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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강한 킴진지 Jul 17. 2022

220717_ 한 발 한 발 쌓아올리는 성

카페에 앉아서 내 몸에게 보내는 메시지

어딘가의 스타벅스 2층. 중간에 8명이 앉을 수 있는 기다란 나무 테이블 2개가 2층 전체를 가르듯 길게 놓여 있다. 스타벅스 특유의 가벼운 나무 느낌의 의자와 테이블이다. 나는 보통 이곳에 앉아서 책을 읽거나 작업하는 것을 선호한다. 이 곳 스타벅스의 다른 테이블은 오래 앉아서 책을 읽거나 작업을 하기에는 좋지 않아서 선호하지 않는다. 테이블이 너무 낮거나 혹은 너무 높다. 의자가 고정되어 있거나 너무 높다.


한 쪽 테이블은 이미 사람들이 앉아 있어 다른 쪽 테이블에 앉았다. 테이블 상판 아래에 220V 와 USB 콘텐트가 있어서 노트북과 아이패드 같은 전자기기를 충전하기 적당하다. 최근에 읽고 있는 책을 꺼내 앉아 책을 읽을 준비를 한다. 검은 갤럭시 버즈를 귀에 꽂고 연결된 스마트폰에서 유튜브앱을 켜 아무 재즈 플레이리스트나 재생한다. 너무 시끄럽지 않게 주위 소음을 잠잠하게 하고 말소리가 들리지 않기만 하면 된다. 글을 읽고 있을때 가사가 있는 음악은 문장을 얽히게 해서 혼란스럽다.  


최근에 <달리기를 말할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소설가가 달리기에 대해서 쓴 수필이다. 달리는 법에 대한 책은 아니다. 소설가가 쓴 달리기 책이라서 그런지, '소설'과 '달리기'와 '삶'에 대한 것이 적당히 섞여있다. 달리기를 말하며, 인생에 대해서, 소설에 대해서, 삶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다른 것을 빗대어서 어떤 것을 설명하면 이해의 깊이를 더해준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개념을 쉬운 개념을 통해 설명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미 알고 있는 개념을 통해 해보지 않는 것을 와닿게 설명할 수 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달리기를 선호하거나 자주 하고 있지는 않지만, 달리기를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달리기에 대한 생각이나 경험이나 이해가 다르더라도 모두가 공통적으로 해본 경험인 것이다. 그래서 달리기를 통해 설명하는 것은, 뭔가를 설명하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내가 달리기를 좋아하고, (달리기 뿐 만 아니라) 글이나 소설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서, 이 책이 더욱 공감이 가고 잘 읽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어쩌면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가 써내려가는 디테일한 설명이 있기에 내가 더 쉽게 책을 읽고 이해해나가게 된 지도 모르겠다. 어떤 것이 진짜 이유인지는 (혹은 모두가 이유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결론적으로 이 책은 마음에 든다. 내가 좋아하는 소재(달리기, 글쓰기)를 다루고 있기도 하고, 삶에 대한 하루키의 생각이나 태도가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보다는 그 생각을 인생에 더 잘 적용하고 있고 그래서 더 큰 성취를 얻은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글을 쓸때는 그다지 자기 주장을 강하게 하지 않는다. "나라는 사람은 이렇게 생각한다." 정도로 이야기할 뿐이다. 내가 무슨 이야기할 때 취하는 태도와 비슷하다. 절대적인 진리가 있다기보다는 자신에게 맞는 것이 있다. 지금 하고 있는 것은, 단지 내 생각이고 나에게 맞는 방식이다. 내게 맞지만 당신에게는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실 나에게도 완전하게 맞지 않고 대체로 맞아서 현재 사용하는 것이다. 좋아해서 자주 입는 브랜드 옷처럼. 기성품이라 완전 꼭 맞지는 않지만 대체로 맞고 편안해서 자주 입게 되는 옷 말이다. 어쩌면 맞춤으로 만든 옷(생각)이 있을 수 있지만 그래서 그게 나에게 딱 맞겠지만, 그러면 그런 만큼 다른 사람에게는 더 맞지 않게 될 수 있다. 얼추 맞는 기성복 같은 정도의 생각이어야 서로의 삶과 몸에 맞게 적당히 통용될 수 있다. 이렇게 적당적당한 마음으로 사는게 정말 괜찮은가 싶은 생각도 들지만, 하루키도 그런 정도로 이야기해서 마음이 놓였다.


애초에 이 책은 중고로 사서 그런지, 책 앞 쪽에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다른 사람이 인상 깊었던 곳을 훔쳐보는 것도 나름 재미있는 경험이다. 이걸 읽고 있던 사람은 왜 이 곳에 밑줄을 그엇을까? 이 문장이 그의 삶에 어떤 의미로 다가 왔을까. 나라면 굳지 밑줄을 치지 않았을 문장에 다시 한번 눈이 가게 만든다.


그리고 이미 밑줄이 그어져 있어서 내가 감명 깊은 곳에 밑줄을 치는 게 거리낌이 없어진다. 밑줄을 치면 중고로 되팔 수가 없다는 생각 같은 걸 할 필요가 없다. 예전에 나는 이상한 완벽주의 같은 것이 있는 편이었는데(많이 없어졌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여전히 잔재하고 있다.) 밑줄을 치면서도 이게 정말도 밑줄 칠만한 것인가 하고 생각하기도 해서 멈칫하기도 했었다. 지금은 그런 마음 없이 밑줄을 그어 나갈 수 있다. 다만, 지금 쓰고 있는 형광펜의 잉크가 거의 끝나가고 있어서 잉크가 나오다 말다 한다는 것만 빼면 밑줄을 치는데 거슬리는 것은 없다.   


밑줄을 쳐놓으면 책을 다시 돌아볼 때 책을 쉽게 요약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밑줄을 모으면 내가 이 책을 통해 다시 생각하고 배운 것이 된다.


오늘 읽은 부분에서도 꽤 많은 부분에 밑줄을 긋게 된다. 그 중에서 한 가지 문단만 가져와 보려고 한다. 문단 전체가 다 마음에 들었기에 문단을 다 가져왔다. (나는 아직 무엇 중에 하나를 고르는 작업은 쉽지 않다. 방향성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아래 문단은 내가 몸에 대해 생각하는 부분과 비슷하고 앞으로 이렇게 내 몸을 단련해나가고 싶다고 생각하기에 골랐다. 간단히 생각하면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내용이다.)


"설사 절대적인 연습량은 줄이더라도, 휴식은 이틀 이상 계속 하지 않는 것이 트레이닝 기간에 있어서의 기본적인 규칙이다. 근육은 잘 길들여진 소나 말 같은 사역 동물과 비슷하다. 주의 깊게 단계적으로 부담을 늘려 나가면, 근육은 그 훈련에 견딜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적응해 나간다. "이만큼 일을 해주지 않으면 곤란하단다" 하고 실례를 보여가며 반복해서 설득하면, 그 상대도 "아, 좋지요" 하고 그 요구에 맞춰서 서서히 힘을 들여 나간다. 물론 시간은 걸린다. 무리하게 혹사를 하면 고장나 버린다. 그러나 시간만 충분히 들여 실행하면, 그리고 단계적으로 일을 진행해 나간다면 군소리도 안하고(때때로 얼굴을 찌푸리기는 하지만) 강한 인내심을 발휘해서 그 나름의 고분고분한 자세로 강도를 높여나간다. '아만큼의 작업을 잘 소화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기억이, 반복에 의해서 근육에 입력되어 가는 것이다.


한 30~40분 정도 앉아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나에게는 내 몸에 보내는 메시지다. "앞으로는 이렇게 앉아서 글을 쓰기 위해 집중하는 시간을 가질꺼야. 이렇게 앉아서 생각을 떠올리고,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만들며 손가락을 움직이는 과정에 익숙해져."하고 말이다. 그리고 그 시간의 양을 점점 늘릴 것이고 그 시간의 질을 점점 높일 것이다. 나라는 동물을 더 잘 길들여서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야지.


앉아서 뭐라고 문장을 만들어내다 보니, 나도 생각지도 못한 나의 생각들이 쌓여나간다. 결국 인간의 삶이라는 건, 인생이라는 건, 뭔가가 쌓이지 않으면 흘러가 버린다. 같은 시간을 쌓으면서 보내느냐, 아니면 흘려보내느냐 인 것 같다. 성과란 쌓여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올렸기에 하나의 성이 만들어 진 것이다. 같은 백 년을 살아도 어떤 사람은 1년을 쌓은 작은 성을 가지고 있고 , 어떤 사람은 10년을 쌓은 성을, 어떤 사람은 30년을 쌓은 큰 성을 가지고 있다. 인생을 꼭 성을 쌓기 위해 살 필요는 없지만 어떤 분야에서 일정 정도의 성을 쌓지 않으면 인정받기 어려울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들을 그 사람이 만든 성으로 그 사람을 기억할 것이다. 결국 사람이 죽을 때, 스스로 만든 성에서 잠들게 될 것이다.


내가 잠들 성은 지금 어디에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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