아오면서 그의 마음은 복잡한 계획들로 그득했다.
며칠 만에 컨테이너를 보러 오는 길에 사내는 전에 미처 살펴보지 못한 경고 표지판을 보았다. 철판 위에 쓰인 글씨는 페인트가 벗겨져 겨우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시 단위의 폐기물 매립장이므로 유독가스의 분출 위험이 있어 일반인의 출입을 금한다는 내용이었다. 사내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표지판의 내용만 아니라면 아무것도 특별할 것 없는 시골 강둑이었다. 매립지 위에 객토를 하여 농사를 짓는 거로 보아 출입제한이란 말은 이미 효력을 잃은 것이 분명했다. 사내는 그제야 안심했고 비로소 마음을 정했다. 그동안 시 외곽을 뒤지고 다닌 것이 헛걸음은 아닌 셈이었다.
급한 대로 청소라도 하고 자물쇠를 물려놓으려고 버스정류장으로 가던 길에 전봇대에 붙은 지게차 전화번호를 발견했다. ‘지게차’라는 글자를 보자마자 사내의 마음속에 확신이 차올랐다. 마침 슈퍼 앞 버스정류장에 공중전화 부스가 있어 즉시 전화를 했다. 조심스럽게 강가의 컨테이너를 산 밑으로 옮길 수 있겠냐고 이야기를 꺼내자 지게차 기사는 내일 아침 일찍 옮겨주겠다고 다짜고짜 시간을 정해버렸다. 겨우 지게차 기사의 허락을 받았을 뿐인데 컨테이너의 주인이라는 증명이라도 얻은 듯 사내는 안도감을 느꼈다.
사내는 컨테이너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두어 시간 간격으로 드나드는 시내버스를 타고 읍에 나가 청소 도구와 자물쇠, 소주를 한 병 샀다. 막차 시간을 기다리며 국밥도 먹었다. 사내가 마을로 돌아왔을 땐 한밤중이었다. 강둑길을 찾아 들어가면서 사내는 쉴 곳을 소유한 사람이나 되는 듯 오랜만에 마음이 평온함을 느꼈다. 흐린 달빛에 제방 길을 더듬어 컨테이너로 다가가던 사내는 주춤했다. 버려진 거라고 생각했던 컨테이너 창문에서 얼핏 흐린 불빛이 어른거렸다. 저절로 가슴이 뛰고 발소리가 죽었다.
사내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물소리 풀벌레 소리뿐 여름밤의 강둑은 평온했다. 그는 귀를 기울이며 두어 발짝 거리까지 창가로 다가갔다. 플래시 불빛을 가리느라 세워놓은 엉성한 포장지 틈으로 안에서 벌어지는 풍경이 보였다. 줄무늬 남방을 입은 남자와 상반신이 거의 보이지 않는 여자가 엉켜 있었다. 고개를 뒤로 젖힌 여자가 키득대며 얼굴을 들었다. 줄무늬 남방을 입은 남자가 별안간 몸을 일으키자 여자의 허리에 둘둘 말린 물방울무늬 스커트 아래로 청포묵 같은 허벅지가 드러났다. 말간 젖가슴도 무방비로 드러났다.
젊은 여자였다. 남자는 엉덩이에서 바지를 내리며 창가를 쓱 둘러보았다. 순간 눈이라도 마주친 것 같아 주춤 주저앉은 사내는 이 상황에서 도망가야 할 사람이 누구인가 생각했다. 사내의 궁리는 아랑곳없이 잠시 후 컨테이너 안에서 다시 키득대는 웃음소리와 신음 소리가 들렸다.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남자는 숱이 없는 머리며 짧은 목덜미의 주름이 나이 오십은 넘어 보였다. 더운 여름밤에 남녀의 행위를 보는 건 절로 숨이 막히는 일이었다. 한순간 불뚝 일어섰던 사내의 그것은 컨테이너에 대한 궁리 속에 혼자 시르죽었다.
사내의 마음에 컨테이너에 대한 맹렬한 욕망과 동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사내는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땅바닥에 부려진 청소 도구가 봉지 속에서 왁살스런 소음을 일으켰다. 순간 컨테이너 안쪽에서 새 나오던 불빛이 꺼졌다. 사내는 그제야 아차 싶어 성큼성큼 그 자리를 떠나 강둑 밑으로 내려갔다.
한 주일 동안의 불안감에도 불구하고 막상 누군가 컨테이너를 사용하고 있는 걸 확인하자 당황스러웠다. 불길하리만큼 달콤한 희망은 어이없는 절망으로 바뀌어버렸다. 선 자리에서 무릎이 탁 꺾였다. 모래 속에 머리를 파묻어버리고 싶었다. 둔한 쇳덩어리가 콱, 박힌 것처럼 숨통이 조여들었다. 분했다. 그제야 소주 생각이 났다. 시내에서 사 들고 온 청소 도구들이 아직도 그의 손아귀 아래 덜렁거리고 있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버스럭거리는 비닐봉지 속에서 소주를 꺼내고 청소 도구들은 패대기쳤다. 자물쇠가 들어 있어 소리가 요란했다.
앉기만 하면 덤벼드는 모기 때문에 사내는 소주를 마시면서 천천히 물가를 따라 걸었다. 술은 달다 못해 썼다. 얕은 강물에 빈 소주병을 던진 사내는 차차 기분이 좋아졌다. 더럽게 방치했다가 어쩌다 한번 컨테이너를 찾는 사람보다는 그것을 목숨만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컨테이너의 주인이 될 자격이 있는 거라는 배짱이 생겼다.
방치된 컨테이너에서 재미를 보고 있는 두 사람은 틀림없이 동네사람일 터였다. 멀쩡한 부부가 사람들 눈을 피해 컨테이너를 찾았을 리는 없었다. 침침해서 여자의 얼굴을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피부로 봐서는 뭔가 젊은 느낌이었다. 여자가 키득거린 걸 보면 성폭행은 아닌 것 같지만, 어쨌든 정상적인 관계는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사내를 옥죄고 있던 절망의 사슬이 툭 끊어져버렸다.
이 강가에 아이들을 풀어놓고 아내와 나란히 앉아 아이들이 노는 것을 바라볼 수 있다면! 가끔 보여주는 아내의 풀 향기 같은 여린 웃음을 다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사내는 기분 좋게 컨테이너로 돌아왔다. 겁없이 출입문을 열었을 때 컨테이너는 비어 있었다. 사내는 조금 전까지 두 사람이 뒹굴었을 박스 위에 누웠다. 아직도 담배 냄새와 비릿한 체취가 느껴지는 듯도 했다. 시르죽었던 사내의 그것이 서서히 부풀어 올랐다. 아내와 잔 것이 언제인지 생각도 나지 않았다. 주인집 영감에게 멱살다짐을 받고 집을 나온 게 석 달 전 일이었다.
월세 날짜를 지키지 못하게 된 다음 달에 주인 영감이 방을 내놓았다. 하지만, 들어오겠다는 사람이 없어 지금까지 버텨온 터였다. 보증금을 다 까먹고 나자 영감은 사내가 집에 들어오는 날이면 호되게 실랑이를 걸어왔다. 말끝에는 협박과 욕설도 서슴지 않았다. 인력시장에서 일을 얻지 못하는 날에도 사내는 집에 들어가서 쉴 수 없었다. 며칠에 한 번씩 단골 슈퍼에 들러 분유와 봉지쌀을 집으로 배달시키면서도 영감을 만날 명분이 없어 집에 들르지 못하고 배달원을 따라 나온 아내와 접선하듯 안부를 주고받았다.
사내의 감은 눈에 어린것들의 살가운 모습이 잡혔다. 더 이상 머뭇댈 여유가 없었다. 이달 말일까지, 무조건 방을 비우라는 것이 주인 영감의 명령이었다. 밀린 방세를 받기 전에는 주인영감이 곱게 놔줄 리 없지만, 지체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었다. 고심하던 사내의 눈빛에 생기가 돌았다. 틈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만 원입니다.”
까만 비닐봉지를 내밀며 정육점 여자가 말했다. 사내는 주머니 안에서 손에 땀이 배게 쥐고 있던 지폐를 꺼내 그중 만 원짜리 한 장을 여자에게 건넸다. 지폐 몇 장을 지니고 있는 것은 그에게 얼마간의 안도와 얼마간의 불안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그것이나마 가지고 있으므로 다급하지 않다는 위안과 동시에 시한부의 시간을 맞이하는 것 같은 갈증 때문이었다. 조급해지는 마음을 누르며 그는 딸아이가 좋아하는 달달한 고기볶음을 생각했다. 어금니가 나기 시작하자 딸아이는 육질이 있는 것을 씹고 싶어 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평생 밥벌이 걱정을 하지 않으려면 기술 한 가지라도 똑바로 배워놔야 한다던 형은 정작 기술을 배우지 않았다. 사내는 천성이 겁이 많고 섬세한 편이었다. 형은 그런 사내를 필사적으로 보호했다. 점점 더 위험한 일을 시키면서 놓아주지 않는 개코의 계획에 말려 칼받이가 되던 날까지 형은 사내를 조직에 개입시키지 않았다. 형이 죽고 난뒤 형의 친구들 덕분에 기름때를 묻혀가며 배운 것이 가구 만드는 기술이었다. 기술 덕분에 사내는 형이 바라던 대로 착하고 어린 아내를 만날 수 있었고, 가난하지만 가정을 이루고 정상적인 삶의 궤도에 진입할 수 있었다.
‘인마, 평범하게 사는 게 가장 어려운 거야, 우리 같은 사람들은 평균 정도만 살아도 대성공이라니까!’
강술을 마시면서 늘 마지막에 주문처럼 말하던 형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바퀴에 얹혀 있었다. 입주 가구가 주 생산품인 사내가 다니던 공장도 건축 경기에 거품이 빠지면서 침체에 빠져들었다. 처음엔 두어 달 건너 한 번씩 임금을 체불하더니 부도를 맞고는 내리 석 달 동안 임금을 지급하지 못했다. 모두 7개월 치 임금이 밀린 상태에서 공장은 도산해버렸다. 따질 곳도 받을 곳도 없이 직공들은 고스란히 내몰렸다. 동료들은 공장장과 사장 집에 찾아가 누워버리자고 했지만, 사내가 인력시장을 기웃대는 동안 공장장이 몇몇 직원을 데리고 다른 공장으로 가버렸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었을 뿐이었다. 그 후로 그는 다시 직장을 잡지 못했다. 가구 공장들이 너나없이 구조조정을 시작했고 값싼 외국인 노동자는 사방에 넘쳐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