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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링가객 Mar 22. 2024

온천탕에  '그분'이 오셨다

1. K 오지라퍼 1

       

 딸과 함께 두 돌짜리 외손자 Y를 데리고 온천에 갔다. 온천수 원탕이 나오는 양평의 S호텔, 집에서 한 시간 정도의 거리라 애용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Y에겐 첫 온천체험이었다.     


 Y는 코알라처럼 엄마의 몸에 달라붙어서 떨어질 줄 몰랐다. 생각해보니 Y에겐 대중탕 경험이 처음이었다. 난생 처음 보는 풍경과 예측불허의 상황이 낯설고 불안한 듯. 좋아하는 구운 계란을 들고 탕에 들어간 Y의 표정은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물소리와 거대한 탕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에 압도당한 듯했다.      


 Y를 탕으로 유인했다. 따스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탕들 중 가장 미지근한 곳부터 잠깐씩 몸을 담그고 놀았다. 온천탕은 꽤 재미있게 구성되어 있어서 조용히 탐색하면서 놀기에 좋다. 더운 계절에는 야외 수영장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물놀이도 가능하다. 물놀이를 좋아했던 딸아이처럼 Y도 물을 좋아한다. 앞으로 Y를 앞세우고 수영장 체험을 다닐 상상을 하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조금 더 체온에 가까운 따스한 탕으로 옮겨갔다. 어르신 몇 분이 이미 온탕을 즐기고 있었다. 내가 먼저 들어가고 딸도 Y를 데리고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따스한 물에 발이 빠지자 엄마 목을 껴안고 있던 Y가 팔을 풀고 탕 속을 보았다. 우리는 탕에 몸을 넣어서 따스했지만 Y는 아직 탕에 한 번도 몸을 담그지 않아서 몸이 서늘했다.      


 갑자기 온탕에 들어가면 놀랄까봐 온수에 적응시키기 위해 수건을 따스한 물에 적셔서 Y의 등에 걸쳐주었다. 대중탕 경험이 전혀 없는 Y도 발을 찰방거리며 물방울을 튕겼다. 온천수를 뿜어내는 커다란 돌 두꺼비를 발견한 Y가 고개를 돌리고 바라보았다. 입을 벌리고 물을 뿜는 두꺼비가 신기한 모양이었다. 두꺼비가 보이는 방향으로 딸이 Y의 몸을 돌려서 안아주었다. 탕 안의 분위기에 잘 적응하고 있었다. 좀 전보다 확실히 편안해보였다. 식은 수건을 온수에 적셔 다시 Y의 어깨에 얹어주었다. 그 때였다.


“애가 얼굴이 빨간데, 왜 덮어요? 애 얼굴이 빨간데!”     


갑자기 들려온 큰 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탕 맞은편에 있는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여자가 더 큰 소리로 물었다.   

  

“애들은 원래 더운 온도에 민감한데, 왜 자꾸 덮어요? 그 수건, 수건을 왜 덮어요?”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딸도 당황했다. 수건은 금방 식었다. Y의 얼굴은 외부와의 온도차로 발그레한 상태였다. 나는 그 분에게 우리의 상황을 설명했다.    

 

 “우리 아기가 처음이라, 탕 온도에 적응시키고 있어요.”     


 여자의 커다란 목소리에 Y는 엄마에게로 몸을 돌렸다. 나는 수건을 다시 물에 적셔 Y의 어깨에 올려주었다. 여자가 탕에서 벌떡 일어나 위협적으로 다가오면서 소리쳤다.      


“내가, 어린이집 선생님이었는데, 나 어린이집 선생님했어요. 애들은 온도에 민감한데, 그렇게 덮으면 답답해서 열 올라가지 않아요?  수건을 왜 자꾸 덮어요? 그걸 왜 덮냐구요?”     


 내 설명이 들리지 않는 지 그 분은 세 번이나 어린이집 선생님이었다고 부르짖었다. 주변에 있는 모든 이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집중되었다. 큰 목소리에 민감한 Y제 엄마의 품으로 와락 파고들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그 분을 향해 손바닥을 펴 보이면서  낮고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어요.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했어요. 알아들었습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채로 잠시 멈췄던 여자는 탕에서 나갔다. 딸과 나는 동시에 서로의 안색을 살폈다. 소요가 지나갔다.


 불안이 극도에 달한 듯 우는 Y를 달래느라 애를 먹었다. 대중탕은 울리기 때문에 여간 곤혹스러운 상황이 아니었다. Y는 한참 만에 울음을 그쳤다. 돌아보니 아직도 탕 안의 많은 어르신들이 Y를 보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온천탕은 주로 어른들의 전용장소였다. 연세가 지긋한 할머님들의 표정은 온화했다. Y도 잠시 후에는 언제 울었냐는 듯 엄마와 함께 탕의 따스한 물을 즐겼다. 물을 쏟아내는 두꺼비 앞에 다가가서 놀았다. 무사히 Y의 첫 온천욕 체험을 마쳤다.      


 이 글을 쓰면서 그 분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어린 아이들을 단체로 돌보는 어린이집 교사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나 안전관리였을 것이다. 그녀의 나이로 보아 책임감 있게 긴 시간 보육업무를 맡았을 거라는 짐작도 가능하다.


안전사고는 예방이 우선이다. 아기가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에 얼마나 민감하면 다른 장소에서 직업의식이 돌출되었을까. 온천욕을 즐기러 오셨다가 말이다.      


 그렇게 걱정을 해주신 것에 대해 고마움을 느낀다. 악의가 아닌 것만은 확실하기에. 하지만 그 분께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지 못했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고, 탕에서 나간 뒤에 그 분을 다시 뵙지 못했다. 그럴 여유나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내 입장에서 보면 손자를 데리고 온천욕을 갔다가 낯모르는 분에게 아기를 제대로 돌볼 줄 모른다고 참교육을 당한 꼴이었다. 그 순간엔 그 분의 언행이 너무 급하고 위협적이라 당황스러웠다.


 내향인인 나는 어떠한 일로든 주목받는 상황이 불편하다. 그런 일로 탕 안의 수많은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는 것이 당황스러웠다. 보호자가 둘이나 있고 열심히 돌보고 있는데 타인이 나서는 것도 이상했고, 아기의 어깨를 덮어주는 내 행동을 큰 소리로 지적한 것에 불쾌함을 느꼈던 것이다.     


 이름도 모르는 그 분의 행동이 낯설지 않았다.



       

   2부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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