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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보다생명을 Jun 17. 2018

한림대성심병원 갑질 파문, 그 후

한림대병원 노동자들은 여전히 싸우고 있다

대한민국은 지금 갑질과의 전쟁 중입니다. 그 최전선에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과 그 일가의 갑질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들이 있죠. 그런데 대한항공 가면부대의 전투(?)가 시작되기 전인 2017년 전 국민을 경악하게 했던 일송재단(성심병원 모재단)의 갑질에 맞서 분연히 일어난 노동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성심병원 사태가 수면 위로 드러났던 2017년 11월. 당시 TV와 언론들은 간호사들의 선정적인 춤사위에만 주목했지만, 그것은 빙산의 일각이었습니다. 오픈 채팅방이라는 새로운 진지를 구축한 노동자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성심병원의 갑질을 쏟아냈습니다. 증언은 분노가 되었고 분노는 행동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2017년 12월 1일 강남, 동탄, 한강, 한림(평촌)의 성심병원 노동자들이 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 한림대의료원지부)을 결성했습니다. 2011년 설립 이후 재단과 병원의 탄압으로 힘겹게 명맥을 유지해오던 기존의 춘천성심병원지부와 최근 결성된 서울의 강동성심병원지부까지 지금은 총 3,000여 명에 달하는 성심병원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성심병원 간호사들의 쏟아지는 증언들 (c)뉴스타파
채팅방을 뛰어나온 한림대병원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한림대 모 재단인 일송학원과 병원의 관리자들은 노조 설립이라는 전대미문의 '민주주의적'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각종 불법,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하며 시대착오적 노조 포비아(혐오)를 드러내 지탄을 받았습니다. 노동자들은 그들과 현장에서 맞서 싸우며 장기자랑, 화상회의 등 병원의 적폐를 하나 둘 청산해 나갔습니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병원에는 크고작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특히 일하는 직원들 간에 사이가 좋아졌습니다.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열악한 노동조건과 인력부족에 시달리며, 부서별 교류는커녕 서로 욕하며 싸우는 일도 많았다고 합니다.


A : (토끼눈이 되어) "어? 니가 oo과 씨XX?" 
B : (뻘쭘해하며) "아, 네 마.. 맞아요"

(......)

A, B :  "하하하하하하.."


과중한 업무와 인력부족으로 서로에게 이어지는 콜과 잦은 요구에 전화로 찐한 욕설을 주고받으며 한바탕 했던 두 직원이, 노조에서 간부로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화해하고 이야기 나누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에피소드는 병원의 경영진에게도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구성원들을 쥐어짜고 괴롭히는 경영진의 행태가 직원 간 소통과 협력을 가로막고, 나아가 환자안전에도 악영향을 준다는 것을 이제는 그들도 좀 깨달아야 할 테니까 말입니다.


열일곱 번의 대화, 이어지는 세기의 협상(?)


동족상잔의 아픔을 겪은 남과 북도, 서로를 지도에서 지워버리겠다며 험한 말을 주고받던 북한과 미국도 만나서 대화를 하고 합의를 이끌어내는데 5개월 가까이 이어 온 성심병원의 노-사 단체협상은 그 난이도에서만큼은 그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협상이 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재단과 병원 측이 돈이 드는, 정확히 말해 '사람에게 투자하는' 항목에 대해서는 수용불가의 입장만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6월 11일(월) 부터 노동조합은 보다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고 있습니다.


성심병원 노동자들이 뿔났다!


6월 11일(월), 모든 한림대성심병원지부 소속 병원의 로비에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모였습니다. 병원 측의 불성실한 교섭태도를 규탄하고 우리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우리가 원하는 병원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알려주기 위해서 말이죠. 밤낮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스쳐 지나가던 로비는 활기 넘치는 해방구가 되었고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병원 곳곳에 울려 퍼졌습니다. 채팅방에서 숨죽이고 키보드를 두드리던 노동자들이 가면을 벗어던지고 당당하게 나서기 시작한 것입니다.



시설, 건물만 짓지 말고 사람에게 투자하라!
직원이 행복해야 환자가 행복합니다!
20년을 일해도, 30년을 일해도 제자리다. 인사제도 개선하라!
돈보다 생명이다, 기계보다 사람이다!
병원 갑질 청산하고 인간답게 살아보자!


집회의 열기는 뜨거웠습니다. 처음 하는 집회라 진행자의 시선에도, 참가자의 표정에도, 구호를 외치며 내지르는 팔뚝질에도 떨림과 어설픔이 묻어났지만 힘을 모아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자부심과 뿌듯함이 어우러져 묘한 열기를 내뿜고 있었습니다. 상급자의 지시와 협박 속에 숨죽이고 하루하루 버텨내는 성실한 근로자가 아닌, 아픈 사람을 치유하고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소중하고 당당한 노동자로 다시 태어나고 있었습니다.

2018년 6월 11일(월) 성심병원 노동자들이 두려움이라는 가면을 벗어 던지고 나와 병원의 주인이 되었다


오늘의 , 내일의 희망 노동조합


집회 후 뒤풀이 자리에서 만난 성심병원 노동자들은 자신을 낮추고 서로를 치하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동안 병원에서 장기자랑 춤 연습하면서 청춘을 다 보내고 늘그막에 노동조합을 만들어서 율동에 조직에, 노조활동하자니 힘들어 죽겠다던 노조간부의 얼굴에는 그러나, 밝고 환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직원들의 피를 말리던 병원의 화상회의는 폐지되었지만 5개 병원 노동조합 화상회의를 열어보자는 당당한 주장에는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뒤풀이는 밤늦게까지 이어졌지만, 다음날 아침 출근길 선전전에는 전날 집회에 참가한 대부분의 조합원이 다시 모여, 병원을 둘러싸고 선전전을 진행하며, 어제의 성취를 오늘의 힘으로 내일의 다짐으로 이어갔습니다.


성심병원 장기자랑 사태가 세상에 알려진 지 8개월. 언론과 세간의 관심에서는 멀어졌지만 성심병원 노동자들의 싸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그것을 기억하고 응원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촛불 혁명으로 정권이 바뀌고 세상이 바뀌고 있다지만 내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희망을 그릴 수 없다면 그것은 결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된 힘과, 구체적인 행동만이 일터를 바꾸고 나아가 내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성심병원 노동자들은 온몸으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 증언이 세상의 모든 을들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그들의 싸움을 응원하고 함께 해 주세요. 



보건의료노조의 브런치 <돈보다 생명을>의 첫 번째 글을 내어놓습니다.

                                     

'모두를 위한 의료, 돈보다 생명!'

보건의료노조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한 삶을 책임지는 병원노동자들이 소속된 대한민국 최초의, 최대 규모의 보건의료산업별노동조합(산별노조)입니다. 병원 노동자가 행복해야 국민이 건강합니다. 전국의 모든 병원과 의료현장에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노동조합이 있는 병원이 환자도 잘 보고 안심이 된다는 이야기가 상식이 되는 사회를 꿈꿉니다. 보건의료노조 브런치 <돈보다 생명을>에서는 보건의료노동자들의 숨은 이야기와 주요 이슈, 사건, 현장의 진솔한 이야기 등을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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