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유래
중구난방(衆口難防)
(명사) 뭇사람의 말을 막기가 어렵다는 뜻으로, 막기 어려울 정도로 여럿이 마구 지껄임을 이르는 말.
(예문)
- 학생이 흠칫 놀라며 볼멘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자 그 말을 빌미 삼아 여기저기서 중구난방 떠들기 시작했다.
- 중구난방으로 저마다 한 마디씩 떠들어 대니 회의 진행이 안 된다.
(유래)
생성시기: 중국 남송, 1279년(위왕 상흥 2년)
주(周)나라 제10대 여왕(勵王)은 폭군이었다. 정사를 비방하는 자가 있으면 적발해서 죽였다. 더욱이 밀고자를 포상하는 제도를 만들어 충신들이 많이 죽었다. 신하들과 백성들은 공포정치에 질려 말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었다.
사마천의 『사기』 「주 본기」에 소공(召公)이 충간한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나온다.
“어떻소? 내 정치하는 솜씨가! 나를 비방하는 자가 한 사람도 없지 않소.”
소공은 기가 막혔다.
“겨우 비방을 막은 것에 불과합니다. 백성의 입을 막는 것은 둑으로 물을 막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물이 막히면 언젠가 둑을 무너뜨릴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많은 인명이 상하게 됩니다. 따라서 제방을 쌓아도 그 물길만은 알맞게 열어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백성의 입을 막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제방의 물길을 어느 정도는 열어야 하듯이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은 백성들이 마음 놓고 말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왕은 소공의 충언을 듣지 않았다.
소공이 우려했던 대로 서기전 841년에 신하들이 반기를 들자 백성들이 호응하여 여왕을 체 땅으로 추방시켜 거기서 죽을 때까지 살아야 했다. 이렇게 해서 주나라는 소공(召公)과 주공(周公) 두 사람이 14년간 공화정(共和政)을 폈다.
‘중구난방’이라는 어휘가 직접 등장한 것은 『십팔사략(十八史略)』이 나온 뒤였다. 이 책에는 춘추시대 송나라의 화원이라는 관리 이야기를 싣고 있다. 그는 성을 쌓는 일을 독려하고 있었는데, 그가 한때 적국의 포로로 있다가 풀려난 사람이란 사실이 알려지자 일꾼들이 그를 비웃고 비난했다.
그러나 그는 주나라 여왕의 고사(故事)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화를 내지 않고 “여러 사람의 입은 막기 어렵다(衆口難防, 중구난방)”고 하고는 아랫사람과 상의하여 공사를 진행하면서 자신은 일체 일선에 나서지 않고 작업장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이를 보고 사람들이 비로소 그의 인격을 인정하여 무난히 성을 쌓게 되었다는 고사가 실려 있다.
또 다른 이야기도 전한다. 진(秦) 소양왕(昭襄王) 때 조나라의 수도인 한단을 치러 온 장수 왕계가 군심을 얻지 못했다. 그때 장모(莊某)라는 사람이 군심을 얻으라고 권하면서 한 말이다.
“세 사람이 합치면 호랑이가 나타난다는 헛소문도 참말이 될 수 있고, 열 사람이 합치면 단단한 쇠방망이도 휘게 할 수 있고, 많은 입(衆口) 이 모이면 날개 없는 소문을 날려 보낼 수 있다. 여러 말(衆口)이 나오기 시작하면 막기가 어렵다(難防).”
『십팔사략』에 나온다. 『십팔사략』은 남송(南宋) 말에서 원(元)나라 초에 걸쳐 활약했던 증선지(曾先之)가 편찬한 중국의 역사서다. 원명은 『고금 역대 십팔사략(古今歷代十八史略)』으로, 과거 18종의 역사서를 보고 새로 만든 것이다. 이 어휘의 생성 시기는 편찬 시기가 알려지지 않았으므로 남송이 멸망한 1279년으로 잡는다. (출처: 우리말 어원 500가지, 2012년. 이재운, 박숙희, 유동숙)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네이버 한자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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